120문 120답
흔들리는 시대, 말씀으로 답하다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신 뒤, 함께 모인 신도는 백이십 명쯤이었습니다(사도행전 1:15). 세상을 바꾼 교회는 그 작은 무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흔들리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와 온 성도들이 한 번쯤 품어 보았을 물음 120개를 열두 주제로 모았습니다. 믿음의 첫걸음을 뗀 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만나도록 엮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은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물음은 엮은이가 붙였고, 대답은 안정섭 목사의 새벽말씀과 설교에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물음을 누르면 대답과 같은 본문의 설교 영상이 열리고, 「새벽말씀 전체 읽기」로 그날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01고난과 아픔
1열심히 사는데 왜 고난은 끝나지 않을까요?
우리도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설명할 수 없는 고난과 실패를 이미 만났거나 앞으로 만날 때 있을 겁니다. 반드시 있을 겁니다. 저는 전혀 없다라고 장담하면 좋겠지만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욥처럼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온 삶까지 부정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가 많아서 이게 아닙니다. 현실의 고통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그분이 앞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안정섭 · 2026. 10. 15. 욥기 17:1-16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31:45)부터
2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작년 우리집 뒷 마당에 살던 들고양이들을 덫을 놓아서 잡은 일이 있다. 그 때 그 고양이들은 두려워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내가 그 고양이들을 잡은 것은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대로 두면 시청의 Animal Control을 담당하는 직원이 잡아다가 안락사를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살려주려고 잡은 것이다. 광견병 주사도 놓아주고 기생충 약도 먹이고 중성화 수술을 해 주고 그 표시로 오른쪽 귀 끝을 잘라 잡혀가지 않게 해 준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들고양이들은 안락사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양이들은 그것을 모르고 덫 안에서도 펄펄 뛰고 난리를 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다시 우리집 뒷마당에 풀어주려고 몸을 굽혀 덫의 잠금고리를 풀던 그 순간에도 그 들고양이들은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고양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때를 따라 먹이고 있기에 잘 살고 있다. 날씨가 추워졌기에 못쓰는 아이스박스에 구멍을 뚫어주고 그 안에 담요도 깔아주어 그 안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게도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고통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생기는 일도 아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우리를 잡아 병원으로 보내신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우리 멋대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뜻대로 세상 욕심을 따라 살다가 죽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면 안된다. 우리 앞에 닥친 두려운 일을 보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풀어주려고 매듭을 풀고 계신데도 발버둥을 치고 펄펄 뛰는 꼴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51:12-16」 2018. 12. 1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51:12-23 · 2021. 2. 25. · 21분)
3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도 역시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오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는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부활의 모습은 문자적으로 믿는 자들이 부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낳지 못하고 다 죽은 상태와 죽은 자가 살아오는 기쁨을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
아무리 하나님께 신음하듯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가? 그래도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자.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해산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실것이다. 죽었던 자가 무덤 속에서 일어나 살아 돌아오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26:16-19」 2018. 9. 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26:1-27:1 · 2020. 6. 4. · 39분)
4고난에도 뜻이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 말도 못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아픈 것은 우리가 사는 무대인 자연환경과 주인공인 믿는 자들이다. 성령님은 실제 아픈 주인공이 아니다.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숨막히는 고통을 느끼시며 신음소리만 내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출산의 고통으로 숨도 제대로 못쉬며 신음하는 딸의 손을 잡고 함께 신음하는 친정 어머니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가 신음할 때 우리와 함께 신음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변호하시는 분 이라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의 무대에서 변호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27절에 나온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우릴 위해 신음소리만 내시는 성령님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성령님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 꿰뚫어보고 아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마음도 성령님의 신음소리만 듣고도 다 아신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8:26-27」 2025. 10.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8:18-30 · 2024. 1. 6. · 41분)
5착하게 산 사람이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아요.
요한은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 제자들을 통해 감옥 안에서 듣고는 자신은 곧 석방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요한은 계속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고 결국에는 악인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던 것이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요한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악인들은 벌을 받고 자신들처럼 잘 믿는 사람들은 복을 받고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죽는 날까지 악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욕을 먹고 핍박을 받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악인들은 계속해서 모든 일이 다 형통하고 건강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난 예수님께 낙심하여 그런 예수 안 믿는다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복이 있는 자인 것이다. 장차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산채로 변화되고 죽은 사람들은 부활하여 오늘 말씀에 나온 요한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1:2-6」 2021. 9. 2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1:2-15 · 2022. 7. 12. · 30분)
6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아도 될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가 다른 사람의 기도와 다른 점은 바로 그 다음에 나온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뜻이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셨기에 이 시간이 사라지게 해 달라 하셨고 이 잔을 치워 달라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드리신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어떻게 기도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는 가까운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그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까운 세 제자들과 나누신 것은 고통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경우에는 다른 형제 자매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순간에도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함께 나누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으며 기도하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우리도 가까운 사람들을 양육하면서 우리의 고통스런 마음을 그들과 나누고 함께 간절히 기도하도록 해야한다. 하지만 무조건 그 고통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뜻대로 인도해 달라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기도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35-36」 2022. 9. 2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2-42 · 2016. 2. 8. · 41분)
7아픈 가족을 보면서 무엇을 붙잡아야 하나요?
사랑하셨으므로 이틀을 더 머무셨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사랑한다면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NIV 번역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어는 분명히 사랑하셨으므로 그 소식을 들으셨을 때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는 뜻이다. 성경 본문이 이해가 안된다고 고치면 안된다. 이해가 안되고 말이 안되면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품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틀을 더 기다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당장 와야 한다고 했겠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도 어머니의 요청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틀을 더 기다리는 것이 마르다의 가족들에게도 진정으로 복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청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들을 사랑하시던 분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들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려고 시범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11:1-6」 2024. 4. 1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11:1-16 · 2017. 10. 15. · 35분)
8고난이 지나간 뒤에는 무엇이 남나요?
이는 시편 1편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의 대조 와도 같다. 저주를 받을 악인은 세상의 힘있는 사람들이 항상 물이 흐르는 시냇가 인줄 알고 그에게 안겨 그에게 뿌리를 내리지만 사실은 잠시 비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다. 사실은 우기를 빼고는 일년 내내 메마른 사막에다가 소금기까지 있어 말라 죽어 버린다. 그러나 복을 받을 의인은 항상 물이 흐르는 시냇물과도 같은 여호와 하나님 품에 안겨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항상 공급해 주시는 물로 인해 환란이 닥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뜨거운 햇볕에도 오히려 잎이 더 푸르게 되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은 환란이 오면 말라 죽어 버리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환란은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항상 생명의 물을 공급해 주셔서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인 말씀으로 날마다 공급을 받는다면 우리가 만나는 환난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뜨거운 환난이 지나가면 오히려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예레미야 17:5-8」 2019. 4. 1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예레미야 17:1-17 · 2022. 6. 23. · 31분)
9남의 고통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는 말 잘하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존경받는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한 몸인 형제 자매의 아픔을 자신들의 아픔으로 알고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많은 물질로 돕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어려울 때 남이 도와주는 물질 자체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물질도 마음이 담기면 위로를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단순히 물질로만 돕는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형제자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알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다 함께 나누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16:17-18」 2026. 9. 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6:13-24 · 2020. 2. 7. · 42분)
10하나님은 내 눈물을 정말 보고 계실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딸을 잃은 지도자는 직접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려 말로 부탁했을 때 그 마음을 보시고 들어주셨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갈 수도 없는 사람이다. 말로 치료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거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몰래 만진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 속으로 생각만해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우리 마음을 쏟아 놓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눈물 닦아 주시며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9:20-22」 2021. 8. 2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9:18-26 · 2022. 2. 10. · 27분)
02불안과 미래
11불안한 미래, 무엇을 붙잡아야 하나요?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하게 두고, 오늘은, 또는 오늘만 해결해라, 이런 뜻입니다. 내일이란 우리의 모든 미래를 뜻합니다. 내일 일은 우리가 생각해서 걱정한다고 우리의 미래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어진 일을 걱정하며 우리가 열심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한 것은, 내일도 이런 괴로움이 오면 어쩌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 안정섭 · 2021. 10. 25. 마태복음 6:19-34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33:55)부터
12걱정이 멈추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사탄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대해 마태복음 4:4절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사탄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걱정과 염려를 심어주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염려들은 다 내려 놓아야 한다. 우리가 염려하는 대신에 하나님 말씀을 계속 되뇌이며 묵상하고 간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22-24」 2023. 3.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13취업도 집도 막막한데 믿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오늘 있다가 내일은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판의 잡초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신다는 것이다. 잡초들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말라 죽으면 베어다가 땔감으로 밖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잡초들은 나무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땔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잡초들까지도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예수님 말씀의 초점은 인간이 아무리 근심 걱정을 하며 힘들게 노동을 하며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입을 것을 준비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입을 것에 대한 근심을 마음 중심에 두지 말고 그 자리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두라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세상 근심걱정이 자리잡고 있다면 이는 우상숭배인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27-28」 2023. 3. 2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14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세상에 악이 더 번성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 없다. 세상이 악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악하다고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가 먼저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 고난 중에도 참고 견디며 성장해서 우리가 귀한 알곡을 맺으면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끝부분처럼 그렇게 서로 공감하며 치유 받고 위로를 받으며 같은 마음이 되어 평화를 누려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3:28-30」 2021. 10. 2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3:24-43 · 2022. 9. 12. · 32분)
15내일 일을 모르는데 계획은 왜 세워야 하나요?
