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7-8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결과 이스라엘은 찾던 것을 얻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중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것을 얻었고 그 나머지는 완고해졌다는 것이 구약에 기록된 것과도 같다.
이전 말씀은 엘리야의 호소에 하나님께서는 칠천 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택하신 자들을 남겨두셨으며 이는 행위에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만 얻었고 나머지는 완악해졌다는 것을 신명기와 이사야를 인용해서 말하는 내용이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 남아있다며 행위가 아닌 은혜로 되었으므로 그 결과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 답은 이스라엘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아주 세심하게 개발한 율법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얻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전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의 반대말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소수의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스라엘은 완고해졌다는 것이다. 완고해졌다는 말은 부러진 뼈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는 뜻으로 영적으로 완악해져 하나님을 거역할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바울은 전체 이스라엘이 아니라 소수의 남은 자들 만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유대인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들은 은혜로 구원해주신 것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래서 당시의 온세계에 흩어져 목숨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소수의 남은 자들만 빼고 나머지는 완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소수의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핍박한 것이다. 이러한 남은 자들의 개념은 바울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에서 계속 흐르는 개념이다. 이사야에서는 남은 자 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남은 자들에 대한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8절은 신명기 29:4절과 이사야 29:10절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나머지들에게 혼미한 영을 주었다는 것이다. 혼미한 영이란 혼수상태와 같이 무감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께 복종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게 하셨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혼미한 영이란 말 자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상태를 뜻한다. 앞으로는 저들이 회복되길 바라시는 마음에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3:3-9에서 씨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13절에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하셨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비로 선택하신 사람들만이 눈을 뜨고 귀를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또 마가복음 8:17-18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다.
제자들이 나중에 깨닫게 된 것도 자신들이 노력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깨닫도록 해 주셔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은 오늘까지라는 것이다. 오늘까지라는 말도 앞으로는 저들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들을 수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앞으로는 밝히 보고 분명히 들을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