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1-3 예수께서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타실 것인데 이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의 선생님"이라 부르며 보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시자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바디매오는 제자들이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보여준 본보기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도 겸손히 섬기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나귀를 타신다는 것이다.
1절을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곳의 위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올리브산 기슭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이다.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근처에 도착하신 것이다. 거기서 제자들 둘을 보내셨다. 2절에서 예수께서는 그 두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맞은 편 마을로 가라 하셨다. 원문은 “그 마을에 들어가자 마자” 라는 말이 바로 이어진다. 그 마을에 들어가는 즉시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새끼 나귀 라는 말은 창세기 49:11절의 유다에 대한 축복에서 나온다. 그 내용은 유다의 자손 중에 메시야가 와서 나귀 새끼를 탈 것을 예언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예언은 스가랴 9:9절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따라서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데려오라 하신 것은 창세기와 스가랴에 나타난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새끼 나귀라는 말에서 강조점은 어리다는 데 있지 않고 새것이라는 데 있다. 70인역구약성서 스가랴 9:9절에는 나귀새끼 라는 말에 New에 해당하는 neo 라는 말이 붙어 있다. 따라서 이 나귀는 사람이 탈 수 없는 아주 작은 새끼나귀가 아니다. 충분히성장한 나귀지만 아직 사람이 타지 않은 새 나귀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란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신명기 21:3절에 보면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 란 말이 나온다.이는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그 죽인 자를 알지 못할 때 드리는 대속제물에 대한 구절이다. 따라서 이는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대속제물이 되실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발견하면 풀어서 데려오라는 것이다.
또 3절에 보면 그 다음에 일어날 일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약 누가 “왜 이렇게 하느냐?” 라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라고 대답하라 하셨다. 여기서주님이란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가복음 5:19에서도 군대귀신 들린 사람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라고 할 때는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썼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라는 말을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킬 때 썼다. 마가복음 16:9절에서 예수님 부활 후 승천하실 때 “주 예수” 라는 말을 썼지만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뒤에야 쓰던 말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사역에 그 나귀를 쓰시겠다는 뜻이지 예수께서 자신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시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것은 아니다.
그 다음에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 보내실 것입니다” 라는 말이 나온다.이 말에서 그가 누구인지 성경 번역마다 다르다. 그가 나귀의 주인일 수도 있고 주님일 수도 있다. 만약 그가 나귀의 주인이라면 개역처럼 “즉시로 이리로 보내리라” 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라는 말이 앞에서 말한 주님이라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된다. 그러면 새번역처럼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 보내실 것입니다” 가 된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새번역처럼 사용한 뒤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4세기 대문자 사본인 Codex Sinaiticus에도 "다시"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래된 사본들의 필사자들도 다시 주인에게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기록한 것이다. 개역처럼 나귀의 주인이 보낼것이라고 해석해서 예수님의 미리 아시는 능력을 강조한 후대의 필사자들은 "다시" 라는 말을 삭제했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시고 그 다음에 그가 즉시 돌려보낼 것을 말씀하셨으니 그라는 말은 나귀 주인이 아니라 the Lord 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쓰고 나서 즉시 돌려보낸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 새끼 나귀를 데려오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군마를 타는 것은 교만한 정복자의 상징이다. 하지만 나귀를 타는 것은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시되 죽기까지 낮추셔서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6-8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도 한없이 낮추신 것인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군마 대신 나귀를 타신 것은 분명히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신것이다. 나귀를 타신 것은 정복자인 왕이 아니라 대속제물이 되실 평화의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주님을제자들과따르던무리들은대부분신분이낮은사람들이었다. 저들은예수님이자신들을높여줄분으로생각했다. 예수님을통해서자신들이높아지고부귀영화를누리길기대했다. 당시지배계급이었던대제사장들과바리새파사람들과율법학자들도메시야는자신들을높여줄존재로알았다. 결국이스라엘의낮은자들이나높은자들이나똑같이세상에서부귀영화를누리게해주는메시야를기다렸다. 오늘날그리스도인들도역시예수를믿음으로이세상에서복을받고만사형통하기를바라는경우가많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께서 로마황제처럼 군마를 타지 않고 초라한 모습으로 아무도 타지 않았던 나귀를타고 입성하신 뜻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로마황제의 라이벌이되는 왕국을 건설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종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왕이지만 섬기는 왕이기에 농부들처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타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심으로 자신이 죽기까지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알리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