이것은 그러한 의식주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도 말고 계획도 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염려한다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염려 대신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까 염려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다시 당부하시면서 이러한 염려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32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이방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 하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믿는 자들도 의식주 문제로 궁핍함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러한 염려는 믿는 자들이 우선순위를 두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33절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먼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고 그 일들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6:25-34」 2021. 7. 1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6:19-34 · 2021. 10. 25. · 39분)
16기다리라는 말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기다려야 한다. 내게 닥친 고난이나 불행을 보고 한탄하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고 때가 되면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실 것이다.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50:1-3」 2018. 12. 8.
17하나님을 믿으면 앞길이 다 잘 풀리나요?
오늘날 우리도 예수를 믿으면 고통이 전혀 없고 항상 만사 형통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쓰러질 때도 있을 것이다. 캄캄하고 축축한 지하 동굴 감옥에 갇힌 것과도 같은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미가는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신다" 라고 고백한다. 우리 역시 그런 상황에서도 빛되신 주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빛을 볼 수 있다면 소망 중에 견딜 수 있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미가 7:8-10」 2020. 11. 2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미가 7:14-20 · 2025. 9. 25. · 27분)
18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요?
두번째로 들어오는 것은 베드로의 모습이다. 믿음이 부족했을 때 필자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응답해 주신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려운 일들과 두려운 일들을 바라보았을 때 물에 빠졌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우리 주님만 바라볼 때는 풍랑이 이는 바다도 걸을 수 있지만 그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물에 빠지는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자.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맡기신 사명을 절대로 놓치지 말자.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4:22-33」 2021. 11. 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4:22-36 · 2022. 10. 11. · 31분)
19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우리 인생도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도 같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에 나와있지 않지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깨닫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길은 때로는 고난의 길이고 좌절의 길인 것 같지만 항상 옳은 길이고 축복의 길이다. 말없이 따라가면 되는 축복의 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26:7-9」 2018. 8. 3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26:1-27:1 · 2020. 6. 4. · 39분)
20죽음 뒤에는 정말 무엇이 있나요?
여기서 바울은 죽은 뒤에 무의식 상태를 거친 후 나중에 재림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고 하지 않는다. 몸을 떠나면 즉시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몸을 떠나면 그 중간 상태의 영혼이 수면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즉시 함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은 재림시에 받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성령을 영원한 몸을 주겠다는 증명서로 주셨으니 전혀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더러운 옷을 입은 노숙자였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어버리라고 하면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미 옷을 사다가 옷장에 넣어놓았다며 열쇠까지 준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새집에 입주할 수 있는 증명서이고 새 옷이 담긴 옷장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5:7-8」 2026. 10.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1-10 · 2014. 1. 13. · 32분)
03비교와 자존감
21남과 비교하며 작아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대로 여러분들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대단하게 보이지 않아도, 여러분이 부자가 아니라도, 특별한 은사가 없어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아름다운 천으로 감싸서 아름답게 보이게 여러분들을 가려 주시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렇게 귀하게 가려 주십니다. 여러분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 가려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안정섭 · 2020. 1. 27. 고린도전서 12:1-26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32:34)부터
22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요?
질그릇은 그릇 중에 가장 가치가 없는 그릇이다. 우리 조상들도 질그릇 항아리에 보물을 담아 땅을 파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또 커다란 질그릇 항아리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 판자를 놓아 화장실로 만들기도 했다. 질그릇 항아리 자체는 별 값어치가 안나가는 그릇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이다. 디모데후서 2:20절에서도 바울은 큰 집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들이 있는데 귀히 쓰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 했다. 그릇의 재질보다는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보물단지도 되고 똥단지도 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4:7-8」 2026. 10.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4:7-18 · 2014. 1. 8. · 37분)
23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 모두도 바디매오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유명한 정치가나 대단한 기업을 소유한 재력가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명망 높은 학자도 아니기에 모두가 그냥 무시할 존재들이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이신 우리 주님께서 멈추어 서셔서 우리를 불러 주셨을 때 모두가 무시하던 존재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0:49-50」 2022. 8. 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46-52 · 2015. 10. 5. · 40분)
24남들의 시선이 너무 신경 쓰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사람들이나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 보기에 성실한 그리스도의 마당쇠로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절대로 자신의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잘했다는 칭찬이나 자신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에 따라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 뿐이다.
교회 오래 다니고 말씀 대로 열심히 순종하며 산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기도도 시간을 정해놓고 열심히 하고 헌금과 구제도 정말 열심히 하고 교회 일에 봉사도 열심히 한다면 바울처럼 교회 안 사람들이나 교회 밖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도 나는 이만하면 괜찮은 신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는 생각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교회 성도들의 눈을 의식해서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난 것도 역시 사람들을 의식해서 신앙생활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직 주님의 심판날에 상 받을 것만 생각하고 일하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4:3-4」 2026. 3. 1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4:1-4 · 2016. 1. 1. · 42분)
25잘하는 것이 없는 나도 쓰임받을 수 있을까요?
16절은 15절과 완벽히 똑 같은 구조이다. 또한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나는 몸에 붙어있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는 것 때문에 몸에 붙어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발이 손과 비교해서 시기하는 것처럼 귀도 역시 눈을 시기하여 하는 말을 가정한 것이다. 눈은 얼굴을 대표한다. 사람들과 만나면 항상 눈을 먼저 보기 때문이다. 귀는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도 많다. 그래서 귀는 눈을 시기하여 자신은 몸에 붙어있지 않다며 자기 스스로를 몸에서 제외시키고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는 눈과 마찬가지로 몸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17절은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면 어떻게 듣느냐는 것이다. 또 만일 온 몸이 듣는다면 어떻게 냄새를 맡느냐는 것이다. 역시 바울은 열등하게 여겨지는 지체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열등하게 여겨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사실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이 더 큰 것이다. 귀가 눈과 비교하여 열등감을 느낄 때 귀를 격려하면서 동시에 귀보다 더 못하다고 느낄 수 있는 코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스스로 우월하게 느끼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12:14-17」 2026. 6.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2:1-26 · 2020. 1. 27. · 36분)
26칭찬받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 때 각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 마음 속의 생각까지도 다 밝히시는 것은 상을 주기 위한 것이지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동안 우리가 했던 일과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했던 것까지 다 드러내어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일했는지 보고 그에 따라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스스로 판단해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은 심판주로 오실 우리 주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이나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마치 종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주인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엄연한 월권이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맡은 사람들을 신실하게 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4:5」 2026. 3. 1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4:6-13 · 2017. 1. 1. · 38분)
27내 모습이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게 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본래의 지음 받은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전에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희미한 영광도 사람들은 눈이 부셔서 계속 쳐다보지 못했다 했다. 그러나 우리는 햇빛보다 더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영광스런 존재이다. 그 영광을 우리 몸에 받아 그 영광을 서로에게 비출 수 있는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되기까지 계속해서 닮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 영광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신 그 사랑이다. 우리도 그 사랑을 닮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것이다.
우리 서로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용서가 있는지 바라봐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면 그 영광이 시작된 것이다. 그 영광을 서로에게 비추어주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3:16-18」 2026. 10.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3:7-18 · 2013. 12. 16. · 30분)
28겸손과 자기 비하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렇다면 metron이란 말은 측정도구를 뜻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자신의 믿음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인 자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측정하는 표준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합격이라고 미리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합격시켜 준 것이기에 그 자비하심에 한없는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라는 자로 잴 수 없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표준을 가지고 자신을 측정하라는 것이다. 민약 그리스도라는 표준을 벗어나서 생각한다면 교만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표준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겸손을 표준으로 삼아 자신을 재어보고 교만을 버리라는 뜻이다. 그래야 교회가 한몸이 되어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2:3」 2025. 12.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2:3-8 · 2016. 9. 10. · 38분)
29다른 사람이 잘되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세상사람들의 공평함은 서로의 이기심이 충돌했을 때 힘센 자가 정한 타협점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그러한 타협점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 근거를 둔다. 바울은 로마서 9:14-15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이처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자녀가 있지만 더 안타깝게 보이는 자녀가 있는 법이다. 좋은 직업을 갖고 잘 사는 자녀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자녀가 더 안타깝게 느껴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어렵게 사는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 더 주면 잘사는 자녀들은 차별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오늘 본문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들을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20:13-16」 2021. 12. 1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20:1-16 · 2023. 5. 3. · 32분)
30나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해지나요?
