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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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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6:67-69

열두 제자들의 믿음을 격려하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1. 24.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6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6:67-69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까지도 떠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제자들의 대표로서 예수님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고 자신들은 예수님을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알았기에 떠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님 말씀에 대해 불평하며 반발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가도 좋다고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께 나올 수 없다고 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도 떠나가려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고백하며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67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66절과 연결된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으므로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열 두 제자들이라는 말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제자들을 뜻하는 제자들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67-71절에서 세번이 나오고 20:24절에서 한 번 더 나온다. 요한은 열 두 제자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제자들이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열두 제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 다수의 그룹으로서 제자들을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너희까지도 떠나려느냐?” 라는 것이다. 66절에서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다고 한 말은 예수님의 등 뒤쪽으로 멀리 가버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67절에서는 단순히 떠나간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질문하신 문장은 원어에서 부정어로 시작하며 “너희까지도 떠나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어 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부정어로 시작하는 이 질문은 안 떠나간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부정어로 시작하는 그리스어의 문법에 따라서만 해석한 것이다.

너희까지도 떠나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부정적인 말로 시작하는 질문을 예수께서 하신 의도는 문맥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68절에서 이어지는 시몬 베드로의 대답을 통해 그러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부르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당신은 영생의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대답한 것에 대해 베드로의 솔직함이 고귀하다면서 예수님의 상처입은 심령을 위로한 것으로 베드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드로만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베드로는 열두 제자들의 대변인으로서 모두의 의견을 대신해서 말한 것이다. 다수의 주석가들도 베드로는 열두 제자의 대변인으로 말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대답으로 베드로의 믿음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설교자들이 이 구절이나 마태복음에 16:16절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베드로의 믿음을 칭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의 대표로서 다른 제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대신 말한 것이다. 69절에서 베드로는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것을 믿고 알았습니다” 라고 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우리” 라는 말을 쓴 것은 열두 제자들을 대표해서 말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원어에서는 믿었다는 말과 알았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알았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64절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처음부터 믿지 않는 사람과 넘겨줄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고 했고 또 70절에서도 한 사람은 악마라고 하신 것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렇게 부정적인 말로 시작하는 질문은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믿음을 아시기에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시험하여 서로 확인시켜주고 격려하시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강한 바람으로 쭉정이를 날려버리고 알곡을 골라내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쭉정이 같은 제자들은 이미 다 날라갔기에 남아있는 제자들의 믿음의 고백을 서로 말하게 하여 믿음으로 세워주시려는 예수님의 격려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모이는 것도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믿음을 통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해 가기 위함이다. 서로가 간증을 하는 것이나 말씀으로 은혜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은 모두가 함께 공감하며 ‘나도 그렇다” 라고 하여 격려와 위로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열두 제자들은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알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불완전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 받음으로 완전해졌다. 우리 역시 불완전한 믿음이지만 서로가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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