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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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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22:35-38

적대감 속에서 사역할 것을 대비하라

2023. 8. 9.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2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2:35-38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은 사탄의 시험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적대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스스로를 지켜나가며 이러한 시험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사탄이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을 했으나 예수께서 기도하셨기에 나중에 회개하고 돌아서서 다른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했지만 예수께서는 세번 부인한다고 하셨다.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이 사탄의 시험으로 적대감 속에서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35절은 "그리고"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되지만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인다. 사탄이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한다는 말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낸 것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10:4절에서는 이러한 것을 가지지 말고 가라며 제자들을 파송하셨다. 그 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는 영접하는 사람들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10:4절에서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며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냈을 때 부족한 것이 없었느냐 물으신 것이다. 이 세가지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갖고 다니던 필수품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 없이 다녔어도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제자들은 대답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36절은 "그러나 이제는" 라는 말로 35절과 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전대가 있는 사람들은 집어들라고 하신다. 새번역은 돈주머니라고 번역했지만 전대라는 말이 우리말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기에 더 자연스럽다. 이는 오늘날 지갑에 해당한다. 개역은 주머니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자루로 번역한 말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인데 여행자들이 먹을 것과 여행시 필요한 필수품을 넣어 가지고 다니던 가죽으로 된 주머니이다. 이 두가지는 아무도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재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 검이 없는 사람은 그의 겉옷을 팔아서 사라고 했다. 겉옷은 여행시에는 이불처럼 사용하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이라는 것이다. 새번역은 칼이라 번역했는데 이는 전투시에 사용하는 한쪽날이 있는 약간 구부러진 칼이기에 검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 대적하고 죽이려는 사람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제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비유적인 의미이지 실제로 칼을 사라는 뜻은 아니다. 모두가 제자들을 대적하고 죽이려는 것이 바로 사탄이 제자들을 밀까부르듯 하는 시험이다.

37절은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그 이유는 "기록된 것이 내 안에서 성취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성취되어져야만 하는 것은 무법자들과 함께 여김을 받았다는 이사야 53:12절 말씀의 인용이다. 무법자들이라는 말을 십자가에 처형된 강도들일 것이다. 이 말은 본래 도적떼나 강도떼들과 같은 범법자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예수께서 그런 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된다고 하는 것이기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유대인 독립투사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제 제자들도 로마정부에 반역하는 무장항쟁 투사들로 고발할 것이고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37절 끝부분에서 "내게 관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끝을 현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끝이라는 말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과 어원이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취" 또는 "목표"라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는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성취되어 끝이 난다는 뜻이다. 그 끝은 곧 예수님의 죽음이다. 그 끝은 예수께서 이사야에 예언된대로 죽으시는 것이다. 현재형이기에 지금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끝이날 예언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38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이제 제자들은 열심당들처럼 칼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여 보십시오! 여기 검 둘이 있습니다" 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실제로 칼을 사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하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이런 어리석은 대화는 그만두자는 뜻으로 해석한다. 영어의 "That's enough!" 같은 표현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충분하다는 말이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말과 함께 쓰인 경우가 그런 대화는 그만 두자는 뜻으로 쓰인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은 분명히 제자들이 두개의 검이 있다고 하자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어리석은 대화는 이제 "That's enough!" 라고 하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누가복음 3:16절에서 요한이 "나는 충분하지 못하다" 라고 할 때 같은 말이 나왔다. 또 7:6에서는 백부장이 "나는 충분하지 못하다" 라고 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할 때 썼다. 바울도 역시 누가와 같은 경우에 이 말을 썼다. 고린도전서 15:9절에서 바울은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라고 할 때 썼다. 고린도후서 3:5절에서도 "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니" 라고 할 때 썼다. 디모데후서 2:2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충분할 것이다" 라고 할 때 썼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그런 대화는 그만 두자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검 두개로 제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며 싸우는데 충분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서구학자들은 칼 두개가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라 "That's enough! No more such conversation!" 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검을 사라는 말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비유적인 말씀이지 실제로 검을 사서 싸우며 지키라는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검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로마의 반역자로 분류되는데는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표현의 일반적인 쓰임으로 볼 때도 바보 같은 소리 그만 두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그만하면 상징적인 의미를 갖추는데는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많은 놀라운 일들을 체험했다. 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열광을 하며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 전하러 나가도 어디에나 자신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인데 아무도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들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바로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1세기 후반이 되면 거의 대부분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적대적인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유대교로 돌아가버렸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날이 마지막 때라서 갑자기 적대적인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기독교 공인 이후 서구세계에서는 교회가 막강한 힘을 지녔었기에 사람들은 그 힘에 눌려 표현을 못한 것 뿐이다. 오늘날은 세상이 자유로워지고 기독교가 세상을 억압하지 못하기에 숨겼던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 뿐이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적대감 속에서 견디며 그리소도의 복음을 전하면 장차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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