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5-1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셔서 친구라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비밀을 제자들에게 알려준다고 하셨다. 그러니 가서 항상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아버지께 구하여 다 받게 하신다며 그렇게 해서 서로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계명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시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려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이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시며 열매맺게 하려고 택하셨다며 서로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제자들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 15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15절에서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왜냐하면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초점은 종이나 친구라는 호칭에 있지 않고 주인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함께 공유하신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친구라 불렀다고 하셨다. 이는 완료형이기에 지금 새롭게 친구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그렇게 하셨다는 뜻이다. 친구라 부른 이유는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제자들에게 다 알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하신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의 이상적인 우정은 충성심을 특별히 강조한 것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왕과 신하 사이의 우정이나 지배자와 추종자 사이의 우정 같은 것을 뜻할 경우가 많다. 역대하 20:7절과 이사야 41:8절과 야고보서 2:23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했다. 창세기 18:17서는 직접 친구라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는 이처럼 신뢰하여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를 말한다. 이런 경우 주인은 자기 아랫사람을 친구로 대하며 자기의 모든 일들을 숨김없이 다 말해주는 것이다. 그만큼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렇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을만 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신뢰해주신 것이다. 배반할 제자들임을 알고도 그렇게 신뢰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친구는 또한 아첨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아첨꾼은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척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진실한 신하인 왕의 친구는 왕에게도 거짓으로 사랑하는 척 하지 않는다. 오늘날 누가 예수님의 친구인가 알아보는 기준도 역시 이와 같다. 만약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친구가 아니라 예수님의 아첨꾼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신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 친구란 힘을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모든 비밀을 다 알려주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친구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16절에서 말씀하신다. 이러한 친구 관계는 예수님 당시 지배자들이 믿을만한 신하를 선택하고 친구 삼아 사랑하며 모든 것을 알려주던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친구 삼아 주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특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적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함께 야자타임할 수 있는 오늘날 친구관계가 아니라 주인이신 예수께서 목적을 가지고 친구로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이는 이제 더 이상 주종관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분명히 예수께서 제자들의 주인이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친밀한 관계로 제자들을 불러주신 것이다. 세운 것이라는 말은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죽기까지 사랑하는 자리에 내 놓으셨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0:28절에서는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 감독으로 세우셔서 돌보게 하셨다는 말에서 세운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마치 달리기 선수를 출발선에 세워놓은 모습에 비교할 수도 있다. 선수를 출발선에 세우는 것은 달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제자들을 택하시고 친구로 세워 놓으신 목적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너희 안에 머물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너희를 가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은 누가복음 10:3절에서 70인을 택해서 보내실 때도 한 말이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가게 하셔서 세상 가운데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이다. 15:31절에서 여기를 떠나자고 하셨는데 이제 제자들을 사랑의 달리기 선수로 택하셔서 출발선에 세우시고 신호총을 쏘시며 가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이제 이웃들에게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이 열매를 전도한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예수님 같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바로 그 다음에 그 열매가 너희 안에 터를 잡고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제자들 안에 항상 머물러 살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 열매는 한번 따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제자들에게 주렁주렁 맺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기도하면 뭐든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열매가 계속 맺히도록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신다는 뜻이다.
가서 열매를 계속 주렁주렁 맺으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래서 17절에서 너희에게 명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명한 것이란 말은 계명이란 말과 같은 말에서 온 것이다. 예수님이 지키라고 하신 계명은 바로 13:34절에서 새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배반할 제자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사랑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이고 명령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7절 뒷부분에서 다시 한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12절에서 나온 것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초점은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고 해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좋은 사람들 편안한 사람들 끼리만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서 열매를 맺으라고 앞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세상에 나가서 예수께서 보여주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 열매를 보여주고 제자를 삼은 다음 그들과 서로 예수님처럼 사랑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사랑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사람은 이제 달리기 선수처럼 출발선상에 엎드려 있다. 이제 신호총이 울리면 나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가서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며 전도하라는 뜻이 아니다. 가서 예수님의 사랑의 열매가 우리 안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먼저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보여주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열매를 보고 함께 제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