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9-10 바울은 이어서 다윗의 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율법만 지키는 자들은 그들이 만든 음식에 관한 정결법이 그들을 잡는 덫이 되고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치는 걸림돌이 되고 또한 그들이 영적인 소경이 되고 율법의 노예가 된 채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결과 이스라엘은 찾던 것을 얻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중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것을 얻었고 그 나머지는 완고해졌다는 것이 구약에 기록된 것과도 같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다윗의 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율법만 지키는 자들은 그들의 음식에 관한 정결법이 덫이 되고 걸림돌이 되고 그들이 영적인 소경이 되고 율법의 노예가 되게 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다.
9절은 그리고 다윗도 말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시편 69:22-23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원수들 앞에 차려 놓은 밥상이 걸림돌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잘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둔 것은 평화와 축복을 뜻한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22:30에서 제자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서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실 것이라고 했다. 이는 종말론적 축복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식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 있다는 뜻이다. 또 종말론적인 축복을 함께 누릴 자라는 뜻이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식탁교제가 정결을 유지하고 언약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지켰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과 식탁을 함께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같이 하지 않았다.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면 함께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비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특히 음식에 관한 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저들은 자신들 만이 남은 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음식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철저하게 가립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도 대부분 이러한 음식에 관한 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런데 이러한 음식에 관한 정결법으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철저히 가려서 이방인들이나 부정한 자들을 식탁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저들의 태도가 바로 올무가 되고 덫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올무라는 말은 그물이나 야생동물을 잡는 도구를 뜻한다. 복잡하게 사람들을 얽어 매는 정결법에 자신들이 잡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걸림돌이 되게 해 달라는 말은 달리다가 걸려서 코가깨지고 얼굴이 박살이 나는 모습을 그린 말이다. 자신들의 정결법에 의해 자신들이 보복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또 10절에서는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게 해 주시고 등이 언제나 굽어져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눈이 어두워진다는 말은 소경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신명기 29:2-8절을 두고 한 말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적들을 목격했는데도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광야 사십년동안 광야를 통행하게 하셨는데도 옷과 신이 낡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수많은 대적들도 물리쳐주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그들의 조상들처럼 영의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으로 보여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했기에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언제나 등이 굽어져 있게 해 달라는 말은 노예살이 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등을 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간구를 바울이 인용한 것이지만 예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1:28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역시 율법의 짐을 말한다.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무거운 율법의 짐에 항상 짓눌려 살았다.
바울이 이처럼 저주와 같은 기도를 인용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멸망하여 고통가운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이처럼 된다는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씀들을 인용한 목적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부르신 선택에 응답하여 돌아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