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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4:69-72

Dawn Word

마가복음 14:69-72

계속 부인하다가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 운 베드로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10. 3.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4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4:69-72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계속해서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갈릴리 사투리 때문에 틀림없이 한패라고 하자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지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 엎드려 울었다.

이전 말씀은 불빛에 비춰진 베드로의 얼굴을 보고 멀리 떨어져 있던 대제사장의 하녀 하나가 다가와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 예수님과 한편이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강력히 부인하며 어두운 바깥 마당으로 숨었던 내용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계속해서 예수를 부인하다가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고 통곡하는 장면이다.

베드로는 이미 바깥 마당으로 나갔는데도 69절을 보면 그 하녀는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했다. 개역에서는 그냥 여종이라 했는데 원문은 새번역처럼 “그 여종” 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하녀는 앞에서 베드로를 보고 말한 그 하녀이다. 다시 말했다는 말도 이 하녀가 그 하녀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다. 베드로가 나가자 그 하녀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앞에서는 베드로 개인에게 말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자신보다 더 권세가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서 베드로를 체포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하녀의 말을 듣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 하녀와 함께 밖으로 나가 베드로에게 갔을 것이다.

70절 앞에는 “그러나” 라는 말이 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말한 것이 아닌데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68절에서 모른다고 한 말은 한번 한 말이다. 그러나 70절의 부인한다는 말은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몰려들자 그 사람들에게 계속 자신은 예수와 한패가 아니라고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에 베드로는 한 여종에게 개인적으로 예수를 모른다 부인했다. 그런데 이제 그 여종보다 더 권세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두려움은 더 커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난 아니야! 난 그 사람 몰라! 모른다니까, 왜들 계속 그래?” 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소리치며 부인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한 사람에게 작은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는 많은 이들 앞에서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70절 뒷부분에는 “그리고 조금 뒤에 라는 말이 나온다. 이제 하녀의 말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베드로 주변에 몰려들어 베드로를 자세히 보다가 베드로에게 말하고 있다. 이들은 베드로에게 “틀림없이 당신이 그들과 한패” 라고 말했다. 그 증거로서 갈릴리 사람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는 베드로가 갈릴리 지방의 사투리로 말했기 때문이다. 하녀보다 더 권세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증거까지 댄 것이다. 공식적인 재판은 아니지만 마치 재판처럼 진행이 된 것이다. 고소인들은 증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원래 말의 순서보다 앞에 두어서 특별히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71절에서 세번째 부인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였다” 라고 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틀림없이 예수와 한패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완강히 부인했다. 이번에는 저주하고 맹세를 했는데 원어에는 저주하고 맹세하기 시작했다 라고 되어 있다. 저주하고 맹세하는 것을 시작했다는 말은 그 뒤 계속해서 그렇게 주장했다는 뜻이다. 저주한다는 말은 자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벌해 주시길 요청한다는 말이다. 맹세한다는 말은 신성한 물체를 잡는다는 말에서 온 말이다. 미국에서 성서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것과도 같은 때 하는 말이다. 맹세한 내용은 자신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예수이다.

베드로의 부인은 점점 강해졌다. 처음엔 한 하녀에게 개인적으로 한번 부인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말하자 모두에게 계속해서 아니라고 부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명한 증거를 대자 이번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아도 좋다며 자신을 저주했고 자신은 분명히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맹세까지 했다. 한번에 그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그칠 줄을 모르고 한참동안 계속 그렇게 저주하고 맹세룰 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제사장이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도 대답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을 것이고 장차 심판주로 오실 것까지 담대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무것도 아닌 하녀의 말에 부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을 예수와 한패라고 하는 말에도 계속해서 점점 더 강하게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맹세까지 하며 부인한 것이다.

베드로가 세번째 예수를 부인하자 곧 닭이 두번 울었다 했다. 세번째로 예수를 계속해서 부인하자 즉시 닭이 울었다는 것이다. 이는 14:30절에서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는 말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한다는 것까지 정확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 말씀이 생각나자 베드로는 땅바닥에 쓰러져서 울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베드로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곧 모든 믿는 자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처럼 세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깨어 기도하시며 자신을 따라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세번의 부탁을 모두 무시하고 잠만 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세번, 그것도 점점 더 강하게 부인했다.

베드로는 진짜로 예수님을 따라 죽으려 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따라온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담대히 말하고 죽지 못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라 가겠다고 말로만 결심만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베드로처럼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베드로나 대제사장이나 가룟 유다나 거짓 증언을 하던 공회원들이나 모두 다 베드로와 똑 같은 사람들이다. 각자가 있던 위치가 달랐을 뿐 모두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믿는 자들이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을 쉽게 비판을 한다. 하지만 그게 우리 각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있는 자리만 다를 뿐 결국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며 자신을 숨기는 것은 똑 같은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인간은 다 베드로와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나 거짓 증언을 하던 공회원들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그 마음 속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라 죽겠다고 끝까지 따라 간다 해도 결국 그 두려움은 이길 수 없다.

그 두려움은 처음에는 아주 약한 압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압력은 점점 더 커져가고 우리가 부인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두려움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은 마가복음 8:38절에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라고 하셨다. 이 말은 베드로를 꾸짖다가 무리와 제자들 모두에게 경고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뒤에 바싹 따라 붙어야 한다. 바싹 따라 붙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동 하시는 대로 하나 하나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예수께서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하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증거하라고 하실 때 담대히 증거하면 된다. 예수께서 지상사역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 뒤에 바싹 붙어 그대로 흉내내며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 뒤에 바싹 붙지 않았기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제사장이나 유다나 공회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 다른 점은 바로 오늘 말씀 끝에 나온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을 때 땅바닥에 몸을 던져 통곡을 했던 것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늦추시는 이유는 베드로처럼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도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실패했지만 차이는 바로 말씀을 생각하고 통곡한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실 때 그 말씀 앞에 엎드려 통곡을 해야 한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실패한 우리도 베드로처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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