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1-12 바울이 로마 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직접 만나길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영적은 선물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고 서로 위로를 받음으로 부름 받은 자들의 예배를 완성하려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는 바울이 유대교의 제사나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라며 바울은 항상 로마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그들에게 가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서로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
1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담긴 감정을 드러낸다. 11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바울은 간절한 마음을 감추며 조금씩 간접적으로 드러내다가 11절에서 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 교회로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을 항상 마음에 품고 기도했다는 말로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을 이제는 너희를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직접 만나서 하고 싶은 것은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은사라는 말은 원어에서 카리스마 라는 뜻이다. 본래 이 말은 값을 치르지 않고 받은 선물이란 뜻이다. 은사라는 말에 신령한 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신령하다는 말은 육적이라는 말의 반대로 영적이라는 뜻이다. 저들은 아직도 율법을 지킴으로 거룩해지고 의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육적인 품삯이라면 그 반대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저들은 아직도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저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신령한 은사였다. 신령한 은사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온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수많은 율법들을 완벽하게 지킴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의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오래 참으며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이 신령한 선물을 나누어 주길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령한 은사를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로 해석하면 안된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 싶은 이유는 11절 끝에 나와 있는 "굳세게 하려는 것" 이다. 무엇을 굳세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믿음을 굳세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도 끊임없이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야 한다. 오래 참으며 친절을 베푸는 한결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때 그들의 믿음이 굳세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받은 신령한 은사들을 우리 자신만 간직하면 안된다. 마음에 품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누어 줌으로 사람들을 굳세게 해야 한다. 이처럼 은사를 나눔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되는 것이다.
12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로 연결되는 것이 이상하기에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그리고 라는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에 있는 그대로 그러나로 해석해야 한다. 바울이 로마 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으로 나눠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는 말 다음에 서로 격려를 받는다 또는 피차 안위를 받는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한 단어이다. 함께 라는 말과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 합쳐진 한 단어이다.
바울과 바울이 품고 기도하는 로마 교회 유대인 성도들은 일방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위로를 받는 관계라는 것이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믿음을 인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또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을 보고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끊임없이 마음에 품고 기도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름 받은 자들의 예배가 완성되는 단계이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사를 나누어주고 있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나 고린도전서 13:4절에서 바울이 말한 최고의 은사인 오래참고 친절하다는 사랑이나 똑 같은 것이다. 바울은 원수까지도 인내하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오래참고 친절하며" 라는 말로 요약한 것이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참고 기다린다는 말이다. 친절이란 말은 참기 힘들 정도로 싫은 사람에게도 참고 친절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에게 은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은사를 나누는 것은 부름 받은 자들의 예배에서 헌금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의 은사를 나눌 때 서로가 큰 위로를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