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22:39-44

Dawn Word

누가복음 22:39-44

시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신 예수님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8. 10.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2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2:39-44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습관대로 기도하러 가실 때 그날은 특별히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뒤 좀 떨어진 곳에서 이 잔을 치워주실 수 있으면 치워달라 기도하시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은 사탄의 시험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적대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스스로를 지켜나가며 이러한 시험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시기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이다.

39절은 "그리고 예수께서 나가셔서 늘 하시던대로 올리브산에 올라갔다"고 했다. 습관을 따라 라는 말은 예수께서 늘 그렇게 기도하셨다는 뜻이다. 21:37절에서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밤에는 올리브산에서 지내셨다고 한 것도 예수께서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날마다 그렇게 기도하시는 습관이 있으셨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러나 제자들이 그를 따라갔다" 라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 영어 번역들은 "and"로 번역했고 한글 번역들에서는 생략했지만 원어는 "그러나" 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평소에는 혼자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날에는 제자들도 따라갔다는 것이다. 이 때 따라간 제자들은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들이다.예수께서 늘 하시던 습관대로 올리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누가도 그 자리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예수를 은밀하게 잡을 기회라고 알려주었겠지만 그것을 아시면서도 늘 하시던 그대로 올리브산에 가셔서 기도하신 것이다.

40절에는 평소와 달리 제자들도 데리고 가신 목적이 나온다. 그곳에 도착해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길 "시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 개역은 ""시험에 들지않기를" 이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이라고 번역해서 마치 생각지도 못했는데 시험에 빠지는 것처럼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는 시험 안으로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걸어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말이 공식적으로는 능동형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수동형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도 모두 능동형으로 "시험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제자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시험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으면 스스로 능동적으로 시험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사탄이 밀 까부르듯 제자들을 시험하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반드시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게서는 특별히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시험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개역은 41절을 "저희를 떠나……가서"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그들과 헤어져서"라고 번역했다. 개역에서 단순히 "가서"로 번역한 말은 "멀리" 라는 말과 "끌려갔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떨어져서 멀리 끌려가셨다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가까운 친구들의 공감 조차도 견딜 수 없을만큼 격한 감정에 이끌려 갔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본인은 성령님께 이끌려 제자들로부터 멀리 끌려갔다는 뜻이라고 본다. 새번역은 이처럼 제자들과 멀리 찢어지는 장면을 살려 "헤어져서"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돌을 던져서 닿을 만큼의 거리가 얼만큼일까? 보통 30 야드(27.4 m) 정도라고 말한다 보통 성인 남자들이 돌 하나를 힘껏 던졌을 때 닿을 수 있는 거리일 것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제자들에게 방해 받지 않고 기도에 집중하실 수 있는 거리이다.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보통 기도할 때 서서 하늘을 보고 기도한다. 특별히 사도행전에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이 네번 나온다(Act 7:60;9:40; 20:36; 21:5). 이는 특별히 집중해서 기도할 때 하는 자세이다. 아주 긴박한 순간이기에 겸손히 엎드려서 기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42절은 예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다. 그 내용은 "아버지!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이 잔을 내게서 치워주십시오" 라는 것이다. 잔이란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으로 자주 나온다(시 75:8; 사 51:17, 22; 렘 25;15, 17; 32:28). 따라서 이 잔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다. 그러나 예수께 대한 진노가 아니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다. 그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예수께서 대신 마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다가올 엄청난 고통의 죽음이 두려우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치워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보다는 당신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사탄은 계속 본성을 자극하여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하도록 부추겼다. 죽지 말고 왕이 되어 다스리며 영광을 받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하신 것이다.

43-44절은 아주 중요하고 권위있는 4세기 사본과 5세기 사본을 비롯해서 그밖의 일부 대문자 사본들과 일부 후대 소문자 사본들에는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4세기 사본 하나에는 이 부분이 포함되어있다. 대다수의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도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사본들의 증거로 보면 이 부분은 본래 누가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4세기이전에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부분을 포함해서 읽는다면 예수께서 너무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가 힘들었다는 뜻이 된다. 너무 힘들어하시기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예수께 이길 힘을 주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뇌는 견딜 수 없이 큰 것이었다는 것이 44절에서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고 한 것이다.

43-44절을 포함하는 것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뇌를 진정으로 잘 나타낸 것이 되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누가복음 전체로 볼 때 예수님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이 포함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뇌에 찬 모습이 본래 기록되어 있었는데 후대에 삭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후대 필사자들이 삽입한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약함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은 전능하신 아버지의 신적 권능을 공유하고 있는 예수님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일부 지역의 교회에서 삭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내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간절한 기도이고 응답받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라기 보다는 자기 욕심에 이끌려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주님처럼 우리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내려놓기가 정말 어려울 때 그것 내려놓게 해 달라고 온 힘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진짜 간절한 기도이고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누가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