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49-50 예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시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바디매오를 격려하며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알렸고 바대매오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더럽고 천한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께 나오는 것을 막았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자 바디매오가 응답하여 예수께로 나오는 장면이다.
49절을 보면 바디매오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신 뒤 바디매오를 불러오라 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바디매오를 멸시하며 입 닫으라고 책망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시자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다. 49절 뒷부분에 보면 그 사람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세가지를 말로 격려하면서 그 소경을 불렀다.
부른다는 말이 반복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예수님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디매오의 소리를 듣고 부르라고 하시자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여 즉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어지는 세개의 동사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현재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는 바디매오를 무시하며 꾸짖던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돌변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중 첫번째는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용기를 내라는 말은 마가복음 6:50절에서 풍랑 가운데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바다 위로 걸어오시며 "안심하라"라고 하신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외친 것은 혹시나 그냥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두번째로 말한 것은 일어나라는 것이다. 구걸하던 바디매오는 겉옷을 펴고 깔고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기에 일어나라고 한 것이다. 세번째는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소경 거지이기에 모두가 다 무시했는데 예수께서 그를 부르시자 모두가 태도를 바꾸어 이처럼 친절하게 격려를 하며 부르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께서 부르신다고 전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태도가 이렇게 돌변한 것은 그들 대부분 예수님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는 부른다는 말을 이 한 절에서 세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한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곧 기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도 이제 곧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예상하고 이렇게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친절하게 대한 것이다. 우리 모두도 바디매오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유명한 정치가나 대단한 기업을 소유한 재력가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명망 높은 학자도 아니기에 모두가 그냥 무시할 존재들이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이신 우리 주님께서 멈추어 서셔서 우리를 불러 주셨을 때 모두가 무시하던 존재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바디매오의 행동이 50절에 아주 생생하게 동영상처럼 그려져 있다. 먼저 바디매오는 자신의 겉옷을 던져버렸다.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말은 지나치게 번역한 것이다. 원어는 “벗어” 라는 말이 없고 그냥 “겉옷을 던져 버리고” 이다. 새번역 번역자들은 오늘날 우리의 생각을 따라 겉옷이니 입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벗어 던졌다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상상으로 벗어 던졌다고 번역하면 마가가 생생한 그림언어로 기록한 아주 중요한 장면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바디매오가 이 겉옷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알아야 우리가 실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의 겉옷은 이불역할을 하던 것이다. 출애굽기 22:26에 보면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했다. 개역은 출애굽기 22:26절에서 그냥 옷이라고만 번역했는데 옷이 아니라 새번역처럼 겉옷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겉옷은 깔고 덮고 자는 침구였다.
바디매오는 이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옷은 평상시에 가까운 곳을 다닐 때는 입지 않는 옷이다. 먼거리를 여행하던 여행자들이 침낭처럼 사용하던 것이다. 바디매오는 집도 없이 떠돌던 소경 거지였기에 그 겉옷은 그의 침구였다. 낮에는 바닥에 깔고 앉았을 것이다. 바디매오는 이 겉옷을 바닥에 깔고 한 자락은 무릎을 덮어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들을 이 겉옷 자락에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바디매오는 입고있던 겉옷을 벗어 던진 것이 아니다. 이 소경은 겉옷을 땅에 깔고 무릎에 덮고 있던 상태에서 그냥 벌떡 일어난 것이다. 벌떡 일어났다는 말은 용수철처럼 갑자기 튀어 오른 것을 말한다. 그러자 겉옷 뿐만이 아니라 옷 위에 있던 동전들이나 음식들도 모두 와르르 쏟아졌을 것이다. 따라서 바디매오가 겉옷을 던진 것은 겉옷과 함께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이다. 이는 바디매오가 전재산을 다 내버렸다는 뜻이다. 바로 옆 노점에서 구걸사업을 하던 이웃 가게의 거지는 이게 왠 횡재냐며 얼른 주워 가졌을 것이다.
바디매오는 전재산을 모두 다른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을 분명히 들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완전히 믿지 않았다면 겉옷을 집어들어 어깨에 걸치고 예수님 앞에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소원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도 겉옷과 동전들까지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온 것은 예수님을 완전히 믿은 것이다.
이는 바로 앞에 나온 10:43-45절에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뒤에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다. 믿는 자가 섬겨야 할 사람들은 바로 바디매오처럼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는 자들이고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오는 자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섬겨야할 사람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 높은 사람들은 섬길필요가 없다. 세상적인 관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다 섬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낮은 자리에서서 진정 섬겨야 하는 사람들은 바디매오처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모든 사람들을 다 섬기라는 뜻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온 힘 다해 주님께 부르짖는 자들이고 또한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며 부르짖고 그 부르심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존경하며 그들을 높여주고 그들의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