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1-5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빌라도에게 넘겼고 빌라도는 조롱하는 투로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지만 예수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자 빌라도는 경외감을 느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계속해서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갈릴리 사투리 때문에 틀림없이 한패라고 하자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지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 엎드려 울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대조적으로 빌라도 앞에서 아무런 변명도 안하시고 계신 모습이다.
바깥 마당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는 동안 15:1절을 보면 안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죽일 논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공회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최고 통치기구였다. 이들은 닭이 울자 즉시 결정을 내렸다. 예수님을 묶어서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준 것이다.
이는 마가복음 9:31절에서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라는 말이 성취된 것이다. 또 10:33절에는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하신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것이다.
빌라도는 원래 지중해 연안의 Caesarea Maritima에 있는 로마총독부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런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가이사랴까지 끌고 가서 넘긴 것이 아니다. 유월절 이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2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라고 질문했다. 이는 빌라도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며 고소한 죄목이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소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빌라도는 왕이라고 바꾸었다.
14:61절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그리스도” 냐고 물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왕을 왕이라 부르지 않았다. 저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와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을 그리스도 라고 불렀다. 대제사장은 이 말을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빌라도에게 고소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장차 심판주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대로 고소하면 죄가 성립이 안되기에 자기들 마음대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거짓 고소한 것이다. 그런데 빌라도가 이스라엘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을 “유대인의 왕” 이라고 바꾸어 물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 또는 메시야라고 하지 않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른 것은 무시하고 조롱하는 투의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라고 하셨다. 이는 그 말이 틀렸다고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호칭을 예수님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조롱하는 투의 말은 당신이 고른 말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대답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공회에서 증언한 말과 다른 죄목으로 고소된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해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건 당신이 고른 말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3절에서 대제사장이 여러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고 했다. 고발했다는 말은 계속해서 고발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당신이 그렇게 말했다 라고 하시자 대제사장은 입에 거품을 물고 계속해서 쉬지않고 계속 예수님을 고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제사장 이처럼 계속하고 있던 고소는 모두 거짓말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권위있는 사람인 대제사장이 천박한 거짓말로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고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안하셨다. 그래서 4절에서 빌라도는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라고 다시 물었다. 빌라도는 “보시오! 저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당신을 고소하는지!” 라고 말했다. 5절을 보면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이상하게 여겼다는 말은 경외감이 들었다는 뜻이지 단순히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피고가 고소인들의 고소를 부정하지 않으면 유죄가 된다. 그래서 모든 피고들이 다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침묵으로 위엄을 지키시는 모습을 보고 경외심이 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당시 최고로 존귀한 사람인 대제사장은 입에 거품을 문 채 쉬지도 않고 계속 천박하게 거짓말로 고소하고 있었다.
어째서 예수님은 아무 답변도 안하셨을까? 마가복음 13:11절에 답이 나와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대로 시범을 보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대답하시는 본을 보이신 것이다. 제자들도 나중에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쓸데없는 변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만 담대히 증거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14:62절에서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우편에 앉을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의 신앙에 관한 질문이기에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 지배자가 질문한 것은 정치적인 질문이기에 쓸데없는 변명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대로 아무 염려하지 않으셨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의 질문에는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담대히 자신을 증거하셨고 그 밖에는 어떤 위협에도 아무런 대답도 안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두려운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잔잔한 호수와 같이 평온함을 갖고 위엄을 지키셨다. 그 비결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뜻에 기도로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0:28절에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라고 하셨다. 또 요한복음 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하셨다. 이는 우리도 고난을 당할 때 쓸데없는 변명하지 말고 위엄을 지키라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위엄을 지키는 길은 하나님 말씀만 증거하고 쓸데없는 자기 변호는 안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