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7-8 바울은 그러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음으로 양심이 더럽혀지는 것이라 하자 고린도 교회의 지식인들은 음식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이전 말씀은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이 우상에 바친 고기를 먹는 것에 관해서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는 많은 신들과 주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한 분이신 하나님과 한 분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한 내용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한 지식이 없는 약한 자들은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진다며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Thiselton은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진다는 의미는 성스러운 영역에 부정한 것이 침입하는 것을 뜻한다며 진흙을 던지거나 배설물을 묻히는 것과 같은 혐오감과 수치심을 동반한 오염이라고 설명한다(Thiselton, NIGTC, 640). 이는 그들의 존재 전체가 손상되는 문제인 것이고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그런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그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물론 고린도 교회의 약한 자들은 판사처럼 올바른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증언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지식인들이고 강한 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그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서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지식이란 모든 신들과 주들은 다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한 분이 신 하나님과 오직 한 분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 있다는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이 음식을 더럽힐 수 없기에 아무 상관없다는 지식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양심에 아직도 우상에 대한 관습이 있어 우상의 제물인줄 알고 먹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럽혀진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상에 대한 관습이 있다는 말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상도 실제로 존재하는 실제로 생각하고 있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은 실제하지 않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니기에 먹어도 된다며 먹으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수긍하여 먹게 되면 그들은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원하면 누구나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는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기가 어려웠다. 1세기 고린도의 하층민들의 생활도 이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최상류층 사람들이기에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기를 먹을 기회가 적었던 하층민인 믿음의 형제들에게 고기를 먹게 해 주려고 형제들을 데리고 아프로디테 신전으로 데려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 하층민인 형제들은 가기를 꺼려할 때 지식이 있던 상류층 성도들은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의 말에는 이들의 교만한 마음과 함께 형제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지식이 있던 강한 자들인 상류층 성도들은 “너희들이 뭘 모르는 구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다른 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있지도 않은 신들이 음식을 더럽게 할 수 없고 니들 신앙을 더럽힐 수 없어! 괜찮아 먹어도 돼. 가자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고기를 실컷 먹게 해 주겠다. 나와 함께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가서 마음껏 먹자.” 라고 했을 것이다. 이들의 말은 판사의 판결처럼 냉정하고 정확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의 지식인들의 이러한 지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는 않는다. 이들 고린도 교회의 지식을 가진 상류층들의 잘못은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가진 자의 교만이고 폭력인 것이다. 진정한 도움은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같은 처지에 서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도 없고 이방 신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기에 우상에 바쳤던 제물을 먹기를 꺼려하던 고린도 교회 하층민들을 억지로 끌고 가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으로 괜찮다고 설득하면서 고기를 먹게 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이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함께 천국의 소망을 나누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들 지식인들은 지식이 없는 하층민 성도들의 눈높이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하층민 성도들은 정말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기회이고 높으신 분이 베풀어 주는 은혜이다 보니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신전에 앉아 고기를 먹으면서도 우상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이 더럽혀지고 있다는 죄책감은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안타깝게 여긴 바울은 7절에서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지느니라”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지적에 대해 고린도 교회 지식인들은 8절에서 다시 바울의 말에 반박한 것이 8절이다. 8절은 그러나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한다라고 반박하는 말로 시작한다. 음식을 구별해서 먹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 가까이에 다가서도록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선다는 말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리에 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 단어 자체는 곁에 선다는 뜻이기에 친밀한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옳게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미래형으로 읽으며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를 모두 다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어떤 이는 (1)칭찬 (2)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성 (3)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한다 (4)하나님 앞에서의 지위 (5)하나님의 심판대 이 다섯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며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이럴 때는 문맥을 봐야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부족함이 없고 먹는다 해도 넘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새번역은 손해 볼 것도 없고 이로울 것도 없다고 번역했다. 이 말은 음식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고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먹으나 안 먹으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아무 상관없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일 뿐이라는 것이고 사람의 영혼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먹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다 평가 받지 못하고 먹는다 해도 하나님께 넘친다 평가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음식은 먹어도 먹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점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말 만해도 대부분의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다. 저도 결혼했을 때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밤에 화장실에 갈 때면 제 아들이나 아내는 무섭다며 꼭 저를 데리고 가려 했다. 특히 추운 겨울 한밤중에 한 참 자고 있는데 화장실 가고 싶다고 깨우면 정말 짜증났다. 그 때는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점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말 만해도 대부분의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다. 저도 결혼했을 때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밤에 화장실에 갈 때면 제 아들이나 아내는 무섭다며 꼭 저를 데리고 가려 했다. 특히 추운 겨울 한밤중에 한 참 자고 있는데 화장실 가고 싶다고 깨우면 정말 짜증났다. 그 때는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 귀신이 있다고 해도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하는 그런 귀신은 없어. 또 이 동네는 좋은 사람들만 살고 안전하니 괜찮아 그냥 혼자 갔다와.”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 말이 맞다 해도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서 화장실 앞에서 덜덜 떨며 보초를 서야 했다. 화장실 안에서는 밖에 내가 있는지 때대로 불러서 확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 여기 있다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아무리 맞다 해도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내이기 때문에 함께 가서 안심을 시켜주어야 했다. 무서워하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괜찮다니까 왜 바보같이 굴어?” 하고 소리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추운 겨울 밤에도 함께 가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고린도 교회 지식인들이 외치는 “하나님은 한 분 뿐” 이라는 것과 “음식은 중립적이라는 말”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에는 사랑이 없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났지만 아프로디테와 그에게 드렸던 음식을 먹으면서 꺼림찍하게 생각하고 벌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던 이들에게 “모든 신들은 다 가짜니까, 그 제물을 먹어도 아무 상관 없어! 그냥 먹어” 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