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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15:6-14

Dawn Word

마가복음 15:6-14

무리를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게 하던 대제사장들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10. 5.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5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5:6-14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명절 때 죄수를 놓아주던 관례대로 예수를 놓아주려 했지만 대제사장들은 무리들을 선동하여 폭동이 일어날 듯하며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요청하게 시켰다.

이전 말씀에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빌라도에게 넘겼고 빌라도는 조롱하는 투로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지만 예수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자 빌라도는 경외감을 느꼈다. 이어지는 말씀은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를 쓰자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의 주인공을 빌라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주인공은 대제사장들이다.

예수님께 경외감을 갖고 있던 빌라도가 예수님을 구할 방법이 있었다. 6절에 보면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습이 있었다. 요구한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말이다. 어느 한 죄수만을 지속적으로 놓아달라고 요구할 때 놓아주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죄수를 석방하던 일이 있었다. 이는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이었다. 요셉푸스의 Antiquities 20.9.5에 보면 AD 62-64년에 유대 총독으로 있었던 Albinus가 떠나면서 살인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죄수들을 석방한 일도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유대인들에게 좋게 남기기 위해서 이다. 유대인들이 칭송을 하면 좋은 통치자로 로마황제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빌라도가 그렇게 죄수를 석방했다면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다.

하지만 석방 후보자는 예수님 만이 아니다. 7절에 또 다른 사람이 소개된다. 바라바 라는 사람인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반란군의 무리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바라바가 살인을 했다는 말이 아니고 바라바가 이끌던 부하들이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바라바는 유대인들의 독립을 무장항쟁으로 이루려던 혁명가였다. 사실 유대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그리스도는 바라바 같은 사람이다. 바라바는 유대인들에게 영웅이었다. 하지만 로마제국 입장에서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려는 흉악한 죄수들의 우두머리이다.

8절에 보면 무리들은 전에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간청을 하기 시작했다. 죄수 한 사람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9절에서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풀어주길 원하느냐?” 라고 물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경외감마저 느꼈고 예수님을 풀어주길 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로마제국에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마황제의 충신이라면 로마제국의 안전을 위해 바라바를 풀어주면 안된다. 풀어주면 또 다시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안전보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더 신경을 썼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고소하며 처형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군중들의 의견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10절에 보면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시기하여 넘겨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시기라는 말은 경쟁의식을 느껴 질투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자 자신들이 받을 존경을 빼앗겼다 생각하여 시기했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의견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11절 앞에는 그러나 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빌라도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들이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청하게 했기 때문이다. 선동한다는 말은 흔들어 놓는다는 뜻으로 폭동을 일으키도록 선동했다는 뜻이다. 대제사장들이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폭동을 일으킬 기세로 소란을 피우게 한 것이다. 거룩한 대제사장들이 바라바처럼 무리를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이다. 3절에서는 대제사장들은 총독인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열정적으로 요구했다. 그런데 11절에서 대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하라고 열정적으로 무리들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당황한 빌라도는 12절에서 무리들에게 그러면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는 당신들의 왕이라고 고소한 사람을 자신이 어떻게 존경을 표시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시기심으로 고소했지만 많은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원어에는 13절 앞에 “그러나” 라는 말이 있다. 빌라도의 이러한 생각과는 반대로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고함을 친 것이다. 십자가 형은 바라바처럼 로마 군인들을 죽이고 로마와 싸운 사람들의 지도자를 처형할 때 쓰던 형벌이다. 그런데 빌라도가 보기에는 예수님은 로마제국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14절에서 빌라도는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라고 다시 물은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더욱 더 고함을 쳤다.

어떤 이들은 11:9절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치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호한 군중들이 이번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한 사람들은 갈릴리에서 기적을 체험하거나 목격하고 예수님을 계속 따라 다니던 무리들이다. 이들이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개선행진을 준비한 것이다. 대다수의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를 구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히자 예수님의 개선행진을 따라 다니며 환호했던 갈릴리 사람들은 모두 달아났거나 숨었을 것이다.

빌라도 앞에서 소리치던 군중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층들과 그들 가족들이기에 모두 대제사장들의 편이다. 대제사장들은 이들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죽이고 빌라도를 놓아주라고 한 것이다. 조용히 요구한 것이 아니라 폭동을 일으킬 기세로 그렇게 요구한 것이다. 마태복음 27:24절에는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무리들이 크게 소리친 것은 폭동을 일으킬 기세로 소리친 것이다. 무리들은 진실이 무엇인가를 따지지 않고 대제사장의 말을 더 두려워한 것이다.

마가가 증언하는 오늘 본문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위엄있는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던 예수님에 대해 경외감마저 느꼈다. 대제사장들이 시기심으로 고소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조사한 뒤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를 당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사람에게 좋게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모든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었기에 그러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자신이 누리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백성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려하며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죽이라고 했던 것이다. 대제사장들은 사람에게 좋게하던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종 행세를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날 믿지 않는 자들은 빌라도처럼 사람에게 좋게할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절대로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유대인들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절대로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말씀을 붙잡고 우리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하던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처럼 되기 쉽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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