우리 몸에서 머리카락은 가장 가치가 없는 부분이다.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자라기 때문이다. 서양문명이 들어올 때 고종임금이 단발령을 내렸지만 우리 조상들은 목은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고 했다. 그것은 서양 문물 앞에서 전통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뜻이지 실제 머리카락이 가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가치 없는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면 우리 몸 전체는 얼마나 더 소중하게 돌보시고 보호하시겠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카락 조차도 몇개인지 다 세놓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31절은 오늘 본문의 결론이다. 원문에는 “그러므로”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참새보다 훨씬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털까지도 다 세놓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지키시므로 라는 뜻이다. 우리는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의 두려워 말라도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어 놓고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진짜로 두려워할 대상인 하나님은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놓고 아무도 우리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0:29-31」 2021. 9.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0:24-31 · 2022. 5. 30. · 23분)
04하나님의 뜻과 진로
31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우리 역시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한 뒤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우리 생각을 따라가면서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기가 정말 쉽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말하면서도,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 안정섭 · 2020. 3. 8. 사도행전 21:1-16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32:39)부터
32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1절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찾으러 다니고 못찾을 때 두려워하는 것의 반대가 되는 행동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오직 그의 나라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가 오길 바란다는 뜻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이익들보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들을 찾으러 다닌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는 또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는 뜻이다. 이는 팔복에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하나님의 의를 갈급하게 찾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러한 일을 행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런 것들은 더해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은 그냥 덤으로 더해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 물질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두고 걱정하며 찾으러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에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29-31」 2023. 3. 2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33내가 원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면 어떻게 하나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내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간절한 기도이고 응답받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라기 보다는 자기 욕심에 이끌려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주님처럼 우리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내려놓기가 정말 어려울 때 그것 내려놓게 해 달라고 온 힘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진짜 간절한 기도이고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22:39-44」 2023. 8.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22:31-46 · 2026. 4. 12. · 35분)
34문이 닫힐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비두니아로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8절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고 했다. 무시아를 지났다는 말은 멈추지 않고 통과해서 지나갔다는 뜻일 수 있다. 또 무시아를 정통으로 지나지 않고 그 지방의 가장자리를 지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드로아는 무시아 안에 있는 도시이다. 무시아에 접어 들어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중요한 길목에서 두 차례나 막으셨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드로아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드로아는 복음 전할만 한 큰 도시도 아니고 에게해에 접해 있기에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막다른 곳이다.
합리적인 사고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다 Via Sebaste를 따라 남서쪽으로 가서 에베소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 옳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중심도시이고 그 주변 지역의 여러 도시들로 퍼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길을 막으셔서 북쪽으로 갔고 거기서도 문명이 발달하고 유대인 인구가 많은 비두니아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령께서 막으셔서 복음을 전할 곳이 없는 막다른 길목인 드로아로 간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보여도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면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말도 안되는 길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대단히 어렵기에 대부분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합리적인 길을 선택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사도행전 16:6-8」 2025. 3. 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사도행전 16:6-10 · 2019. 12. 8. · 41분)
35평범한 직장 생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에 순종해야 한다.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만 멈추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나머지 6일동안 직장이나 가정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며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흩어져서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56:1-8」 2018. 12. 2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56:1-57:2 · 2021. 4. 8. · 32분)
36부르심이라는 말이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우리도 역시 주께서 무한정 공급해 주시는 권능만 믿고 가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준비하신 사람들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머물 곳도 무한정 공급해 주신다는 것만 믿고 가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 권능을 가진 사람임을 나타내는 지팡이를 들고 우리도 주께서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 모두가 다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터나 가정이나 이웃이나 우리의 모든 일상의 삶이 바로 주께서 가라 하시는 곳이다. 갈 때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지팡이를 들고 가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6:7-9」 2022. 5.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6:7-13 · 2015. 3. 16. · 37분)
37선택을 잘못하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나요?
바울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렇게 말하는가? 창12:1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이집트로 갔다. 거기서 아내를 동생이라 속이다가 큰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창12:1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호해주시고 의롭다 해 주신 것이다. 또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고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려고 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위로는 자랑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창15:6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고 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는 실수가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을 때 항상 하나님을 믿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은 마치 어린 자녀가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는 것과도 같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4:1-3」 2025. 9. 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4:1-12 · 2024. 1. 6. · 31분)
38기도하고 결정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동행하다 보면 거센 풍랑을 만난다. 그런 풍랑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오늘 말씀의 상황과도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때에 우리는 거센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평안히 주무시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 주님과 함께 평안을 누려야 한다.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에 어떤 풍랑이 우리를 덮치더라도 두려워 말고 씨를 뿌려야 한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4:37-38」 2022. 5. 1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4:35-41 · 2015. 2. 9. · 38분)
39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까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서로 다른 일을 맡기셨다. 어떤 이들에게는 빌리 그래함처럼 능력있는 말씀을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하는 역할을 맡기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존 스토트처럼 많은 글을 남겨 믿음의 글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일을 맡기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는지 깨닫고 우리는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고 우리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열 달란트 맡은 자나 다섯 달란트 맡은 자나 한 달란트 맡은 자나 맡은 일에 충실했다면 받는 보상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21:20-23」 2024. 8.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21:20-25 · 2018. 4. 29. · 32분)
40꿈을 좇는 것과 욕심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래서 33절 뒷부분에서 바울은 나의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그 결과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혹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되고 싶어하는 것이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나오도록 길을 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10:31-33」 2026. 6. 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0 · 2019. 1. 1. · 32분)
05실패와 다시 일어섬
41실패한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주께서는 내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한 거예요. 쓸데없는 말을 두 번 반복한 게 아니에요. 앞에서는 내 마음, 내가 잘못한 거, 모든 거 다 아시고, 지금은 내가 진짜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 숨김없이 고백하는데, "이제는 진짜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말은 "전에는 세상 것도 사랑하고 주님도 사랑했지만 이제는 오직 주님만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또다시 "내 양 떼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 안정섭 · 2018. 4. 22. 요한복음 21:15-19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21:16)부터
42같은 잘못을 자꾸 되풀이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잘 하겠다고 결심해도 되지 않는다. 우리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판단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반드시 실패한다. 예수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공감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기도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갖고 따라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번이나 돌아와 기도하는지 확인하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37-41」 2022. 9.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2-42 · 2016. 2. 8. · 41분)
43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도원 주인은 저들에게 일한 대가를 준 것이 아니다. 포도원 주인은 저들을 데리고 자기 포도원에 가면서 좀 더 자세히 물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일했냐? 물으니 그들이 며칠째 일을 못했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포도원 주인은 굶주리고 있는 저들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곡식을 사다가 가족들에게 먹이라는 뜻이지 저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 방식의 공평하심이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우리가 한 일에 따라 보상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불쌍히 여겨 더 주고 싶어 더 주고 먼저 주고 싶어 먼저 주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품삯을 주실 때도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 날 주님은 우리도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에게 품삯을 주실 것이다. 이것이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말씀의 뜻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20:1-9」 2021. 12. 1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20:1-16 · 2023. 5. 3. · 32분)
44실패한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오늘 말씀은 아버지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모든 주도권도 아버지에게 있다. 아들은 단지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 뿐이다. 아들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죄를 고백하며 종으로 써 달라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듣지도 않고 그 입을 막고 아들로 받아들이며 최고의 기쁨을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주도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멸망할 세상 영광을 향해 살다가 아버지께로 향해 돌아선 것 뿐이다. 죄를 말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비유를 보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아버지를 향해 돌아서기만 해도 아버지는 다 아시고 오늘 비유에서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온 것처럼 기뻐하신다. 우리의 구원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있다. 날마다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멀리 바라보고 계시다가 돌아오는 우리를 발견하시고는 치맛자락 높이 들고 달려와서 우리를 안아 주시고 아들과 딸로 맞아주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5:20-24」 2023. 5. 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5:11-32 · 2025. 11. 9. · 42분)
45포기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미 제자들은 모두 다 실패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기에 두려움 때문에 모두 도망갈 것이라는 것도 다 아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라고 외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치 잘 준비된 십자가의 군사인 것처럼 취급하고 "나를 따르라!" 라고 외치고 계신 것이다.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면서도 말이다. 유다 뿐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군인들이 무장하고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 적들을 향해 함께 가자는 것이다. 나와 함께 잡혀가서 나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잠만 자고 있을 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 라고 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잠에서 깨어나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마태복음 28:19-20절에 나온 것처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예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먼저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깨우면 반드시 고난도 함께 받게될 것이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간절한 기도한 뒤에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 라고 해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42」 2022. 9.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2-42 · 2016. 2. 8. · 41분)
46넘어진 사람을 하나님은 다시 쓰시나요?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두번째 임했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1:1절에서 나왔다. 여호와의 말씀은 2절에 보면 "일어나라! 니느웨로 가라!" 라고 하신다. 가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한 것을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신다. 3:1-2절은 1:1-2절과 거의 똑같다. 그런데 요나는 1:3절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을 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요나를 책망하신 뒤에 두번째 명령을 하셨어야 옳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하나도 없고 1:1-2절과 똑같이 가서 선포하라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으시며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나 3:1-4」 2020. 10. 3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나 3:1-4:3 · 2025. 7. 10. · 31분)
47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뒤에 바싹 따라 붙어야 한다. 바싹 따라 붙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동 하시는 대로 하나 하나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예수께서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하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증거하라고 하실 때 담대히 증거하면 된다. 예수께서 지상사역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 뒤에 바싹 붙어 그대로 흉내내며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 뒤에 바싹 붙지 않았기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제사장이나 유다나 공회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 다른 점은 바로 오늘 말씀 끝에 나온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을 때 땅바닥에 몸을 던져 통곡을 했던 것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는 베드로처럼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도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실패했지만 차이는 바로 말씀을 생각하고 통곡한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실 때 그 말씀 앞에 엎드려 통곡을 해야 한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실패한 우리도 베드로처럼 성공할 수 있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69-72」 2022. 10. 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66-72 · 2016. 2. 28. · 36분)
48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때 무엇이 남나요?
