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6-7 사랑은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보고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처럼 한없이 덮어주고 한없이 믿어주며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무례하지도 않고 자기의 것만 챙기지도 않고 성을 내지도 않고 악한 것을 적어놓고 계산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는 내용이다.
6절은 원어에서 불의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뜻이다. 원어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NIV나 새번역은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여기서 대조가 되는 것은 불의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 것과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원어를 보면 불의라는 말에는 표면 위에 라는 뜻의 전치사와 함께 있지만 진리를 기뻐한다는 말에는 없다. 표면 위에 라는 말은 불의라는 표면 위에 라는 뜻이기 때문에 관찰자는 불의라는 표면을 바라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에서 진리라는 말에는 전치사가 없다. 그 대신에 기뻐한다는 말 앞에 함께 라는 말이 붙어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관찰자가 아니라 실제 그 진리에 함께 참여하면서 함께 공감하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의와 진리라는 단어가 대조가 되는데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먼저 불의라는 단어를 타인의 악행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악이고 진리를 부정하는 모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불의와 진리를 신학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를 신학적 의미의 불의로 보지 않고 고린도 교회 상황 전체에서 드러나는 타인의 잘못이나 실패나 부정행위에 대한 기쁨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도 자기 이익 위한 조작 없이 진실성과 정직함과 선함을 적극적으로 축하하는 것으로 본다. 불의라는 말을 고린도전서 5장의 아버지의 첩을 상속받은 것을 자랑하는 태도나 6장의 법정에서 고소한 것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불의란 신학적 의미에서 의롭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타인이 악행을 해서 성공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구절을 고린도전서 6:1-11절의 소송 문제와 연결하여 사랑은 타인을 부당하게 대하는 행위를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로운 방식인 도적적 진리에 기뻐한다고 해석하며 윤리적 도덕적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고린도전서의 전체적인 문맥과 연결해 볼 때 불의와 진리는 신학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행한 행위와 연관이 되는 것이다.
본인은 5장의 아버지의 첩을 상속받은 사건과 6장의 소송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라고 본다. 바울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아버지의 첩은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법적으로는 당연히 상속을 받아 자기 첩을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귀족들은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아버지의 첩에게 재산 일부를 주고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것이 죽은 아버지에 대해 합당한 예우로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의 첩을 상속 받아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은 합법적이다. 이에 대해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가 비난하자 그들이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고소한 것이 6장의 내용이라고 본인은 해석한다.
그렇다면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이러한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오래 참으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준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본인도 똑 같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오래참으며 선을 행해서 기뻐한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의 기쁨처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7절은 네 개의 단어에 모두 모든 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이다. 원어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6절에서 말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설명한 것이다. 이 네가지 모든 것을 말한 것이 사랑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보호해주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결코 잃지 않으며 희망도 결코 잃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모든 것을 참는다는 말에서 참는다는 말은 본래 지붕을 덮은 것을 뜻하는 말에서 온 말이다. 지붕을 덮듯 다른 사람을 보호해 주는 그림이다. 연약한 자들이 믿음으로 잘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지붕이 되어 그가 받을 모든 비난을 막아주며 참는 그림이다. 이어서 모든 것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보호해 주는 사람이 분명히 변화될 것을 믿는다는 뜻으로 참으며 보호해주는 것의 연장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정말 힘들게 된다. 그 사람이 변화될 가능성은 안보이고 계속해서 자기 뜻대로 하는데도 계속 보호하며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는 것은 모든 것을 소망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7절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품으시고 그들의 지붕이 되어주신 것을 요약해서 전한 것이다. 이는 암탉이 병아리들을 그 날개 아래 품듯이 제자들을 품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당시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그 날개 아래로 품으려하셨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23:37절에 보면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모아 품으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너희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 네가지 내용을 보면 크리스천들은 비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어떤 사람들에게 준 것인지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이 말은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그들 중 일부는 로마제국의 귀족들이었고 나머지도 부자들이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계가 없이 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서 높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세상적으로 낮은 사람들을 섬기고 보호할 때 결코 ‘아, 짜증나, 피곤해!’ 라고 생각 말고 결코 믿음을 잃지 말고 결코 희망을 잃지 말고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참고 견디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불신자들 도울때 그렇게 공을 들여 섬겼는데도 그들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배반하고 우리를 비난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바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수께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말 안듣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품으려 하셨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참고 그들을 보호하는 어미 닭의 날개가 되어야 하고 그들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