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7-9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길만 따라가라.
하: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 캄캄한 밤길 같은 인생 길에서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분의 말씀만 의지하며 따라가겠다.
이전 말씀에서는 반석이신 하나님만 믿고 몸을 맏기는 자를 하나님은 완벽하게 지켜 주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억압받던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지켜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곧게 하시고 평탄케 하시니 그 길을 따라 걷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7절은 주님께서 의로운 자들의 길을 곧고 평탄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이다. 하나님은 의인들이 걷기 힘들도록 길을 비틀고 구불거리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그 길에는 숨겨 놓은 함정이나 덫도 없다. 마치 아이가 넘어질세라 앞서 가시며 돌을 치우고 위험한 모든 것들 것 다 없애는 아버지와도 같다.
8절은 7절에서 비유로 말한 것을 분명하게 다시 설명한 것이다. 의로운 자들의 길이란 율법을 따르는 것이다. 율법이란 모세오경이 아니라 현명한 재판을 내린 판례를 뜻한다. 성경에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재판하셨는지를 살펴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다.
주님께 희망을 걸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순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실 것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약속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기다리기가 힘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그 신실하심을 보여준다는 확신이 없다면 절대로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억하겠다는 말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신실하심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시기에 개입해 주신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니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9절은 8절 뒷부분의 사모한다는 말로 이어간다. 밤에 주님을 사모한다는 말은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은 인생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길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다. 히브리 시에서는 밤이 나오면 반드시 그 짝으로 낮이 나와야 하는데 아침이나 낮이 없다. 그 아침은 "나의 마음이 주님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라는 말에 숨겨져 있다. 그냥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가 조금씩 밝아오자 주님을 찾아 나선 것이다. 주님을 찾는 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그 다음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실 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땅을 심판하신다는 말은 땅에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심판이란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앞에서 말한 현명하신 재판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현명하신 재판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깨닫고 따라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도 같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에 나와있지 않지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깨닫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길은 때로는 고난의 길이고 좌절의 길인 것 같지만 항상 옳은 길이고 축복의 길이다. 말없이 따라가면 되는 축복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