두번째 쌍은 8절 뒷부분에 있는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답답한 일을 당한다는 말은 멀리서 본다는 말에서 온 말이다. 귀한 것을 발견했어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갖겠지요. 그래서 그 뜻은 잃는다는 것이다. 또 낙심한다는 말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것이다.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몽땅 잃는다는 뜻이다. 바울이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대적들은 가까이 있어 위기였다. 완전히 쫄딱 망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4:7-8」 2026. 10.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4:7-18 · 2014. 1. 8. · 37분)
49다시 시작할 힘은 어디서 오나요?
낡아지는 것과 새로워지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동작이다. 낡아지는 것과 새롭게 되는 두 과정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는 이 둘이 서로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육체적으로 더많이 소모할 수도록 영적으로 더 강건함을 얻는 것 같다. 이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더 많이 버릴수도록 조각상은 성장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날마다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길게 보면 그렇게 날마다 새롭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롭게 된다는 말은 신적 수동태이다. 따라서 바울이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날마다 속사람을 새롭게 갱신해 주신다는 뜻이다. 새롭게 하는 행위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성령님이다. 속사람을 새롭개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바울의 영적 성장과 인내는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속적 사역의 결과이다. 날마다 새롭게 되는 속사람의 과정이 누적된 결과로 3:18절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점진적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4:16-18」 2026. 10. 1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4:7-18 · 2014. 1. 8. · 37분)
50후회가 나를 놓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는가? 고발한다 또는 송사한다고 번역한 말은 공식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어떤 사람을 법정에 세운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검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경찰이 잡아다가 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법정에 세웠어도 판사가 재판석에서 무죄라고 선고하면 끝이다. 같은 죄로 다시 잡아다가 고소할 수 없다. 세상의 판사도 그런 권한이 있는데 하물며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재판관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무죄라고 했는데 누가 다시 법정으로 끌고 가겠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사탄 조차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8:33-34」 2025. 10.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8:31-39 · 2024. 1. 6. · 30분)
06관계와 용서
51관계에 지치고 용서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리스도처럼 낮은 생각,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원수 같은 사람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기 위해서 애를 쓰며 노력을 하고 있다면, 잘은 못해도 그런 사람들은 영원한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높임을 받으려고 하면서 계속 공격하고 싸우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을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저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이 있고요. 우리 모두 완벽하진 않아요. 그러나 의지적으로 그것을 내려놓고 우리가 순종하려고 해야 되는 겁니다.
— 안정섭 · 2026. 7. 19. 베드로전서 3:8-22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43:24)부터
52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꼭 용서해야 하나요?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용서를 한없이 반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한결 같은 사랑으로 한없이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면 그렇게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헤세드의 사랑으로 한없이 용서해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 사랑을 한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8:21-22」 2021. 12. 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8:21-35 · 2023. 1. 30. · 26분)
53용서했는데도 마음이 아픈 것은 왜일까요?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노력을 해도 마음 속에 여전히 분노가 남아있을 것이다.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원수갚지 말라고 19절에서 분명히 말한다. 대신에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하시길 원수 갚는 것이 내가 할일이니 내가 갚겠다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2:17-19」 2025. 12. 1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2:9-21 · 2024. 1. 6. · 51분)
54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도 아픕니다.
자주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시절 용서받지 못한 상처가 거머리처럼 아직도 그 마음에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그 거머리들을 떼어낼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깨닫고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날마다 드리면 그 거머리는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큰 죄인인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 받은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 은혜를 진정 감사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일으키는 도덕적 괴물 본성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8:21-35」 2021. 12.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8:21-35 · 2023. 1. 30. · 26분)
55부모님과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그러나 말라기는 혼자서 새롭게 된다고 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보고 돌아서세 한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는 육신의 자녀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도 뜻한다. 말라기가 말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본보기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각자가 먼저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변화된 본보기를 보여주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복된 삶을 살도록 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말라기 4:4-6」 2021. 4.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말라기 4:1-6 · 2026. 6. 11. · 29분)
56사람에게 실망해서 마음을 닫고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참고 견디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불신자들 도울때 그렇게 공을 들여 섬겼는데도 그들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배반하고 우리를 비난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바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수께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말 안듣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품으려 하셨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참고 그들을 보호하는 어미 닭의 날개가 되어야 하고 그들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13:6-7」 2026. 7. 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3:9-13 · 2021. 1. 1. · 42분)
57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자신들을 해치려고 추격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5:44절과 누가복음 6:27-28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이 듣고 기억하고 있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러한 명령은 사실상 불가능한 명령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10:27절에서도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2:14-16」 2025. 12. 1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2:9-21 · 2024. 1. 6. · 51분)
58먼저 사과하는 것이 지는 것 같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께서는 두가지 예화를 드시면서 설명하신다. 첫째 예화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다가 형제를 향한 분노가 생각나면 그를 찾아가 용서하고 화해를 하라는 것이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이고 싶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두번째 예화는 빚을 안 갚아서 분노한 빚쟁이에게 고소당했을 경우 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빚을 갚고 화해하라는 것이다. 둘 다 서로의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을 때 그 분노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은 살인죄와도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인죄를 무시무시한 죄로 보지만 남에게 원한을 품고 분노하고 욕하는 것은 심각한 죄로 보지 않기 쉽다. 사람들은 행동으로 드러난 것만 죄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인의 동기인 분노와 욕하는 것은 살인죄와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행동 자체를 보지 않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바울도 로마서 12:18에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라고 했다. 물론 해도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화해하도록 하셨으니 우리도 최선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과 평화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해야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5:21-26」 2021. 6. 3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5:21-26 · 2021. 9. 13. · 33분)
59좋은 친구는 어떻게 만나고 지켜야 하나요?
바울 일행이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갈 때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다고 했다. 아리스다고는 누구인가? 아리스다고는 20:4절에서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이다. 골로새서 4:10절에서는 함께 죄수된 자라고 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죄수가 아니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으면서 바울을 돕던 사람이기에 바울은 함께 죄수된 자라고 한 것이다. 단순히 바울을 돕던 사람이 아니다. 빌레몬 24절에는 동역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하던 동역자이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시중을 들어주던 사람이다. 바울을 도우며 함께 동역하기 위해 그 위험한 뱃길에도 함께 한 믿음의 동료였다.
