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4-6 엘리야의 호소에 하나님께서는 칠천 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택하신 자들을 남겨두셨으며 이는 행위에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바울이 자신과 엘리야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만 구원하신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엘리야 시대에 칠천 명을 남겨둔 것처럼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며 행위가 아닌 은혜로 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4절은 목숨마저 찾고 있다는 엘리야의 호소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느냐?” 는 것이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그 응답은 그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라는 뜻이다. 그 응답이라는 말은 신구약 전체에서 잠언 31:1절과 여기에만 나온다. 한글 성경들은 잠언이라고 번역했고 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Oracle(신탁)이라고 번역했다. 이는 하나님의 대답이나 하나님의 경고 라는 뜻이다. 엘리야의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명을 내 앞에 남겨두었는 것이다.
내 앞에 라는 말은 하나님의 결정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칠천 명이 남아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이 엘리야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한두명도 아니고 칠천 명이나 남겨두셨다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열왕기상 19:18절에서는 남겨둘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되어 있지만 바울은 과거형으로 바꾸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예언 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셔서 남겨두셨다는 것이다.
5절은 “그러므로 이와 같이”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는 혼자만 남은 줄 알고 하나님께 호소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칠천 명을 남겨두신 것과 같이 라는 뜻이다. 여기서 “이와 같이” 라는 말은 숫자가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엘리야 시대와 같은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는 바울의 시대를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두셨다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자를 바울시대에도 남겨두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중 일부를 남기신 것처럼 바울시대에도 다 버리지 않고 일부를 남기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대상은 전체 이스라엘이 아니라 소수의 남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약을 어기신 것이 아니다. 썩은 이스라엘을 도려내다 보니 조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본인이 전에 감을 따다가 곶감을 만들었던 일이 있었다. 그 때 주일부터 며칠간 계속해서 비가 왔기 때문에 곰팡이가 핀 것들이 있었다. 심한 것은 골라내어 버렸고 부분적으로 곰팡이가 핀 것은 도려냈다. 온전히 잘 마른 것만 냉장고에 보관했다. 본인은 그 모든 감을 다 구원하려 했다. 하지만 어떤 것은 썩었고 어떤 것은 곰팡이가 났기에 버리고 도려낼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모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곰팡이가 나듯 썩어버렸기 때문에 골라서 버리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엘리야시대엔 7001명이 남은 것이다.
바울시대에도 그 숫자는 똑같지 않았겠지만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사도행전 2:41절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유대인들이 그날 하루에 삼천명이나 더했다고 했다. 어쩌면 사도행전 2장의 때에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의 숫자가 칠천 명 쯤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중 남은 자의 숫자가 몇 명인지는 알 길이 없다.
또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남은 자들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구원의 길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약 안에 있는 백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할 자가 하나도 없었다.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그중 일부를 선택하셔서 남겨두셨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소수가 하나님께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왔다. 이 남은 자에 대한 생각이 분명하게 나타난 곳은 이사야 이다. 바벨로니아가 남왕국 유다에 쳐들어와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모두 포로로 끌고 갔다. 앗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다른 민족과 혼합해 놓아서 힘을 못쓰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바벨로니아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 자기 나라로 데려감으로써 반역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바벨로니아 사람들은 포로로 잡아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좋은 대접을 해준 것같다. 7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벨로니아에 정착했다. 70년후 돌아가도 좋다고 했지만 소수의 유대인 지도자들만이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했다.
돌아온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과의 계약 안에 머무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민족과 혼합되었다며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시켰다.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 취급하여 유대교에서 몰아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처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만 남은 자로 여기고 나머지는 모두 죄인 취급하여 유대교 공동체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저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버린 죄인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백성들을 택하셨다는 것을 알리신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이 세운 율법의 기준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수많은 죄인들을 생산해 낼 뿐이었다. 모두에게 좌절과 절망감을 줄 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안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은혜로 그의 백성들을 택하신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하심을 임은 남은 자들이 바울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로마서에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이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도 인간의 행동이고 믿음도 인간의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 대비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인 율법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동인 은혜가 대비되는 것이다.
6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남은 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면 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남은 자는 행위에 근거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그렇지 않으면” 이란 말은 바울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처럼 율법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라면 이라는 뜻이다. 만약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란 값없이 거저 받은 선물이란 뜻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것이라면 선물이 아니라 품삯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품삯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선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답은 전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하셔서 일부를 남기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