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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9:14-23

Dawn Word

이사야 49:14-23

예루살렘이 낳지도 키우지도 않은 자식들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그루터기에서 돋는 새싹과 떠오르는 빛 · 이사야 11장 · 60장

2018. 12. 7.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9장 강해 설교

이사야 49:14-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잊지 않고 손바닥에 새겨두고 기억하고 계시며 낳지도 키우지도 않은 자녀들이 돌아오게 하신다. 전에는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들 발 앞에 엎드렸는데 이제는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

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나: 지금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어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복된 계획을 믿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그 백성들을 석방시켜 주시고 눈을 뜨게 하시고 먹여주시고 길을 내서 편안히 따라오게 하시며 기쁨의 찬양을 하게 하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격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은 사랑으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그 사랑의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14절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에 대한 시온의 응답이다. 시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고 잊으셨다는 것이다. 버리셨다고 잊으셨다는 말은 영어 속담의 "Out of sight, out of mind" 와도 같은 말이다. 먼저 눈에서 멀어지면 그 다음에는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시온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고 처음에는 후회하며 자신들을 많이 보고 싶다고 했겠지만 점점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었다가 이제는 오래되어 완전히 잊었다고 푸념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그런 관계라는 것이다.

15절은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라고 말한다. 원어는 어머니가 아니라 개역개정처럼 "여인"이다. 어버지는 자녀들이 눈 앞에서 사라지고 오래 지나면 마음에서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젖을 물려 키운 아들을 어떻게 잊겠느냐는 것이다.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어머니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인들도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가 두려운 미혼모가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다. 먹고 살 길이 없다면 자식을 버릴 수도 있다. 자식을 키우며 산다면 살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자식을 포기할 수 있다. 새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 길이 열린다면 자신이 낳아서 젖을 물려 키우던 아이도 버릴 수 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군대에 포위되어 굶주리던 여인이 자신의 자식을 먹는 일까지 발생했다. 여인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15절 뒷부분에서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해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게해서 정신좀 차리게 하려고 하신 것이지 절대로 버리거나 잊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6절은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라고 했다. 새긴다는 말은 잉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문신이나 불로 도장을 찍는 것을 말한다. 이는 깜짝 놀랄만한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노예의 손바닥에 주인의 이름을 새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온의 손바닥에 여호와의 이름을 새기고 여호와의 것이라고 표시했어야 옳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자신의 종인 시온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꾸로 자신이 시온이 것이라고 손바닥에 새기고 계속해서 쳐다보고 계시기에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시지만 또한 종의 모습으로 이 낮은 곳에 오셔서 우리를 섬기신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의 스케치이다. 바로 이어서 "네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성전이 있던 산의 이름이다. 그곳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예루살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름답게 회복된 새 예루살렘의 조감도를 손바닥에 새기고 계속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설계도가 완성되고 조감도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이제 곧 건축이 시작된다.

그래서 17절은 "너를 건축할 사람들이 곧 올 것이니 너를 파괴하는 사람과 황폐하게 하는 사람이 너를 떠날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에서는 아들들이 서둘러 오고 있다는 뜻이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서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을 건축하러 서둘러 오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떠날 것이라 했다.

18절은 시온을 다시 건축할 하나님의 아들들이 돌아오는 모습이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네 백성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온다" 원어는 네 백성이 아니고 그들이다. 그들이 오고 있는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이제 "신부가 패물을 몸에 치장하고 자랑하듯 너는 그들을 자랑할 것이다" 라고 했다. 시온은 돌아올 예루살렘 백성들을 신부를 치장하듯 아름답게 치장하고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아름답게 건축되고 그 자녀들이 가득하게 될 것을 자랑하게 될 것을 상상하게 하신다.

1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내가 네 땅을 쳤고 황폐하게 하였고 파괴하였지만"

이라고 했는데 원어는 단순히 "왜냐하면 너의 쓰레기 같고 황폐한 곳이고 파괴된 땅" 이라는 뜻이다. 원어는 하나님이 파괴했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이미 완전히 파괴되어 버려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모습에 초점이 있다. 이와 대조되는 구절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백성이 너무 많아서 네 땅이 비좁다" 는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다시 아름답게 건축되고 그 안에 백성들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시온이 그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이유이다.

20절은 "한 때 네가 잃은 줄로만 알았던 자녀들이 다시 네 귀에 속삭이기를" 이라고 했다. 원어는 "네가 죽었을 때 낳은 자녀들이 다시 네 귀에 대고 말한다" 는 뜻이다. 이는 예루살렘의 태가 죽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폐허가 되어 있기에 그 안에는 아무도 낳을 수 없고 품어서 키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 자란 자녀들이 돌아와 다시 속삭인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너무 좁으니 넓혀달라고 할 것이라는 것이다.

21절은 여인으로 비유된 시온성 곧 예루살렘 성이 기쁨에 넘쳐서 하는 자신의 마음 속에다

말하는 독백이다. "누가 나에게 이 아이들을 낳아 주었는가? 나는 자식도 잃고 더 낳을 수도 없었는데" 라고 했다. 자신이 낳지 않았는데 누가 자기 자식을 낳아 주었는가? 라고 놀라는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는 룻기의 나오미에게 비유할 수 있겠다. 나오미의 자식들은 다 죽었고 자신의 태도 죽어서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다. 그런데 보아스가 자기 며느리 룻을 취해서 아들들을 낳아 준 것이다. 룻기 4:16-17절에 보면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또 예루살렘은 "포로가 되어 버림을 받았는데 누가 이 아이들을 키워주었는가? 나 홀로 남지 않았던가? 도대체 이 아이들이 다 어디에서 왔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낳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키우지도 않았는데 다 자란 아이들이 돌아와서 엄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낳아 주었고 누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키워주었는가? 22절에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내가 뭇 민족을 손짓하여 부르고 뭇 백성에게 신호신 보낼 터이니 그들이 네 아들을 안고 오며 네 딸들을 업고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리모를 시켜서 낳게 하셨고 키우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낳아서 키우신 예루살렘의 아이들을 예루살렘의 품에 안겨 주신다는 것이다.

23절은 "왕들이 네 아버지처럼 될 것이며 왕비들이 네 어머니처럼 될 것이다.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엎드릴 것이며 네 발의 먼지를 닦아줄 것이다" 라고 했다. 예루셀렘은 과거 수많은 이방 나라들에게 짓밟혔고 그들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러나 이제 수많은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의 발 아래 엎드려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또 이어서 "내가 주인줄 알 것이다. 나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예루살렘은 그 모든 일을 하신 분이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어떤 힘이나 권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군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지금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오미 같이 아무런 희망도 없던 우리에게도 자녀를 안겨 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기다리자. 그러면 우리가 낳지도 키우지도 않은 믿음의 자녀들을 안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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