2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Philostratus의 글에 보면 Apollonius의 제자들은 죽음의 위협을 앞두고 34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러한 경향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좋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다니지만 죽게 되면 함께 하는 사람이 적은 법이다. 그러나 바울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했던 것이다. 아리스다고도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동행하며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던 바울의 진정한 친구 중 하나였다. 나에게는 왜 이런 동역자가 없냐고 하지 말라. 우리가 바로 그런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사도행전 27:1-5」 2025. 6. 2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사도행전 27:1-12 · 2020. 5. 24. · 46분)
60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우리도 남을 함부로 정죄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남의 하인을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서로 다른 점이 있더라도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이단적인 신앙이나 범신론적 신앙이나 종교 다원주의 같은 신앙들을 다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출신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관습은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4:1-4」 2025. 12. 3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4:1-12 · 2024. 1. 6. · 38분)
07돈과 성공
61돈과 성공, 어디까지 좇아도 될까요?
내가 엄청나게 많이 가져 봤는데, 더 많이 가지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만족함이 없더라. 이게 솔로몬이 죽기 전에 한 말이에요. 이 구절에서 죄는 돈을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하수인인 탐욕은 계속해서 '더 가져라, 더 가져라'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물질에 대한 탐욕은요,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바닷물은 고농축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몸에서, 신장에서 감당이 안 된대요. 그래서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목마른 것이 해소가 되지 않고 갈증은 계속 더 납니다.
— 안정섭 · 2025. 8. 25. 누가복음 12:13-21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35:45)부터
62돈이 많으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한마디 덧붙인 것이 15절이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잘 보라! 그리고 지켜라!" 라고 하셨다. 무엇을 잘보고 무엇으로부터 잘 지키라는 것인가? 그것은 탐심이다. 탐심이 그 마음 속을 뚫고 들어오는지 잘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탐심이 마음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지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인생의 가치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소유에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데 두라는 뜻이다.
물질에 대한 탐심이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온다면 그 탐심은 우리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그 탐심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 그렇게 되면 잠깐 있다가 사라질 안개와 같은 이 땅의 삶에 정신을 빼앗겨 영원한 생명을 잃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님은 무소유를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잘 지키라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는 환난과 핍박이 임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고 장차 영원한 재판관으로 재림하실 분이라고 담대히 증거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13-15」 2023. 3.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63그리스도인은 가난해야 하나요?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이 죄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부자였다. 예수님을 마지막까지 섬기던 아리마대 요셉도 큰 부자였다. 바울을 돕던 루디아도 큰 부자였다. 부자되는 것이 죄악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부자는 자기 마음 속으로 침입해서 하나님 노릇하는 탐심을 막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부자는 어떻게 해야 했어야 할까? 누가복음 12:31절에 나와 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할지 33절에 나와 있다. 소유를 팔아 자선을 베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하늘나라에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거기에 재물을 쌓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 곧 하나님의 명령은 전재산을 몽땅 다 드리라는 뜻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거두었으면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그 물질을 사용했어야 했다. 남는 것으로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많은 소출을 주신분은 하나님이시고 분명히 주신 뜻이 있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16-21」 2023. 3. 2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64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 같아 부러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날도 세상은 악인들이 형통하고 의인들은 고난 중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지도 않으신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쁨과 쾌락을 위해 불꽃놀이처럼 살다가 죽는 것이 옳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누리고 즐기며 이사야 55:11절에 나오는 굶주린 개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옳다. (오류 확인: 굶주린 개의 비유는 이사야 56:11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을 다시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무시를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보석과도 같은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곁에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는 일을 할 보배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말라기 3:16-18」 2021. 4. 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말라기 3:8-13 · 2026. 6. 4. · 35분)
65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거짓말과 헛맹세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하게 살다보면 무능하다, 멍청하다, 혼자 잘났다 등등의 별의 별 소리를 다 듣게 된다. 그렇게 욕을 먹더라도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 몇마디 거짓말이면 사업에서 성공할 수도 있고 많은 돈을 더 가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 자녀들은 그런 우리의 거짓말을 보고 배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거짓말로 성공하게 만들어 영원히 멸망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 시편51:10에 보면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셔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록자처럼 하나님께 여러분을 새롭게 해달라고 간구하도록 하자. 사도요한도 요한1서 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했다. 세상사람들은 다 말로만 하며 속이더라도 우리들 만이라도 말로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비결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5:33-37」 2021. 7. 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5:33-37 · 2021. 10. 4. · 30분)
66헌금은 왜 드려야 하나요?
우리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된 이름을 위해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십일조와 모든 헌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모든 헌금이나 예배는 부담을 느끼며 억지로 참여해서는 안된다. 기쁨과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죄를 모두 씻어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43:22-28」 2018. 11.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43:14-28 · 2020. 11. 5. · 31분)
67욕심과 성실함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오늘날 우리가 지난 날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을 따라 우리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쌓아 두었을 때를 돌아보면 이와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수고를 했지만 모두 엉뚱한 일들이 터져서 엉뚱한 곳으로 다 새나갔던 일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에 쌓아 둔 것들이 이기심과 탐욕이라면 내려 놓아야 한다. 대신 우리 마음 가득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쌓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시편 128:2절에서 말씀하신대로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가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축복이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걷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수고한 열매를 먹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축복이다. 만약 오늘 우리도 우리 마음 안에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가득 쌓아두고 그것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으로 수고한 것들을 치셔서 헛수고로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고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학개 2:15-17」 2021. 2.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학개 2:1-17 · 2026. 1. 29. · 31분)
68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며 살아야 하나요?
3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너희 보물이 있는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재물을 사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고 이 세상에만 있다면 움켜쥐고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쌓아둘 것이라는 뜻이다. 재물을 사용하고 헌금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지 아니면 이 땅에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죄라는 뜻이거나 물질을 다 팔아서 나누어주고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화폐도 많이 쓰였지만 주로 현물화폐가 많이 쓰였기에 가지고 있는 곡식이나 옷감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재물을 관리하라는 뜻이다. 미래를 염려하며 재물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라는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돌보아주신다는 뜻이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지 점검해 보도록 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2:32-34」 2023. 3. 2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 · 2025. 8. 31. · 38분)
69일을 위해 신앙을 잠시 미뤄도 될까요?
이 제자의 가장 큰 목적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의도는 경제적 안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산다는 것은 경제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으니 그 때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제자의 경계선은 경제적 안정이다.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신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나 부를 축적하게 놔두고 넌 그걸 다 포기하고 그러한 죽은 자들의 경계선 건너편으로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율법학자에게는 그가 누리던 세상의 명예라는 경계선을 넘어 오라고 하셨다. 이 제자에게는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오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우리가 쌓아 놓은 경계선을 넘어 따라 오라고 하신다. 우리의 경계선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가 쌓아 놓은 경계선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무리들 속에 묻혀 있으면서 우리의 생각과 욕심대로 살면 안된다.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경계선 너머로 예수님을 따라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8:21-22」 2021. 8.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8:18-22 · 2021. 12. 27. · 30분)
70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은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히스기야와 같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일이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가진 것과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뻐하며 그러한 것들을 의지한다. 특히 물질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던 사람들이 물질이 풍부해지면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의지한다. 물론 말로는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고 사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히스기야도 그랬다. 오늘날 믿는 자들 중에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고통 중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축복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고 물질도 부족함이 없고 자식들도 모두 다
잘 되고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위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이지 세상에서 성공이나 만사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이 진정한 축복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39:1-8」 2018. 10. 2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39:1-8 · 2020. 9. 10. · 20분)
08의심과 믿음
71믿음이 흔들리고 의심이 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도 역시 두려움과 믿음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믿음의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러한 리플렉스 카메라로 성도님들 사진을 찍어 줄 때 배경은 뿌옇게 흐려지게 하고 인물만 살리게 합니다. 배경이 사라졌습니까? 그대로 존재합니다. 다만 저는 초점을 인물에게 맞춘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역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의 믿음의 초점을 맞출 때,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대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안정섭 · 2022. 10. 11. 마태복음 14:22-36 설교에서
목소리로 듣기 · 이 말씀이 나오는 대목(22:01)부터
72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확신이 없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어린 헬렌 켈러는 Anne Sullivan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촉감을 통해 의사소통 하는 법을 배웠다. Miss Sullivan이 헬렌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했을 때 헬렌은 이미 하나님을 안다고 응답했다고 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알았을까? 이처럼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이러한 일반계시에 대한 설명은 사도행전에도 나온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죽이려는 무리들을 피해 아테네까지 왔다. (오류 확인: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를 한바퀴 둘러본 뒤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며 하나님을 소개했다. 24–27절에 보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셨고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다고 했다. 그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20절 끝부분에서는 이처럼 자연 만물을 통해 드러내셨기에 아무도 핑계를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20-23」 2025. 8. 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18-32 · 2024. 1. 6. · 50분)
73성경을 그대로 믿을 수 있나요?
