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것이 합당한 예배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부유하심과 지혜와 지식이 어찌나 큰지 측량할 수 없다며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의 근원이시고 새로운 피조물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이시기에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분이시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산 제사를 드리라며 그것이 합당한 예배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원문에서 오늘 말씀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그 신비한 비밀을 찬양하는 것에만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찬양 다음에 무엇을 또 해야 하는가? 우리가 주일 예배시간마다 찬양 드린 후에 또 무엇을 드리는지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찬양 드린 후에 예물을 드린다. 오늘 본문도 바로 예물을 드리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 중 첫번째 나오는 것이 1절에 나오는 권고이다. “형제들아!”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부탁하고 있다. 이 말은 이미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이방인들과 앞으로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할 유대인들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이처럼 다정하게 부르며 부탁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 때문이다. 잘못하면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기에 부드럽게 부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명령의 뜻을 담고 있다.
어떻게 드리라고 했는가?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 산 제물이란 구약의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예배와 구별하기 위해 쓴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짐승을 대신 죽여서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단번에 우리 모두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이다. 몸이란 말은 몸의 일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몸이란 우리의 육체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과 육체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만약 몸을 드린다는 말이 우리가 몸으로만 봉사하는 것만 뜻한다면 결국 짐승을 잡아드리는 것과 차이가 없다. 가장 소중한 우리의 삶을 날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산제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두 단어가 설명해주고 있다. 하나는 “기뻐하실” 이란 말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이다. 우리는 하나님 기뻐하실 산제물이 되어야 한다. 또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새번역이나 개역에서는 “기뻐하실” 이란 말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원어에서는 “거룩한” 이 먼저 온다.
거룩한 산 제물이란 우리를 세속적인 일로부터 구별하여 오직 하나님 만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주로 드리던 양을 예로 들어보겠다. 거룩한 제물이란 흠 없는 제물을 골라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말한다. 이 제물은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파티에 쓰려고 잡은 양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다. 만약 우리 몸이 거룩한 제물이라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만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 영광만을 위해서 드린다고 해서 항상 예배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장이나 가정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 온통 정신을 쏟다가 주일에만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제물이 될 수 없다.
두번째는 “기뻐하실” 제물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좋은 방법은 같은 말이 다른 구절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14:18에 보면 역시 같은 말이 나온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라고 했다. 이렇게 섬기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14:13-17 사이에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유대인의 음식 정결법을 근거로 이방인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로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 빌립보서 4:18절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이 어려운 가운데 돈을 모아 바울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풍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평화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드려야 할 거룩한 산 제사는 오직 하나님 영광만을 위해 우리 삶을 드려야 하고 또 서로 평화스러운 관계 속에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12:1 끝에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이다” 라는 말이 붙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말은 “합당한 예배”란 말이다. 개역성경에 보면 전혀 다르게 “영적 예배” 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했는지 알아보려고 영어성경 14가지를 다 찾아보았다. 그중 10개는 “spiritual” 이라고 번역했고 4개는 “reasonable” 이라고 번역했다. 어떤 것이 맞을까? 아! spiritual 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게 맞겠다 라고 할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도 둘로 갈린다. 어떤 이들은 죽은 동물의 제사와는 대비가 되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로 본다. 그러나 다수는 이 말을 단순히 영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바울의 의도를 제한한다며 내면적 영적 요소만이 아니라 구체적 이상 순종을 포함한 전체적 삶의 헌신이라고 말한다.
이럴 땐 먼저 원어를 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영적이란 단어는 대부분 pneumatikos이다. 이는 그리스어의 pneuma라고 하는데 영이란 뜻이고 또 바람이란 뜻도 있다. 영어에서 폐렴을 뜻하는pneumonia 라는 말도 이 말에서 왔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Spiritual이나 reasonable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어에서 pneumatikos가 아니고에서는 logikos이다. 이 말은 logia란 말의 형용사형이다. 또 logia는 논리정연한 연설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logic이란 말이 이 말에서 왔다. logikos는 이성적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 합당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만약 바울이 영적인 예배라고 말하려 했다면 logikos대신에 pneumatikos를 썼을 것이다. logikos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에 여기와 베드로전서 2:2절에만 등장한다. 바울이 굳이 생소한 단어를 쓴 것은 이성적인 합당한 예배라는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이다.
만약 이성적인이란 뜻으로 쓰였다면 동물의 희생제물로 드리던 구약의 제사에 반대되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희생제물을 잡아서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모두의 죄를 대속했기 때문에 이러한 제사는 더 이상 이성적인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성경에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이성적인 예배이다” 라고 번역한다면 오해하기 쉽다. 이성적인 예배라고 번역한다면 동물의 희생제사와 반대되는 말로 해석되기 보다는 철학이나 학문적 논리를 따져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로 해석되기 쉽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영어성경들과 한글 개역성경은 이성적 예배라고 번역하지 않고 영적 예배라고 비유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어떤 영어번역들은 intelligent라고 직역한 성경도 있다. 이는 Spiritual과 같은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만약 합당한이란 뜻으로 쓰였다면 자격 없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자비하심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어떤 번역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동물희생제사가 아닌 우리의 온 몸과 온 맘을 다 모아 드리는 예배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해서 그에 합당하게 드리는 예배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잘 판단이 안된다면 두가지 증거를 보이겠다. 먼저 12:1절 끝부분에 보면 산 제물이란 말이 있다. 이는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예배라는 말은 동물 희생제사와 반대되는 말이기 때문에 결국 산 제사란 말과 같은 말이 된다. 그러면 같은 말을 말만 바꾸어서 바로 이어서 또 말한 것이다. 바울이 치매일까? 아니다. 이미 산제사라고 했기 때문에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합당한 예배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12:1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라는 말이다. 바울 자신도 역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근거로 간곡히 부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그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해석학자들은 영적 예배라는 해석이 맞다는 근거로 바울과 예수님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Epictetus의 글을 인용한다. Epictetus의 글에도 logikos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만약 나이팅게일 새라면 난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만약 백조라면 백조처럼 노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난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불러야만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인용한 학자들은 실수한 것이다. 영어성경의spiritual worship이란 번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Epictetus의 글을 잘못 인용한 것이다. 단순히 동물들과는 달리 영적인 존재라는 말을 설명하려고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영적” 이란 말은 “동물적” 이란 말의 반대말이 절대로 아니다. Epictetus의 글은 오히려 “합당한” 이란 말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번역처럼 합당한 예배라고 한 것이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