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37-41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세번이나 돌아오셔서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는지 확인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세 명의 제자들이 알아들을 만한 거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서 계시지도 못하고 땅에 엎드려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세번이나 돌아와 제자들이 기도하는지 확인하시는데 제자들은 잠만 자는 내용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세번이나 제자들에게 돌아오신 것은 기도하시다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양들인 세 제자들을 살피러 세번이나 돌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힘드신 가운데에서도 제자들을 염려하신 것이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힘든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지 않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에도 제자들을 계속해서 마음에 담고 계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모습이 이어서 나온다.
37절에 보면 첫번째 제자들에게 돌아오시는 모습이 나온다. 깨어 있으라 부탁했는데 와서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세 제자들을 깨워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시몬 베드로를 깨워 “자고 있느냐? 한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앞에서 시몬 베드로가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부인하지 않겠다 큰소리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는 겨우 한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이 책망은 큰소리 친 베드로에게 자신의 의지로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책망에서 멈추지 않고 38절에서 두가지를 당부하셨다. 첫째는 34절에서 당부한대로 깨어 있으라 이고 둘째로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단순히 주변을 살펴보며 예수님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었다. 영적으로 깨어서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라는 뜻이었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베드로는 세번 부인할 것이기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큰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죽도록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 하셨다. 원어는 마음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비교한 것이다. 영혼은 원하지만 육체가 약하다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라가길 원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거짓말로 큰소리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그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약한 육신에 끌려 베드로처럼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잠시 보았고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고 증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가 길어지자 세명의 제자들은 또 잠이 든 것이다.
예수께서 두번째 다시 제자들에게 오셔서 보니 제자들은 또 자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뜰 수 없다는 말은 원어에서 눈이 너무 무거웠다는 말이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아무리 뜨려고 애를 써도 눈꺼풀이 계속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했다. 이번에는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이 와서 깨워도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기에 뭐라고 대답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깨워보면 대부분 묻는 말에 바로 대답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제자들만 피곤했을까? 아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피곤하셨다. 만약 보통 때라면 예수님도 함께 주무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 때문에 잠이 오지 않으셨던 것이다. 반면에 세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음이 괴로워 죽을지경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는데도 마음에 담지 않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날이 새면 끌려가 처형을 당한다면 피곤하다고 잠이 올까? 만약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날이 새면 끌려가 처형을 당한다면 피곤하다고 잠이 올까? 그런 경우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죽으실 것을 말하면서 괴롭다고 하셨는데도 잠만 자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몰라주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다시 가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기도했는지 하지 않으셨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 순간에 제자들은 세상 모르고 잠만 잤기 때문에 보고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4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돌아오셨다. 그 때도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었다. 예수님은 세명의 제자들에게 책망하듯 말씀하셨을 것이다. 새번역 성경에는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 라고 되어 있다. 개역개정도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라고 했다. 새번역과 개역개정도 모두 명령문으로 이해하고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이후에 번역된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이 부분을 모두 다음과 같이 의문문으로 번역했다. 영어 번역들을 한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너희들 아직도 자고 있고 쉬고 있니? 그만하면 충분하다” 이다.
어떻게 이처럼 다를까? 한글 성경들은 KJV이나 NJB를 따른 것이다. 원래 신약성서 사본들에는 구두점이 없기 때문에 의문문인지 명령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서로 다르게 번역한 것이다. 이럴 때에는 전후 문맥을 자세히 보고 연결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영어의 KJV나 새번역이나 개역개정처럼 명령으로 번역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그 정도면 넉넉하다” 라는 말이다. 마태복음의 같은 내용에는 이 말이 없다. 전에 마태복음의 같은 내용을 설교할 때 저도 예수님께서 지켜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자라고 한 것으로 설교했다. 하지만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가복음을 자세히 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이럴 경우 우리는 마가복음에 있는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이 말은 보통 영어로 “It is enough” 라고 번역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 이다. 마태복음 15:8절이나 마가복음 7:6에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 말은 그만하면 충분히 잤다 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제 잠시 자고 쉬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고 쉬라는 말과 넉넉하다 라는 말 사이에 연결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때가 왔다라는 말도 역시 연결하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 멀리 있다 라고 하시자 마자 숨쉴 틈도 없이 때가 왔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부분을 의문문으로 해석하면 해결이 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숨쉴 틈도 없이 “아직도 자고 쉬고 있니?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니? 벌써 시간이 되었어!” 라고 속사포처럼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서 “저기 좀 봐라! 인자는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후 문맥과 연결관계를 살펴보면 마가는 예수께서 아직도 자고 있는 제자들을 질문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책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라는 말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마가복음 2:16절을 보면 예수님 사역 초기 때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며 공격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들과 같은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죄인들이라 부르고 계신 것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과 함께한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 거짓으로 거룩한 척 하던 저들이 진짜 죄인이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4:37-41절에서는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반면에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예수님을 깨우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예수님은 그 때 진짜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무시고 계셨다. 그러나 이제 진짜 위기가 왔다. 그런데 제자들은 진짜 위기 때 자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이 안타까워 기도하시다 말고 세번씩이나 와서 깨우시면서 깨어 있으라 기도하라 당부하신 것이다. 우리도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가짜 위기 때 야단법석을 떨다가 진짜 위기 때는 잠을 자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기 위해 기도하시다가 말고 세차례나 돌아 오셔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이다.
우리도 베드로와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잘 하겠다고 결심해도 되지 않는다. 우리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판단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님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반드시 실패한다. 예수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공감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기도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갖고 따라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번이나 돌아와 기도하는지 확인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