복음서들은 목격자들이 오랫동안 다니며 증언하던 내용들을 30년쯤 지난 후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부분을 증언하던 목격자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고 정말 놀랍다는 말투로 증언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그 놀라움을 우리도 함께 느끼며 그대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간들의 논리와 과학적 지식으로 제한하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불신앙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1:4-6」 2022. 8. 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1:1-11 · 2015. 10. 12. · 43분)
74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응답도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응답인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오늘 본문에서 극적인 장면으로 기록했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를 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산혜립도 돌아가자 마자 바로 죽었어야 했는데 20년이나 더 살다가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우리의 기도도 즉시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신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응답이 없는 경우에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들은 모두 헛것들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만 참되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37:36-38」 2018. 10. 1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37:8-38 · 2020. 8. 27. · 27분)
75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15절 뒷부분에서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해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게해서 정신좀 차리게 하려고 하신 것이지 절대로 버리거나 잊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6절은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라고 했다. 새긴다는 말은 잉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문신이나 불로 도장을 찍는 것을 말한다. 이는 깜짝 놀랄만한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노예의 손바닥에 주인의 이름을 새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온의 손바닥에 여호와의 이름을 새기고 여호와의 것이라고 표시했어야 옳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자신의 종인 시온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꾸로 자신이 시온이 것이라고 손바닥에 새기고 계속해서 쳐다보고 계시기에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시지만 또한 종의 모습으로 이 낮은 곳에 오셔서 우리를 섬기신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49:14-23」 2018. 12. 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49:14-26 · 2021. 2. 4. · 31분)
76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품은 말씀을 잊지 않는 방법은 시편 1편에 답이 나온다. 시편 1편에서 묵상하는 자라는 말은 계속 반복해서 암송하며 되뇌인다는 뜻이다.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암송하며 되뇌이는 것이다. 그러면 마치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자라는 것처럼 그 말씀을 통해 그 사람이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들은 말씀을 아이를 밴 것처럼 간직하고 그 들은 말씀을 통해 계속 성장하도록 되뇌이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계속해서 되뇌이면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 알게된다. 히브리서 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간직하기만 하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어머니의 젖과 같이 되어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1:27-28」 2023. 3. 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14-28 · 2025. 7. 27. · 37분)
77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은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경험자들이나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것도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제자들이 동시에 목격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에 믿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물고기라는 말은 물 속에 사는 무슨 동물이든 다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뭔지 알 수 없는 수중 생물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요나는 그 뱃속에서 사흘간 있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요나가 물에 빠졌을 때 눈을 뜨고 헤엄치면서 어떤 물고기가 나를 삼키는지 봤을 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나 자신이 경험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전해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이유는 없다. 만약 지어냈다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어야 했다. 우리는 어떤 생물인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요나는 경험했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나 1:17-2:10」 2020. 10. 2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나 1:11-2:10 · 2025. 7. 3. · 32분)
78왜 예수님만이 길이라고 하나요?
예수게서 자신이 바로 그 길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어째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인가? 그 이유는 요한복음 1:1절에 나온대로 예수님이 바로 태초부터 계셨던 그 말씀이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시다. 그래서 길이라고 하신 뒤에 바로 이어서 자신이 진리라고 하신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성품이 예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난 것이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말은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께 나가는 길인데 그 길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진리의 말씀으로 나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14:4-6」 2024. 5. 3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14:1-14 · 2017. 12. 3. · 30분)
79믿음은 느낌인가요, 결단인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말씀을 듣고 감동 받았다며 예수님을 완전히 믿는다 해도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믿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감정적인 믿음은 믿음의 시작이고 제자가 되는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그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곧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에스겔 29:14-16절에서 이집트를 멸망시키신 뒤 초라한 모습으로 회복시키신 것도 한번 깨닫고 감동 받아 하나님만 따라 살겠다는 결심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를 명맥만 남겨두어 한번 깨닫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결심을 두고 두고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체험이나 은사를 가진 것이 진짜 제자의 표시가 아니라 늘 예수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제자라는 표시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8:31-32」 2024. 3. 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8:31-59 · 2017. 9. 11. · 39분)
80질문을 품은 채로도 믿을 수 있나요?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나 실망하고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17:17절에 보면 땅에 업드려 웃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자 그대로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모두가 할례를 받게 했다. 자신과 아내의 생식능력이 완전히 죽었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또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며 믿고 행동에 옮겼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심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셨고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은 것이다. 말씀을 통해 약속이 점점 구체화되어 갈때 아브라함의 믿음도 점점 강해진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 생각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4:18-19」 2025. 9.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4:13-25 · 2024. 1. 6. · 49분)
09연애 · 결혼 · 가정
81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주목할 말씀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둘 다 제사장 가문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귀한 가문의 사람들이 만나서 살았는데 두 사람 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의인이 되고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되길 기도하자. 특별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 있다면 귀한 믿음의 가문에서 훈련 받은 사람을 만나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 보시기에 흠 잡을 데 없는 의인으로 살도록 기도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5-14」 2022. 10. 2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25 · 2024. 9. 15. · 37분)
82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그러나 오직 주 안에서만 하라고 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이 단순히 그리스도인과 결혼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밟을 때 그녀가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여인이 재혼할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책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원칙적으로 불신자와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신자와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주 안에서만 하라는 말을 믿는 자와 결혼해야 주께 헌신하는데 분산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믿는 자와 재혼해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율법처럼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뜻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7:39-40」 2026. 4. 2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7:1-40 · 2020. 1. 27. · 41분)
83결혼은 꼭 해야 하나요?
여기서 초점은 결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일에 바울처럼 전념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만약 바울이 오늘날과 같이 어느정도 안전이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는다면 바울도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독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당시 풍조를 강하게 부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이라면 결혼해서 함께 사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이기에 그 위험을 알고 결혼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그러나 각 사람은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다고 말한 것이다. 바울처럼 모든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복음 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지만 한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이 은사인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각자 자신이 맡은 은사에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혼 자체를 금하면서 결혼하여 성생활 하는 것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이기에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단지 자신이 맡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7:6-7」 2026. 4. 1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7:1-40 · 2020. 1. 27. · 41분)
84좋은 배우자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아내가 신앙적으로 성숙하다면 아내를 목자로 섬기게 하고 옆에서 돕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남편이 신앙적으로 성장하면 남편을 목자로 세워주고 자신은 옆에서 돕는 것이 더 좋다. 남자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도와서 한 몸이 되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고 위하면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부부가 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11:10-12」 2026. 6. 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1:2-16 · 2020. 1. 27. · 34분)
85부부가 서로 다를 때는 어떻게 맞춰 가나요?
제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말 만해도 대부분의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다. 저도 결혼했을 때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밤에 화장실에 갈 때면 제 아들이나 아내는 무섭다며 꼭 저를 데리고 가려 했다. 특히 추운 겨울 한밤중에 한 참 자고 있는데 화장실 가고 싶다고 깨우면 정말 짜증났다. 그 때는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 귀신이 있다고 해도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하는 그런 귀신은 없어. 또 이 동네는 좋은 사람들만 살고 안전하니 괜찮아 그냥 혼자 갔다와.”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 말이 맞다 해도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서 화장실 앞에서 덜덜 떨며 보초를 서야 했다. 화장실 안에서는 밖에 내가 있는지 때대로 불러서 확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 여기 있다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아무리 맞다 해도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내이기 때문에 함께 가서 안심을 시켜주어야 했다. 무서워하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괜찮다니까 왜 바보같이 굴어?” 하고 소리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추운 겨울 밤에도 함께 가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8:7-8」 2026. 5. 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8:1-9:18 · 2020. 1. 27. · 44분)
86가정에서 신앙을 어떻게 지켜 갈 수 있나요?
만약 우리 몸이 거룩한 제물이라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만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 영광만을 위해서 드린다고 해서 항상 예배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장이나 가정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 온통 정신을 쏟다가 주일에만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제물이 될 수 없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2:1」 2025. 12. 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2:1-2 · 2024. 1. 6. · 41분)
87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세상 권력과 부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도 역시 벨사살이 되어 세상의 권력과 부를 숭배하며 따르고 하나님은 멸시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오늘날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도록 할까? 우리가 만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주면 될까? 오늘 말씀은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느부갓네살이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손자인 벨사살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경험이지 우리 자녀들의 경험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직접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가르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전해주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기적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도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다니엘 5:1-6」 2020. 5. 1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다니엘 5:1-16 · 2021. 9. 23. · 26분)
88혼자 사는 삶도 복된 삶일까요?
