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0:46-48

Dawn Word

마가복음 10:46-48

누가 섬길 대상인가?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7. 30.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46-48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더럽고 천한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께 나오는 것을 막았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다.

이전 말씀에서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들의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소경 바디매오가 간절히 외치는 장면인데 제자들이 섬겨야 할 낮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늘 본문 연극이나 영화의 한 부분으로 본다면 46절은 무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고 자신을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라고 말씀하신 뒤에 제자들 함께 여리고로 갔다. 수많은 무리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과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

바디매오라는 이름의 뜻이 본문에 나와 있다. 디매오의 아들이란 말은 바디매오라는 말의 뜻을 해석해 놓은 것이다. 바는 히브리어로 아들이란 뜻이고 티매오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존경할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존경받을 자의 아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왜냐하면 소경이고 거지라고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소경처럼 천하고 불쌍한 사람은 없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앉아서라도 일을 할 수 있고 세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소경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낮고 천한 사람중의 한사람이다.

바디매오가 있던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이다. 몇시간만 걸으면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바로 턱 밑에 있는 도시이다. 사해 북쪽 끝에서 몇마일 떨어진 곳이다. 이 사람이 앉아있던 곳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는 순례객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길목이다. 순례자들의 최고 미덕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기에 경건한 순례자들은 바디매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 상인들도 역시 이곳을 거쳐 예루살렘에 가서 순례객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사업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곳은 구걸 사업이 잘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누군가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구걸하기 가장 좋은 장소에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바디매오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나가는 건강한 사람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할 때에는 건강한 사람이 가장 부러운 법이다. 바디매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앞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며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디매오는 전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중 어떤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 라고 말을 해주었을 것이다. 원어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 가 아니고 "나사렛 예수가 있다" 라는 뜻이다. 나사렛 예수가 현재 바디매오의 바로 앞에 계신다는 뜻이다. 나사렛 예수께서 앞에 계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소란스러운 원인을 알았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이 바디매오에게 나사렛 예수라고 말해주었을까? 나사렛은 여리고에서 아주 먼 곳이다. 자동차로 왕래하는 오늘날 사람들에겐 먼거리가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이 걸어서 가는데는 일주일 정도 걸리는 곳이다. 사실 이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왕래도 거의 없어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사렛 예수라고 말해 준 것은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은 오늘날 미국의 David나 John 만큼은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다른 예수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예수께서 많은 기적과 놀라운 가르치심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 소문이 예루살렘과 여리고까지 소문이 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디매오는 소리치며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 중에서 새로운 왕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바디매오는 그동안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간절히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48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다. 많은 사람이란 말은 제자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을 말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입다물라고 책망한 것이다. 책망한다는 말은 아주 높은 사람이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 함부로 말할 때 쓰는 말이다. 10:13절에서 어린아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꾸짖은 제자들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높다고 생각하고 바디매오는 아주 천한 존재로 보면서 완전히 무시하며 함부로 꾸짖는 말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당시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디매오를 보고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바디매오는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더욱 더 큰소리로 외쳤다. 원어에서는 많은 사람이란 말과 더욱 큰소리라는 말이 같은 말이다. 큰 무리의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꾸짖을수록 그 무리들의 수 만큼 큰소리로 바디매오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가 큰 무리의 사람들보다 더 컸다.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은 시편 6:2절에도 나온다. 또 이사야 30:19절에는 예루살렘이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주님이 틀림없이 은혜를 베푼다는 구절에서 나온다. 시편과 이사야에서 보면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바디매오는 수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했을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록자처럼 이사야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듯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막았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바디매오가 당시 가장 신분이 낮은 소경 거지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으로 바디매오를 평가하고는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오늘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바디매오 같은 사람들을 막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바디매오 같은 사람을 멸시하여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오늘날 믿는 자들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세상적 기준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양다리 중 한쪽 다리를 과감히 잘라 버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바디매오와 같은 위치에 있다면 우리를 멸시하며 가로막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소리로 외치며 나가야 한다. 회당장 야이로도 곡하는 자들의 조롱을 이기고 나가야 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 사이를 뚫고가기 위해 지붕을 뜯어야 했다. 문둥병자와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사람들이 부정하다며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가야 했다. 따라서 우리도 바디매오와 같은 위치에 있다면 우리도 역시 사람들 멸시를 뚫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이러한 바디매오의 태도에서 우리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기준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장 낮은 종이 되어 섬기라고 하신 말씀은 부자청년처럼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세상적으로 보면 낮고 천한 사람이지만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라며 큰 소리로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단순히 억지로 겸손한 태도를 취하며 섬기는 척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짜 존경할 대상이니 섬기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최고로 무시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간절한 태도로 부르짖는 사람들이 가장 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높고 낮음이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부자청년과 같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 존경 받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사람들은 섬길 대상이 아니라 멸시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다. 예수께서 낮은 자를 섬기는 종이 되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을 섬기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