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16-19 해산의 고통으로도 아무것도 낳지 못해 낙심했지만 하나님은 죽은 자가 살아오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실 것이다.
하: 절망 가운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나: 응답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기도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을 돌아보며 앞으로도 분명히 지켜 주셔서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제 현실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현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해 가는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니다.
16절은 주님께서 징계하실 때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을 찾았다고 했다. 그 전에는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찾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징계를 받자 그제서야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주님께 기도했다는 말은 그들은 간신히 속삭이는 기도를 할 뿐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힘든지 큰소리로 기도할 수 없어 들릴락 말락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기도한다는 뜻이다.
17절은 그 신음하는 기도가 임신한 여인이 산고를 치르는 모습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고를 치르는 여인은 그 엄청난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18절에서는 산고만 치르고는 아무것도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낳을 것은 새로운 생명이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낳았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19절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는데 그 중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시체가 일어난다 했다. 무덤 속에서 깨어난다 했다. 사막에서 낮에 뜨거운 햇볕으로 다 죽은 것 같던 식물들이 새벽 이슬을 맞고 다시 살아나듯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어 놓는다 했다. 땅이란 먼지 속이란 뜻이다. 중동 사람들이 죽은 상태를 나타낼 때 쓰던 말이다. 썩어가던 시체가 이슬을 맞은 풀들처럼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도 역시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오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는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부활의 모습은 문자적으로 믿는 자들이 부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낳지 못하고 다 죽은 상태와 죽은 자가 살아오는 기쁨을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
아무리 하나님께 신음하듯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가? 그래도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자.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해산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실것이다. 죽었던 자가 무덤 속에서 일어나 살아 돌아오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