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4-16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며 그들이 기뻐할 때나 슬플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하나님 말씀을 아는 척하지 말라.
이전 말씀은 믿음의 형제들 간에 부활의 소망을 품고 그 소망 때문에 당하는 환난을 참으며 항상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쓸 것을 공급하여 따뜻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되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믿는 자들이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14-21절은 주로 믿는 자들이 자신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16절까지만 끊어서 보고자 한다. 클라우디우스의 추방령이 해제되자 로마교회에 유대인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로마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핍박하던 유대인들도 함께 돌아왔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동안에는 이방인들만 있었기 때문에 믿는 이방인들은 핍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곧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의미했다. 물론 이방인들에게 직접적인 핍박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너희들이 따르는 그 가르침은 잘못되었으니 다시 자신들 편으로 되돌아오라며 온갖 회유와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였고 수많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이제 돌아온 유대인 핍박자들은 돌아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직접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4절의 박해하는 사람들이란 말의 문자적인 뜻은 추격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결국 13절 끝부분에 있는 떠돌이 손님 사랑을 추격하라는 말과 14절의 박해하는 사람들이란 말은 같은 말인 것이다. 손님들 중에는 복음 전하는 나그네들도 있었지만 잘못된 가르침으로 유대교로 되돌리려는 손님들도 있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교회 밖에서 들어온 모든 손님들 사랑하는 것을 추격하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14절에 나오는 교회 밖에 있던 추격하는 사람들은 해치려고 추격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을 해치려고 추격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5:44절과 누가복음 6:27-28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이 듣고 기억하고 있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러한 명령은 사실상 불가능한 명령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10:27절에서도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는가? 15절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는 것이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박해하는 원수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라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권고이다. 이는 믿는 자들은 추방당했다가 돌아온 유대인 박해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기뻐하라는 말이 함께 울라는 말보다 먼저 나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과 함께 우는 것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쁜 일이 생겨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4세기 교부인 크리소스톰도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딸이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이루면 기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진급시험에서 떨어졌는데 나를 핍박하는 원수는 합격했다면 함께 기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수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어야 한다. 이것은 바울이 생각해낸 명령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박해하는 원수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해준다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자신을 박해하는 원수에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울어준다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만큼 호감이 가고 고마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사랑한다면 자신을 박해하던 원수의 마음에 있던 적대감도 사라질 것이다. 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나? 바울의 마음에는 유대인 기독교인이나 나머지 박해하는 유대인들이나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전해야 할 대상들이었기 때문이다.
박해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16절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 서로 한마음이 되라 또는 같은 마음이 되라는 것은 핍박하는 원수들보다 훨씬 더 지식이 많아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는 겸손하라는 것이고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교만한 마음(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바울 당시 살았던 Philo는 높다는 말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수준이 최고수준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또한 히브리서 1:3절에서는 하늘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위치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높은 마음이나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서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다 보면 유대인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낮은 사람들과 사귀라는 말에서 사귀라는 말은 고린도전서 12:2절과 16절에서는 끌려다녔다는 뜻으로 쓰였다. 높은 마음과 연결해서 읽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낮은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절대로 그런 이들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추방되었다가 돌아온 유대인들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낮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유식한 척하고 가르치려고 하면 싸울 수밖에 없다.
이는 비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끌려가고 절대로 하나님에 대해 지혜 있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는 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 중에 비천한 사람들 앞에서 지혜 있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비천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상처를 받는다. 본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지혜 있는 체한다면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겸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갖고 있다는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