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13-15 한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의 유산을 나누는 재판관이 되어달라고 요청을 하자 예수께서는 거부하신 뒤 탐심이 침입해 오는지 잘 살피고 지키라고 하시며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것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상 법정에서 예수님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한다 하시며 성령님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며 성령 안에 거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을 재산을 나누는 재판관으로 세우려는자에게 탐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나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12:8절에서 예수께서 세상 법정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는 장차 예수께서 하나님의 재판관으로 재림하실 때 시인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이 말씀을 오해하고 나와서 자신의 유산 상속 문제를 재판해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형이 자신과 유산을 나누도록 재판관이신 예수께서 현명한 재판을 해 달라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장자들은 두 몫을 받았고 다른 아들들은 모두 똑같이 한 몫을 받았다. 이러한 법은 당시 사회에서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요청은 맏형이 모두 똑같이 나눠갖도록 재판해달라는 뜻이 아니다. 장자의 두 몫에 대해서는 아무도 잘못되었다며 공평하게 나눠갖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신명기 21:15-17절에 보면 미움 받는 아내의 소생이 장자이고 사랑 받는 아내의 소생이 장자가 아니라고 해도 미움 받는 아내의 소생이 장자이니 두 몫을 줘야 한다고 되어있다.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유산 상속문제는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그것을 어기도 공평하게 나누어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형이 모든 상속재산을 다 갖고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기에 나눠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율법에 기록된 것을 어기고 모든 재산을 형이 독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13절에서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 탐심을 버리라고 했기에 형이 율법을 어기고 모든 재산을 독차지했다고 해석할 수도 없다.
이는 형이 유산이 나누어지지 않고 아버지께 받은 그대로 보존되게 하기 위해 동생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편 133:1절에서도 "혀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했다. 당시는 농경사회였기에 형제들이 함께 살며 함께 협력하여 농사를 짓고 그 소산물을 나누며 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땅을 받아 농사를 짓는다면 함께 협력하여 농사를 짓는 편이 더 낫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자기 몫을 따로 나눠갖게 해 달라고 한 것은 이 사람은 그 재산을 처분해서 자기 마음대로 쓰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땅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희년이 되어서야 본래 가족에게 돌아오게 된다. 아마도 형은 동생의 그러한 마음을 알고 따로 나누지 말고 함께 농사지으며 살아서 아버지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래서 14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사람아!" 라고 부르시며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하신 것이다. 나누는 자라는 말이 재판관의 한 역할을 설명한 것이다. 이 두 단어들은 서로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산을 분할해서 나누도록 해 주는 것이 곧 재판관의 할 일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재판관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세상의 재판관으로 보고 부탁을 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이러한 재판관의 역할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던 랍비들이 맡았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예수님을 랍비를 뜻하는 선생님으로 부르며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그러한 일을 맡아 해주는 세상의 재판관이 아니라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영원한 하나님의 재판관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한마디 덧붙인 것이 15절이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잘 보라! 그리고 지켜라!" 라고 하셨다. 무엇을 잘보고 무엇으로부터 잘 지키라는 것인가? 그것은 탐심이다. 탐심이 그 마음 속을 뚫고 들어오는지 잘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탐심이 마음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지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인생의 가치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소유에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데 두라는 뜻이다.
물질에 대한 탐심이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온다면 그 탐심은 우리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그 탐심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 그렇게 되면 잠깐 있다가 사라질 안개와 같은 이 땅의 삶에 정신을 빼앗겨 영원한 생명을 잃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님은 무소유를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잘 지키라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는 환난과 핍박이 임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고 장차 영원한 재판관으로 재림하실 분이라고 담대히 증거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