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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0:51-52

Dawn Word

마가복음 10:51-52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8. 2.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0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0:51-52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의 선생님"이라 부르며 보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시자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시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바디매오를 격려하며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알렸고 바대매오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왔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물으신 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며 치료해 주시는 장면이다.

51절에 보면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자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10:36에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는 말과 완벽하게 똑 같은 말이다.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영적인 소경이었다. 예수께서는 영적인 소경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었던 말을 진짜 소경인 바디매오에게도 똑같이 물으시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영적인 소경이었기에 세상 명예를 구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실제 소경이었기에 “선생님” 이라고 부르며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선생님이란 말은 아람어로 “나의 선생님” 또는 “나의 주인님” 이란 뜻이다. 바디매오가 썼던 말을 그리스어로 그대로 음역하여 쓴 것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나의 스승님 또는 나의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한다.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바디매오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아니라 나중에 소경이 된 사람인 것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아들이라는 호칭과 나의 선생님이라는 두가지 호칭을 사용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이 선한 선생님이라고 했을 때는 그 호칭을 거부했다. 하지만 바디매오가 부른 이 두가지 호칭은 모두 그대로 인정하셨다. 왜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호칭은 거부하시고 바디매오가 부른 호칭은 인정하셨을까?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선생님으로만 인정했다. 부자 청년은 선생님 이라는 호칭에 선한이라는 말을 붙였다.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하나님 같은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치켜 세운 것이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먼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보내신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바디매오가 부자청년과 또 다른점이 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나의 선생님” 으로 불렀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으로만 보고 자신의 스승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바디매요는 자신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아 "나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디매오가 부르는 호칭과 바디매오의 소원을 들은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라고 말씀하셨다. 가라는 말은 더 이상 앉아서 구걸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또 이젠 네 마음대로 가도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만지지도 않고 단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라고만 말씀하셨다. 바디매오의 믿음을 분명히 보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다. 구원이란 눈을 뜬 것을 말한다. 5:35절에서도 예수님은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섬겨야할 세번째 기준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도 바디매오 같은 사람을 섬겨야 한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 또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자신의 선생님과 주인님으로 모시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예수님을 훌륭한 선생님으로만 인정하는 사람들은 섬길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섬겨야할 대상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배우려는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즉시 눈을 뜨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 예수님은 멀리 가라고 했는데 바디매오는 따라갔으면 예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인가? 더구나 따라갔다는 말은 제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초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따라가도 되나? 예수님은 자유롭게 가도 된다고 하신 것이지 따라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46절에서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길에 앉아 있던 이 사람은 이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바디매오 같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고 예수님을 위해 버리고 예수님께 배우려는 사람이 진짜로 존경하며 섬겨야 할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섬겨서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그들은 함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들이 되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인 예를 든 것이다.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낮고 천한 사람들 중에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라며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바디매오처럼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또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자신의 선생님과 주인님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려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부자청년처럼 양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은 섬길 대상이 아니다. 물론 세상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자청년 같은 사람이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며 나의 선생님이라고 인정한다면 역시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바디매오처럼 간절히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나의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자신들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전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리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섬길 대상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높고 낮음이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바디매오 같은 진짜 존경받을 사람을 알아보고 그런 낮은 자를 진짜로 섬기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핍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같은 사람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바디매오와 같이 낮고 천한 자들을 섬기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사람들을 섬긴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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