그러나 이를 23절과 연결해서 해석하기 보다는 7:1-23절 전체와 연관하여 결론 짓는 것으로 해석하며 결혼이나 독신이나 이혼이나 재혼이나 할례나 무할례나 종이나 자유민이나 어떤 상태에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부르심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살아가라는 말은 17절과 20절에서도 나오지만 24절은 특별히 하나님 곁에 머물러 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분명 어떤 상황에도 항상 그 상태에 머물면서 하나님 곁에서 머물러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니 항상 하나님과 함께 머물러 있으라는뜻으로 보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전서 7:24-26」 2026. 4.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7:1-40 · 2020. 1. 27. · 41분)
89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경제적인 지원을 하라는 뜻이고 단순히 존경하는 태도만 보이라는 뜻은 아니다. 모세오경에서는 분명히 부모에게 합당한 존경을 표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봉양하라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5-6절은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지를 밝히고 계시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것을 보아도 부모 공경은 마음만이 아니라 물질로 봉양하는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하셨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15:1-9」 2021. 11. 1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15:1-20 · 2022. 10. 18. · 36분)
90가정의 아픈 모습이 나에게도 대물림될까 두렵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절의 선언은 회복과 더불어 주어지는 축복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그 부모의 죄악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계속 복수하시거나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모의 죄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면 이전 것은 다 지나간 것이고 이제 새것이 된 것이다. 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회복시키시고 지나간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예레미야 31:27-30」 2019. 5. 3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예레미야 31:15-30 · 2022. 10. 20. · 32분)
10외로움과 마음의 지침
91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실 때 기도 대신 탄식을 하셨다. 이 탄식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탄식이다. 히브리서 4:15절에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요” 라고 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시며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우리도 기도할 때 꼭 말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탄식만 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에 대해 예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공감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7:34-37」 2022. 6. 1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7:31-37 · 2015. 5. 24. · 36분)
92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모이는 것도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믿음을 통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해 가기 위함이다. 서로가 간증을 하는 것이나 말씀으로 은혜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은 모두가 함께 공감하며 ‘나도 그렇다” 라고 하여 격려와 위로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열두 제자들은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알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불완전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 받음으로 완전해졌다. 우리 역시 불완전한 믿음이지만 서로가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6:67-69」 2024. 1. 2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6:60-71 · 2017. 8. 14. · 30분)
93마음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30-31절은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힘을 얻으리니" 라고 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때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새힘을 주신다고 했다. 31절에서 중요한 말은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이란 말이다. 원어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을 것이고 또 오래 뛰고 오래 걸어도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독수리로 비유한 것은 높이 올라간다는 뜻이고 뛰고 걷는 것은 멀리 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새 힘을 주셔서 날고 뛰고 걷게 하신다. 문제는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새 힘을 주셔서 최선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바로 믿는 자의 올바른 태도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40:27-31」 2018. 10. 29.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40:12-31 · 2020. 9. 24. · 39분)
94우울한 마음은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35절에서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보통 유대인들은 똑바로 서서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선채로 큰소리로 기도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서 기도하지 않으시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이것은 민수기 14:5절에서도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 돌아가자며 모세와 아론을 반대했을 때 모세와 아론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이는 모세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서서 기도하지 못한 것이다. 16:4절에서는 고라가 반기를 들었을 때 땅에 엎드렸다. 그 외에도 모세가 엎드린 모습이 민수기에 세군데 더 나온다.
따라서 예수님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서서 기도하지 못하고 땅에 쓰러져 엎드려서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크게 슬퍼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서 기도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져서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세명의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만약 제자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면 털썩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괴로운 심정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35-36」 2022. 9. 2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2-42 · 2016. 2. 8. · 41분)
95쉬는 것도 신앙인가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지친 사람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환자를 만나서 지친 의사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 지친 상담가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목회하다가 지친 목회자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해서 지친 사람은 음식을 먹고 쉬는 것이 쉬는 것이지만 말씀 사역으로 인해 지친 사람은 말씀을 먹고 쉬는 것이 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외딴 곳으로 가서 쉬라 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라는 뜻이 아니다. 함께 동역한 예수님과 제자들들이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쉬게 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직장을 떠나 주일에 교회에 와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교제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휴식이란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양식을 공급하며 쉼을 통해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회복시키려고 함께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휴식방법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6:30-32」 2022. 5. 3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6:30-44 · 2015. 4. 13. · 40분)
96하나님께 털어놓아도 될까요?
히스기야는 자신이 완벽한 믿음이라고 자랑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온전히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을 다했다는 뜻이다. 이는 아버지 앞에서 흐느껴 울면서 아버지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는 아이와도 같은 모습이다. 어떤 아버지가 이런 울음에 함께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4-6절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다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흘리는 눈물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15년 더 연장시키고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라고 하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38:1-6」 2018. 10.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38:1-22 · 2020. 9. 3. · 32분)
97낯선 곳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오늘 말씀에서 핵심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끝에 있는 우리까지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지불하시고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모든 일이 형통하고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어떠한 위험 가운데 지나가더라도 지켜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고난 중에 있다고 하나님이 귀머거리고 소경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켜 주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지켜 주신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43:1-7」 2018. 11. 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43:1-13 · 2020. 10. 22. · 38분)
98마음의 평안은 어디서 오나요?
이렇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27절에서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준다고 하셨다. 그 평화는 예수님 자신이 갖고 계시던 평화인데 이제 제자들에게 준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갖고 계신 평화를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신다는 뜻이다. 그 유산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성령님께서 해석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또 생각나게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고 믿음의 공동체의 사람들과도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유산으로 남긴다 하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거짓 선지자들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제사장들이 외치는 평화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는 가짜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하지도 않고 신앙 공동체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게 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외치는 거짓 평화일 뿐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거짓 평화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진정한 평화를 주는 것이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한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14:27-29」 2024. 6. 1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14:15-31 · 2017. 12. 10. · 33분)
99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하는 길은 단지 가까이 있기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깨어 있어 계속 주변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물론 실제 주변을 살펴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영적으로 깨어서 상황을 잘 살피고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느끼라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께서 기도에 집중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세명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털어 놓으신 예수님은 세명의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털어 놓으려는 것이다.
우리도 모든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우리의 속마음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할 수는 없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구분이 필요하다. 어떤 형제자매들에게는 기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기만 하여자발적으로 기도해 주길 바랄 수 있다. 어떤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는 우리의 괴로운 마음을 알리며 함께 기도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내가 먼저 깨어 기도하면서 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괴로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도록 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4:32-34」 2022. 9. 2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32-42 · 2016. 2. 8. · 41분)
100밤이 길게 느껴질 때 붙잡을 말씀이 있을까요?
원어에서 11절은 "그러나 그날 밤에 " 라는 말로 시작한다. 낮에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찢길 위기에 있었다. 천부장이 구해주었지만 자신의 동족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려던 바울은 크게 낙심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가라앉고 있었을 것이고 병영 안에서 홀로 있으면서 아마도 모두가 예견한 예루살렘에서의 위험이 이제 거기서 죽는 것으로 성취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암살하려고 노리고 있는데다가 해가지고 캄캄해지자 바울의 외로움과 두려움과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바울에게 주님은 그날 밤에 바울 앞에 서셔서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주님께서 서신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 있다는 말은 신약성경에 20번 나오는데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한 번, 디모데후서에서 두 번 나오고 나머지 열 일곱 번은 모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만 나온다. 모두 예외 없이 누군가 도착하여 그 집 문 앞에나 그 사람 앞에 서 있다고 할 때 쓰인 말이다. 여기서도 원문은 주님께서 밤에 바울을 찾아오셔서 바울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사도행전 23:11」 2025. 5.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사도행전 23:11-35 · 2020. 4. 19. · 38분)
11죄책감과 은혜
101내가 지은 죄도 정말 용서받을 수 있나요?
죄를 용서한다는 말에서 용서란 무슨 뜻일까? 시편 103:12에서 다윗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라고 했다. 또 예레미야 31:34에 보면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죄를 기억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이상 죄와 연관시키지 않겠다는뜻이다.
알라스카 선교사들이 성경을 에스키모 말로 번역을 하던중에 에스키모들에게는 용서란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사들은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에스키모들이 사용하는 한 단어를 발견했다. 그 뜻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는 단어였다. 선교사들은 그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 죄를 용서한다는 뜻과 정확하게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그 단어를 에스키모 성경 전체에서 용서라는 단어를 번역하는데 사용했다.
사람들은 한번 죄인으로 낙인찍으면 계속 죄인으로 기억한다. 한번 감옥에 갔다오면 별하나 달았다고들 말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도 취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멀리한다. 사람들은 바람난 배우자를 용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두고두고 되새기고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죄사함 즉 죄 용서이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죄사함이나 죄 용서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9:1-4」 2021. 8. 1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9:1-8 · 2022. 1. 16. · 30분)
102용서받았는데도 죄책감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신 다섯째 이유는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라는 말에 있다. 이는 모든 슬픔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해 주셨다는 뜻이다. 이들의 슬픔의 원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있다.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에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위로를 주셔서 그 슬픔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신 것이다. 메시야가 오신 이 후에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8: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한 것이다. 다시는 죄로 인해 슬퍼하지 않도록 그 슬픔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해 주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61:1-3」 2019. 1. 1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61:1-11 · 2021. 5. 30. · 37분)
103은혜란 무엇인가요?
