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20:1-9

Dawn Word

마태복음 20:1-9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12. 14.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20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20:1-9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지기 한시간 전까지 네 차례나 나가서 사람들을 포도원 일꾼으로 고용했다. 저녁 때가 되어 품삯을 줄 때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은 장차 주님께서 다스리실 나라에서 백 배로 보상을 받겠지만 그 나라에서 보상으로 받는 지위는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서로 뒤바뀐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지위가 뒤바뀌는 예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시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이기심을 가진 인간들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세상적인 공평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20:1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늘 나라는 마치 어느 한 집 주인과도 같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그 집 주인은 자기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일꾼을 고용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은 나셨다는 것이다. 포도를 수확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꾼을 찾으러 나간 것이다. 포도는 너무 익으면 모두 떨어져 못쓰게 되기 때문이었다.

보통 포도원을 가진 주인은 항상 상주하는 일꾼들이 있다. 이들은 숙련된 농부들이다. 보통때는 이 사람들이 포도원의 모든 일을 다한다. 하지만 포도 수확기가 되면 정말 바빠진다. 이스라엘의 포도 수확기는 대체로 9월중순쯤된다고 한다. 지중해 연안은 가을과 겨울이 장마철이기에 장마철이 오기 전에 모두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임시 일용직을 뽑는 것이다. 날품팔이 하던 사람들은 포도원 주인집에서 항상 일하는 농부들보다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이고 당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를 수확할 일꾼들을 뽑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 언제일까?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보면 9월 15일경에는 대략 5:27분에 해가 떠서 5:46분에 해가 진다. 당시에 보통 해뜨는 시간인 6시에 일을 시작하여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6시부터 일을 시작하게 하려면 그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을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시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모았을 것이다. 2절에 보면 그는 12시간 노동에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일꾼들은 풍족한 임금에 기뻐하며 합의했을 것이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제국 군인들의 하루 일당이기에 아주 후하게 쳐 주는 품삯이다.

3절에 보면 포도원 주인은 9시쯤에 또 나갔다. 원문에서는 당시 유대인들의 시각으로 제 삼시라고 되어 있다. 이 사람들은 장터에서 서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냥 놀러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장터에 서 있었던 것이다. 뉴올리언즈 신학교 근처의 Elysian Field에 가면 Lowes라는 건축자재 파는 곳이 있다. 그곳 주차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서 있다. 그러다가 트럭에 많은 목재를 싣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달려가 일꾼으로 써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중남미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이다. 다른 일 자리는 찾기가 어려운 미국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러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상류층은 넓은 땅을 가진 대지주들이었다. 대부분 이들은 로마 귀족들이었다. 그 아래엔 적은 땅이지만 자기 땅을 가진 자영농이 있었다. 자영농 밑에는 자기 땅은 없지만 대지주에게서 땅을 빌려 농사짓던 소작농들이 있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시장에 나와서 서성이고 있던 사람들은 소작농보다 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 사회계층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하지만 거지들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다.

4절에서 포도원 주인은 9시부터 잉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한 데나리온 준다고 하지 않고 “적당한 품삯”을 준다고 했다. 원어에서는 공정한 품삯을 준다는 뜻이다. 이는 일할 시간이 이미 3시간이 지났으니 그 비율에 맞춰 계산해서 준다는 뜻이다. 그들은 3/4데나리온정도를 준다는 뜻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일을 하러 떠났다는 것은 주인의 제안에 합의했다는 뜻이다.

두차례나 일꾼들을 데려왔지만 아직도 일손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5절에서 주인은 오늘날 12시에 해당하는 제 6시와 오후 3시에 해당하는 제 9시에 다시 시장에 나갔다. 그들과도 9시경에 맺은 계약과 동일하게 했다는 것이다. 12시에 온 사람은 1/2 데나리온일 것이고 오후3시에 온 사람들은 1/4데나리온 이었을 것이다.

6절에서 주인인 오늘날 오후 5시에 해당하는 제 11시에 또 나갔다. 오후 5시쯤이니 해가 지기 한시간 전이다. 이제 일할 시간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나가 보니 아직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은 그들에게 말하길 "당신들은 어째서 온 종일 여기서 게으름을 피우며 서 있소?" 라고 말했다. 7절에서 그들은 집 주인에게 대답하길 아무도 자신들을 일꾼으로 써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들에게도 자신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 이번엔 아무런 계약 조건이 없었다. 그냥 가서 일하라고 했고 그들은 말없이 가서 일했다.

어째서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았을까? 혹시 하루종일 낮잠자고 놀다가 저녁무렵에 나왔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예수님 당시 사회는 오늘날 미국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Food Stamp를 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만약 빈둥거리며 논다면 식구들이 다 굶어 죽게 된다.

이들은 가난한 달동네 같은 변두리의 먼곳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장터에 늦게 도착하여 좋은 일자리는 장터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 뺏겼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들이 아침 일찍 나왔지만 아무도 고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부분 고용주들은 누가 일을 잘하는지 다 알기에 일 잘하는 건강한 사람들을 먼저 고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저녁 때까지 남은 사람들은 몸이 약하여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아무도 일을 시켜주지 않는 자신들에게 일 시켜준 것만해도 너무 감사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러 갔을 것이다.

8절은 저녁이 되니 주인이 포도원 관리인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처음 온 사람들까지 품삯을 주라고 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오후 5시에 와서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다. 모두가 깜짝 놀랐을 것이다. 5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 기뻐 몇 번씩이나 감사의 인사를 하며 물러났을 것이다. 맨처음 온 사람들은 10배는 더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왜 마지막에 온 사람들 먼저 주었을까? 아마도 저들은 집에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먼 곳에 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몸이 불편해서 걸음을 잘 못 걷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들은 그날 일한 노동자들 중 가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제도 일을 못하고 하루 종일 놀았을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양식을 마련하던 이들과 그 가족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것이다. 주인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먼저 품삯을 준 것이다. 빨리 먹을 것 사가지고 굶주린 가족들에게 먹이라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저들에게 일한 대가를 준 것이 아니다. 포도원 주인은 저들을 데리고 자기 포도원에 가면서 좀 더 자세히 물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일했냐? 물으니 그들이 며칠째 일을 못했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포도원 주인은 굶주리고 있는 저들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곡식을 사다가 가족들에게 먹이라는 뜻이지 저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 방식의 공평하심이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우리가 한 일에 따라 보상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불쌍히 여겨 더 주고 싶어 더 주고 먼저 주고 싶어 먼저 주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품삯을 주실 때도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 날 주님은 우리도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에게 품삯을 주실 것이다. 이것이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말씀의 뜻이다.

마태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