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23-26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의 주권을 하나님께 다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부자는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기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23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소유를 포기 못한 채 근심하며 떠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신 뒤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공식을 써서 불변의 진리임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4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우신다. 이번에는 낙타의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어서 원어는 "더 쉽다"는 말로 이어간다. 뭐가 더 쉬운가 하면 "낙타가 바늘 귀로 지나가는 것이" 라는 것이다. 이와 비교되는 것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다.
개역은 둘 다 "들어간다"로 번역했지만 원어에서는 새번역처럼 낙타는 "지나간다"는 말이고 부자는 "들어간다" 말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낙타는 "go through"이고 부자는 "enter"로 번역했다. 사실 비교하려면 똑같은 말로 해야 하는데도 낙타는 통과한다는 말을 썼고 부자는 들어간다는 말을 썼다. 이렇게 다른 말을 쓴 것은 부자는 통과는 고사하고 들어가려는 시도 조차도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코이네 헬라어에서 낙타라는 말은 "kamelon"이고 밧줄은 "kamilon"이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의 발음에 따르면 둘 다 발음이 똑같다. 그래서 일부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에는 밧줄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소문자 사본 번호: 579, 1424). 그러면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그림으로 바뀐다. 그러면 훨씬 더 사실적인 비유가 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만화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과장법을 사용하여 그림언어로 말씀하신 것이지 실제로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오래된 중요한 사본들을 비롯해서 거의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들도 모두 낙타로 기록하고 있다.
25절에서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기절초풍할 만큼 놀라서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며 외치던 요한 같은 예외는 인정했지만 유대인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축복은 이 땅에서 물질적 부유함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또 이것은 제자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유함을 선사하신다 말했기 때문이다.
26절은 "저희를 보시며"라는 말로 시작한다. 보신다는 말은 시선을 고정시켜 집중해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은 "눈여겨 보시고"라고 번역한 것이다. 새번역이 개역보다 원어의 의미를 잘 살려 번역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잠시동안 제자들을 뚫어지라 바라보시며 잠시 침묵하시다가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 말씀은 "사람으로는 이것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대조가 되는 것은 이것과 모든 것이다. 이것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뿐만 아니라 어떤 불가능한 일도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이러한 원어의 대조를 그대로 살려 "이 일"과 "무슨 일"로 잘 번역했다. 개역은 원어의 "이 일"이라는 말을 삭제해버려서 대조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어떤 불가능도 없다는 것이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하신 이유는 부자는 자신이 가진 재물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부자 청년도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서 돌아간 것이다. 그 청년은 재물을 선택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는 포기한 것이다.
재물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2:15-16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하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놓으라 하실 때 내려놓지 못해서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작은 것을 내려 놓으라 하실 때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큰 것을 내려 놓으라 하실 때 부자청년처럼 하늘 나라보다 자신의 소유를 선택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소유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하도록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중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자리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내가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한다면 할 수 있다. 그래서 성령님께 주인 자리를 내어 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