보통 로마서에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이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도 인간의 행동이고 믿음도 인간의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 대비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인 율법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동인 은혜가 대비되는 것이다.
6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남은 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면 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남은 자는 행위에 근거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그렇지 않으면” 이란 말은 바울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처럼 율법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라면 이라는 뜻이다. 만약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란 값없이 거저 받은 선물이란 뜻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것이라면 선물이 아니라 품삯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품삯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선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로마서 11:4-6」 2025. 11. 2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로마서 11:1-10 · 2024. 1. 6. · 36분)
104착하게 살면 구원받는 것 아닌가요?
선한 사람이란 유대교 율법을 잘 지키던 자들이고 악한자들은 율법을 어겨 쫓겨난 자들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오직 표면적으로 율법을 잘 지키던 사람들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버린 세리와 창녀들도 불쌍히 여기셨다. 선한 자건 악한 자건 다 왕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구원은 자신의 노력이나 자신이 갖춘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고 따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태복음 22:1-14」 2022. 1. 1.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태복음 22:1-14 · 2023. 6. 19. · 30분)
105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요?
그렇다고 세리도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한 것은 오직 자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번민하며 슬퍼한 것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아니면 자신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며 간절히 애원한 것 뿐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이 세리는 자신의 죄를 분명히 깨닫고 아파했기에 용서 받았을 때 놀라운 감격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을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해 주셨다면 감격하기 보다는 기가 막히다는 듯 하나님께 따졌을 것이다.
의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그리스도께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제사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새리같은 사람이 바로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찾으시는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처럼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이란 가치 없는 것이란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8:13-14」 2023. 6. 6.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8:9-17 · 2026. 1. 11. · 36분)
106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아버지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재산을 받아 온 이 아들은 굶어죽게 되어서야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도 모든 일이 잘될 때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살게 된다. 작은 아들처럼 어려움을 당해서야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는 것 만으로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겠다는 생각을 한 것 뿐이다. 회개란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5:11-19」 2023. 5. 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5:11-32 · 2025. 11. 9. · 42분)
107율법과 은혜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러한 새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고 영으로 된 것이라 했다. 왜냐하면 문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문자는 구약의 율법을 말하고 영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법을 말한다. 구약의 율법은 지키지 못하면 결국 죄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성령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바울이 구약의 옛 계명을 문자에 비유하고 예수님의 새 계명을 영에 비유한 것은 문자로 돌에 기록된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모셔지지 않은 말씀을 말하고 영으로된 언약은 마음에 새겨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3:4-6」 2026. 9. 30.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3:7-18 · 2013. 12. 16. · 30분)
108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잘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바락바락 대드는 못된 아들이나 딸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오래 참으시기에 우리가 진멸되지 않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사랑에 감사 감격하는 마음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 안정섭 · 새벽말씀 「말라기 1:1-5」 2021. 3.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말라기 1:1-14 · 2026. 5. 7. · 31분)
109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우리도 과거 이 소경 거지와도 같은 불쌍한 존재였다. 예수님을 만나 영적인 눈을 뜨고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이 소경처럼 계속해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8:40-43」 2023. 6. 15.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8:31-19:10 · 2026. 1. 26. · 40분)
110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역시 벌거 벗겨진채 노예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노예와도 같은 모습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대신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전시됨으로 우리는 풀려났고 거룩한 옷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내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 벌거 벗겨진 채 노예시장에 묶여있던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구해주셨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이사야 47:1-4」 2018. 11. 2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이사야 47:1-15 · 2021. 1. 7. · 32분)
12교회와 함께 사는 삶
111교회에 꼭 가야 하나요?
이 부분의 초점은 성전 바깥 마당에 둘러있는 30개의 방들과 돌로 포장한 바닥이다. 각 방들에서 예배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말씀을 배우며 방 앞의 돌로 포장된 길에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모여 함께 교제하고 말씀을 배우며 함께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것과도 같다. 교회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교제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다. 위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옆으로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라 서로를 섬기며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에스겔 40:17-27」 2020. 3. 1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에스겔 40:1-37 · 2024. 6. 20. · 25분)
112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세상 권력으로 힘없는 자들을 밀어내지는 않는다. 오늘날은 말씀을 좀 알고 오래 믿었다는 양들이 믿음이 연약해서 아직 말씀대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양들을 정죄해서 밀어낸다. 또 힘센 양들은 함부로 말로 공격하고 상처주는 말들을 해서 연약한 양들을 밀어낸다. 주님께서 그런 양들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공격 받아 쫓겨난 양들을 찾아 데려오고 말씀으로 치료해 주고 말씀으로 잘 먹여 돌보는 양들이 되어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에스겔 34:17-22」 2020. 2. 1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에스겔 34:1-31 · 2024. 4. 18. · 32분)
113혼자 믿으면 안 되나요?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것은 하나님 원하시는 용서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나 혼자만의 거룩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열매이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분명히 열매를 내 놓으라 하실 것이다. 그 때 우리가 내 놓을 것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인내하고 용서하며 이루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공동체를 내 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에서 찾으신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2:1-12」 2022. 8. 1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2 · 2015. 11. 23. · 43분)
114교회는 왜 서로 사랑하라고 하나요?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적하여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인들이었다. 피해자였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용서를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원수들을 용서해야 한다. 교회는 그렇게 서로의 원수를 용서하고 용서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교회 안에는 용서해주는 피해자와 용서 받은 가해자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천사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돌아서는 것은 절반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용서한 다음에 위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고린도후서 2:10-11」 2026. 9. 24.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2:5-11 · 2013. 12. 2. · 42분)
115섬김은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은 눈에 보이는 이웃들을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섬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의 한 예가 오늘 말씀이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단번에 다 내려놓기는 힘들기에 작은 부분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 그것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있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 서지 않으면 그 사랑은 위선이고 자기 과시일 뿐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0:17-22」 2022. 7. 22.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13-31 · 2015. 9. 14. · 47분)
116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내가 기뻐하고 원하는 말씀을 발견하면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성경을 읽다가 한 말씀이 마음에 확 들어오면 그 말씀만 붙잡고 기뻐하며 나머지 말씀들은 듣지 않고 지나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 후 문맥을 살펴가며 꼼꼼히 읽으며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발견했다면 그 말씀이 불편해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마가복음 10:35-40」 2022. 7. 2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35-45 · 2015. 9. 28. · 35분)
117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모두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경배하는 때가 오길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어서 우리의 탐욕을 구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한 재물을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을만큼만 있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어서 우리의 기도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시험을 당해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누가복음 11:1-4」 2023. 2. 2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14-28 · 2025. 7. 27. · 37분)
118예배는 왜 드리나요?
진짜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욕심을 채워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것이 진짜 복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 최고의 복이다. 이러한 복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게 된다는 약속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엘 2:12-14」 2020. 8. 8.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엘 2 · 2025. 1. 16. · 30분)
119믿지 않는 친구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나요?
이 말씀을 듣고 그 사랑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사람은 이제 달리기 선수처럼 출발선상에 엎드려 있다. 이제 신호총이 울리면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가서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며 전도하라는 뜻이 아니다. 가서 예수님의 사랑의 열매가 우리 안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먼저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보여주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열매를 보고 함께 제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 안정섭 · 새벽말씀 「요한복음 15:15-17」 2024. 6. 17.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요한복음 15:1-17 · 2017. 12. 18. · 38분)
120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날 우리도 같은 압력을 받고 산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귀한 것을 내밀며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라고 강요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잊게 하고 세상에 빠져 살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의 가장 귀한 것들을 갖고 누리며 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러한 상황에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킬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우주로 날아갈 수 없다. 세상이 더러우니 아무도 없는 산속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고 살 수도 없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섬기는 것을 양보하면 안된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안정섭 · 새벽말씀 「다니엘 1:1-7」 2020. 4. 23.
목소리로 듣기 · 같은 본문 강해 설교 (다니엘 1 · 2021. 7. 22. · 30분)
새벽말씀에서 옮긴 대답은 글자 하나 고치지 않았습니다. 설교에서 옮긴 대답은 유튜브 자동 자막을 바탕으로 띄어쓰기와 받아쓰기 오류만 고쳤고, 말씀의 내용과 순서는 바꾸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