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0:23-31

Dawn Word

마가복음 10:23-31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자가 받을 복

2022. 7. 23.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23-31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하시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의 소유를 포기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백배나 받고 다가올 세상에서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을 상속받을지 질문한 사람을 칭찬하시며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은 가진 자기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 슬퍼하며 돌아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설명해 주시는 내용이다.

이 부자가 슬퍼하며 떠나가는 뒷모습을 제자들은 멍하니 보고 있었을 것이다. 23절을 보면 예수님도 그 뒷모습을 보다가 제자들을 둘러보셨을 것이다. 둘러 본다는 말은 여러명의 제자들을 죽 훑어보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연설하러 연단에 올라선 연사가 청중들을 빙 둘러보아서 모든 시선을 한곳에 모은 뒤 연설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놀라 멍하니 있는 제자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시려고 빙 둘러보신 것이다. 그 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라는 감탄문이다. 어렵다는 말은 자르기 아주 어려운 정말 단단한 것을 자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아주 단단한 쇠파이프를 자르려고 하루종일 톱질을 했는데도 절반도 못잘랐다는 것과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은 부자가천국에 못간다는 뜻이 아니다.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진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하루종일 톱질해도 잘라지지 않는 것처럼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24절에 나온다. “제자들은 그의 말씀에 놀랐다” 라고했다. 이 말은 마가복음 1:27절에서 예수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놀란 장면에서도 나왔다. 또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32절에서도 나온다. 이는 너무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1:27절에서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소름끼치듯 놀라며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10:24절과 32절에서는 부자가 슬퍼하며 돌아가는 모습과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이 겹쳐져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제자들이 이처럼 놀란 이유는 그동안 배운 말씀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가진 것은 언약적 축복의 계기판으로 이해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부자였다. 모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교회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마태복음 6:24절과 누가복음 16:13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부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부자는 재물에 시선이 꽂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자 예수님은 다시 대답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새번역에서 “이 사람들아” 라고 번역한 말은 개역처럼 “얘들아” 또는 “자녀들아” 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는 자녀들 부르듯이 다정하게 부르신 말씀이다. 제자들을 정말 로 사랑하시기에 다정하게 부르며 정말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 말은 앞에서 한 말을 똑같이 반복하되 부자라는 말을빼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라고 하셨다. 부자라는 말은 25절의 비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4절 끝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라는 말은 25절에 이어져야한다. 얼마나 어려운지라는 말 다음에 나오는 말은 원어에서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라는 말이다. 그 다음에 비교되는 말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다.

이 비유는 글이 없던 시절 사람들에게 만화영화를 보여주듯 그림을 그리는 그림언어이지 사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언어의 뜻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만 매우 힘들다는 뜻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낙타를 작게 줄이든지 바늘구멍을 크게 키우든지 해야한다. 랍비들의 비유에도 코끼리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여 지나간다는 말이 나온다.” 랍비들의 글을 보아도 예수님의 비유는 불가능에 초점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에 제자들은 더 크게 놀랐다. 26절에서 놀랐다는 말은 원래 한대 세게 맞고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다. 완전히 압도되어 정신이 없을만큼 놀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은 대부분 좋은 의미에서 경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자들은낙타가 바늘귀로들어간다는 비유를 듣고 제자들은 쇠망치로 한대 맞은 듯 정말 놀랐다.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27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답변도 랍비들의 글과 같다. 초점은 하나님만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28절에 나온다. 베드로는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 왔습니다” 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완전하게 따라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 받을 보상을 말씀하셨다. 역시 중요한 진리이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강조하며 말씀하고 계신다. 버린 순서는 포기하기 쉬운 것부터 포기하기 어려운 것의 순서로 나열하고 있다. 그 순서는 오늘날 우리의 가치와 다를 수도 있다.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에게 제일 포기하기 쉬운 것은 집이었다. 그들은 본래 천막을 치고 이동하며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형제와 자매들이고 세번째는 부모인데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나와있어 더 포기하기 쉬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먹고 사는 문제와 유산문제가 직접 걸려 있기 때문이다. 네번째는 자녀들이다. 형제와 부모보다 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은 자녀들이다. 마지막에 나온 가장 포기할 수없는 것은 경작할 수 있는 땅이다.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경작할 땅은 사고 팔 수는 있지만 희년이 되면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고 영원히 자손 대대로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포기해야 할 순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은 먼저 쉬운 것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죄는 가장 무서운 죄부터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할 때는 먼저 쉬운 것을 먼저 포기하라는 것이다. 포기하기 쉬운 것 하나 포기하고 나면 그 다음엔 더 어려운 것도 역시 포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내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뜻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나?

원문에서는 29절 끝부분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그것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이다. “나를 위하여”란 예수님을 위하여 라는 뜻인데 자신들을 불러주신 예수님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을 주를 위한 일꾼으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그렇게 버리라는 뜻이다. 복음을 위하여라는 말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를 불러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며 전하라 하신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받을 축복이 30절에 나와 있다. 원문에서는 백배나 받는다는 말이 맨 앞에 나온다. 누가복음 8:8절에서도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백배나 거두었다는 말에서 백배라는 말이 나온다. 백배란 최고의 수확이고 최고의 보상을 뜻한다. 29절에 나온 것 중에서 아버지만 빠지고 나머지는 다 똑 같은 순서로 나온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아버지는 빠진 것이다.

그런데 백배로 받는다는 말이 이 땅에서 지금 백배로 받는다는 것이고 또 다가올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받을 집과 가족과 땅은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은혜 받은 자들이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나누는 삶을 살 때 교회를 통해 가족과 땅이 백배나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놓치면 안되는 말은 “핍박과 함께” 이러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든 세상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면 백배나 보상을 받겠지만 핍박도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기에 이러한 핍박은 견딜만 한 것이 된다.

마지막 31절은 당시 제자들에게 정말 깜짝 놀랄 말씀이었다. 개역에서는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많은 경우 먼저 된 자는 먼저 믿은 자이고 나중 된 자는 나중에 믿은 자라고 이해한다. 만약 이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면 그렇다면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먼저된 자라는 말은 가장 높은 자 또는 으뜸가는 자 라는 뜻이다. 반대로 나중된 자라는 말은 가장 낮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번역은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라고 한 새번역이 훨씬 정확한 번역이다.

먼저 첫째란 세상에서 높은 자들 부유한 자들 성공한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낮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이다. 또 꼴찌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무시당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높고 존귀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바뀌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생역전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적은 수이지만 세상에서 높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높은 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 수는 매울 적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백배로 보상을 받을 터이니 그것을 기대하고 이 땅에서 누릴 것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그냥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포기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부르신 예수님의 부름을 위해서 포기하라는 뜻이다. 또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포기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핍박과 함께 백배나 보상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다.

마가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