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27-30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은 장차 주님께서 다스리실 나라에서 백 배로 보상을 받겠지만 그 나라에서 보상으로 받는 지위는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서로 뒤바뀐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의 주권을 하나님께 다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모든 것을 하나님 주권에 맡기고 따른 제자들은 장차 열 두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이지만 첫째와 꼴찌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 하신다.
27절은 원어에서 "바로 그 때"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신 바로 그 때이다. 바로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하며 예수께 말하기를 "보십시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무엇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부자청년과 비교해서 한 말이다. 특별히 "보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원어에서는 강조할 때만 쓰는 "우리가" 라는 말을 쓰며 자신들을 봐 달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청년이 제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재물을 따라간 것과는 달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차 주님 나라에서 자신들을 위해 무엇이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28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공식을 써서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신다. 그 영원한 진리는 원어에서 "나를 따른 너희들은 새 세상에서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라고 먼저 말씀하셨다. 새 세상이란 원어에서 "다시 태어나는 때" 라는 뜻이다. 똑 같은 말이 디도서 3:5절에서는 "거듭남(중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 말은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말이다. 디도서에서 바울은 영적인 거듭남을 뜻하는 말로 썼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장차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는 종말론적인 거듭남을 뜻하는 말로 쓰신 것이다. 둘 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거듭남인지 분명히 밝히기 위해 바로 이어서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라고 다시 태어나는 때를 설명하신 것이다. 제자들을 비롯한 믿는 자들이 다시 태어나는 바로 그 때는 다니엘 7:9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 "다시 태어나는 때"라는 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4:13-17절에서 말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고 믿는 자들은 영광의 몸을 입고 부활하는 그 때이다.
바로 그 때 제자들도 "열 두 보좌에 앉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면서" 라고 하신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6;2절에서 믿는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고 했다. 열 두 지파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아니라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제자들이 모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뜻이다. 오늘날은 다스리는 것과 재판하는 것이 분리가 되어 있지만 고대에는 다스리는 사람이 곧 재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9절은 "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비나 어미나 자식이나 밭들을 버린 모든 사람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열 두 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과 믿는 자들이 장차 무엇을 받을지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이어서 나온다. 그 조건은 "내 이름을 위하여"라는 조건이다. 만약 믿는 자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린다 해도 그로 인해 그 자신이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6:2절에서는 구제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라고 하셨다. 6:5절에서는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보이려고 기도한다면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라고 하셨다. 6:16절에서는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면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자신들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헌신하고 봉사했다 해도 자신들이 그 영광을 받고 이 세상에서 박수를 받는다면 장차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우리가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긴 사람만이 다음에 이어지는 상을 받을 자에 해당한다고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상속 받는다는 것이다.
개역에서는 "여러 배"를 받는다고 했는데 새번역은 "백 배"를 받는다고 번역했다. 새번역 난하주에 보면 "다른 고대 사본에는 여러 배"라고 기록해 놓았다. 바티칸 사본에는 "여러 배"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역은 그래서 "여러 배"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대문자 사본들은 모두 "백 배"로 기록하고 있다. 백 배 보다는 여러 배라는 말이 훨씬 더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러나 백 배는 많이 받는다는 뜻의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과장법이다. 이렇게 서로 다를 때는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보다는 비논리적이고 말이 잘 안되는 것이 원본이다. United Bible Society는 백 배가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따라서 "여러 배"가 아니라 "백 배"가 원문이다.
30절은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실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지위가 뒤바뀌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는 열 두 제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열 두 제자들은 자신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다스린다고 했기에 우쭐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지위가 뒤바뀌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겸손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상징인 것처럼 열 두 보좌도 상징이다. 반드시 열 두 제자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열 두 제자는 상징일 뿐이고 새 시대의 지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를 따라가며 수고를 많이 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20:1-16절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 준다.
아침 일찍 부름을 받아 포도원에서 일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를 위해 더 많이 수고 했으니 더 많은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녁 때에 부름을 받은 일꾼과도 같은 사람들도 불쌍히 여겨 같은 품삯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영광 위해 정말 많은 수고를 했다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위대한 신앙인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꼴찌의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세상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다 간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고 사람들 앞에서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주님께서 다 아시니 항상 주님 앞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서야 한다.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인정을 받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꼴찌의 자리에 있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