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7-22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을 상속받을지 질문한 사람을 칭찬하시며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은 가진 자기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 슬퍼하며 돌아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자신들을 높이던 제자들에게 호통을 치시며 가장 낮은 존재인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어린 아이 같이 낮은 사람들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고 따라 오라고 했을 때 근심하며 떠나가는 사람이 나온다.
17절에서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선한 선생님” 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더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선하신” 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복음서에 나오는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달려와 엎드리면서 하나님 같은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표시한 것이다.
이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얻는다는 말은 본래 토지를 상속 받는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구경꾼이나 관광객으로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를 상속 받아야 진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라는 책망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자신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고 예수님도 자신처럼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라 생각하고 예수님께 최고의 찬사를 드리기 위해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만이 선의 근원이고 어떤 인간 스승에게서도 하나님의 속성인 선을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책망하신 뒤에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있을 거라며 계명들을 나열하셨다. 이 계명들은 십계명 돌판의 한쪽에 있는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들이다. 이 계명은 원래 순서와 달리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심각한 죄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모 사랑으로 끝이 난다. 이는 죄는 가장 심각한 죄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이웃에 대한 계명들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영생을 얻는 길을 물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대답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계명들을 나열하자 이 사람은 기가 막혔던 것 같다. 뭔가 특별한 가르침을 기대하고 질문했는데 기초중의 생기초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람은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사도행전 26:4절에 보면 바울도 과거 자신이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는 것을 자랑할 때 어릴적부터 지켰다는 말을 했다. 보통사람처럼 중간에 회개하고 계명을 지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 지켜왔다는 뜻이다.
그러자 21절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을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고 했다. 눈여겨 본다는 말은 원어에서 단순히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스럽게 여기셨다는 것은 예수님 마음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진심어린 믿음과 열정을 보시고 의도적으로 주목하여 바라 보면서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말씀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거짓으로 다정한 척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진짜로 사랑스럽게 보신 것이다. 다른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트집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질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에 더 잘 순종할까 하는 열정을 이 사람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어깨에 손을 얹으신 채 너에게는 한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한가지 부족하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진 것 몽땅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했는데 이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란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 14:5절에 보면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 때 제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야 했다고 책망한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14:6절에서 예수님은 가만 두라며 그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셨다.
이 구절을 잘못해석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교회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다. 예수님은 잠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서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께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는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다. 21절의 핵심은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 아니다.
22절에 보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울상을 지었다는 말은 구름이 끼고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얼굴에 구름이 가득 낀 것처럼 어두워진 채로 슬퍼하며 돌아간 것이다. 그 이유를 마가는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라고 증언한다. 이것은 부자가 되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제자로 삼고 싶어서 부르신 것이다. 베드로나 요한의 형제들을 부르신 것과도 같다. 베드로나 요한도 가진 것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재산도 많고 신분도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예수께 와서 질문한 핵심은 어떻게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 대답하신 것은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하자 가진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그들을 섬기는 자리에 서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것과 이 땅에서 누리던 부귀영화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부유한 삶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슬퍼하며 돌아간 것이다.
이 사람은 베드로나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보다 신앙적으로 볼 때도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베드로나 안드레나 야고보나 요한도 이 사람처럼 재산이 많았다면 그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다만 재물이 정말 많았기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도 갖고 싶고 이 땅에서 누리던 부귀영화도 계속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자신의 소유를 더 사랑했던 것이다. 한 여인이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은 눈에 보이는 이웃들을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섬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의 한 예가 오늘 말씀이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단번에 다 내려놓기는 힘들기에 작은 부분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 그것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있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 서지 않으면 그 사랑은 위선이고 자기 과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