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5 주께서 오실 때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그 때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내실 것이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칭찬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 안 사람들이나 교회 밖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양심에 거리끼는 것도 없지만 그런 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며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므로 주님 오셔서 마음 속의 생각까지 환히 드러내실 때 칭찬이 있을 것이니 그 때까지는 판단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5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므로 라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때가 이르기 전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여기서 때란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나 날짜나 연도 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적절한 때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정해졌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이전까지 라는 뜻이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그 참으시는 기간이 지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그 중요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 때가 언제인지 설명한 것이 주님 오실 때까지 라는 말이다. 주님 다시 오실 바로 그 때 이전까지는 절대로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신경쓰지 말아야 함은 물론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잘했다 못했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의 분열은 자신이 한일은 높이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시해 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주님 오시기 전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은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Thiselton은 적절한 때가 오기 전까지 어떠한 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주제는 바울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마태복음 7:1-3절에서 말씀하신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며 눈에 박힌 대들보와 톱밥을 비교한 말씀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Thiselton, NIGTC, 342). 바울 서신의 내용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대부분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 전달한 것이다.
요한복음 5:22-27절에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심판의 전권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 하시며 아들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니 예수님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만이 사망과 생명에 이를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니 우리는 아무도 심판하지 말고 우리 자신 조차도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리의 한 일들을 어떻게 심판하실까? 4장 5절 나머지 부분에 보면 그 분은 먼저 어둠의 비밀을 밝히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밝힌다는 말은 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안쪽에 있는 내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빛을 비추면 그 빛 아래 모든 것이 그 속까지 다 투명하게 다 드러난다는 뜻이다.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에 빛을 비추신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은 마음 속의 동기를 드러내신다는 말이다.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에 빛을 비추시면 그 결과 마음 속의 비밀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다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에 빛을 비춘다는 말이 악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선하든 악하든 비밀스러운 욕망이나 동기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비밀성이고 심지어는 자신도 모를 수 있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어두움 가운데 감추어져 있지만 주님 다시 오실 때 환한 빛을 비추셔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숨겨져있는 것까지 다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어두움 속에 감추어진 일들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이라고 했는데 고린도전서 14:25절에서는 “그 마음의 숨은 일” 이라는 표현으로 나온다. 고린도후서 4:2에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린도전후서에서 감추어진 일이라는 말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모든 비밀들인데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도 있을 수 있다. 반면에 마음 속의 생각이나 뜻으로 번역된 말은 주로 자신이 의도하고 있는 생각이나 동기나 목적을 뜻하는 말이기에 자신은 분명히 아는 것이다.
마음 속에 감추어진 비밀은 마치 마태복음 25:13-30에 나온 달란트의 비유와 같다. 주인은 먼나라에 있기 때문에 종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주인 돈 몰래 떼먹고 자신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다른 노예들만 때리기만 했던 일도 주인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두 종들이 남긴 돈을 보고 칭찬한 것이 아니다. 당시 사회에서 그만큼의 돈을 남기려면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 비즈니스를 경영하듯 어떻게 하면 주인께서 맡긴 돈을 잘 관리해서 이익을 많이 남길까 고민하면서 온 힘을 다한 결과라는 것을 주인은 알았던 것이다. 주인이 돌아올 때면 남긴 이익금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를 다 보여준다. 마치 건물을 불로 심판하면 돌을 열심히 깎아 집을 지은 사람과 나무나 풀로 대충 짓고 보기에만 그럴듯하게 한 사람은 다 드러나듯 말이다.
이처럼 마음 속에 감추어진 비밀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 일들이나 하지 않았어도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나 심지어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 안에 있던 생각과 욕망들까지도 다 포함한다. 주인이 보지 않은 동안 한 일과 생각한 일 그 모든 것을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시고 다 밝혀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 때 각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 마음 속의 생각까지도 다 밝히시는 것은 상을 주기 위한 것이지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동안 우리가 했던 일과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했던 것까지 다 드러내어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일했는지 보고 그에 따라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스스로 판단해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은 심판주로 오실 우리 주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이나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마치 종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주인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엄연한 월권이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맡은 사람들을 신실하게 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은 주님이 하실 일을 월권하면서 생긴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심판했기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었던 것이다. 서로가 자신이 한 일은 높게 평가하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이 한 일은 낮게 평가하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분쟁은 시작되었다. 분쟁이 없는 믿음의 공동체를 만드는 비결은 자기 스스로를 낮추어 그리스도의 마당쇠이고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평을 듣는 겸손한 지도자들이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한 일을 높게 생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는 것이고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