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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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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12:2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하라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5. 12. 9.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2장 강해 설교

로마서 12:2 너희는 겉모습만 거룩한 이 시대의 거룩한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것이 합당한 예배라고 했다. 이어지는 2절은 어떻게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내용이다.

2절에서 바울은 하지 말라는 명령과 하라는 명령으로 말한다. 같은 형태가 구약성경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레위기 18:3-4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라고 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5-7에서 말씀하신 핵심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본받지 말고 진짜로 하나님 뜻을 따라 행하라는 것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껍데기만 변한 척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마음 속의 생각까지도 완전히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다.

바울도 이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아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로 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이 시대란 흔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매우 쉽고 편안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본받지 않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냐하면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 시대의 겉모습을 본받지 말라는 뜻이다.

겉모습이라는 말이 영구적이지 못한 것이나 거짓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삶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들의 내적인 삶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사람들이 겉모습만 거룩하게 꾸미는 것을 본받지 말고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시대의 겉모습을 닮아가지 말라는 말이 단순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겉모습을 닮아가지 말라는 뜻일 수 없다. 그들은 겉모습까지도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거룩하게 하는 사람들의 틀에 맞춰 살지 말고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되라고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이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하는 거짓된 헌신을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의 외형적인 거룩을 닮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진짜 거룩을 행하라고 한 것을 보아도 유대교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처럼 하지 말라는 뜻이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8:15절에서도 제자들에게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예수께서는 바리새파를 책망하셨다. 사실 악한 사람들은 죄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더 많았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당시에 최고로 경건한 삶을 살던 바리새파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진짜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최고로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한 것도 로마서의 지금까지 문맥을 보면 이방인들이나 죄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겉모습만 열심히 지키는 유대주의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경계 대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본받지 말아야 할 경계의 대상이 있다. 오늘날도 예수님 시대나 바울 시대처럼 껍데기만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언뜻 보아서는 훌륭하게 보이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다가 점점 자신도 모르게 물들고 결국 우리도 껍데기만 그리스도인 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껍데기만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 척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혹독하게 꾸짖으셨다. 우리도 만약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꾸민다면 우리도 역시 혹독한 책망을 받을 것이다.

두번째로 하라는 명령은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 말은 원래 형태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뜻한다. 앞에 나온 말이 껍데기는 변하고 내면은 그대로 인 상태를 뜻한다면 이 말은 껍데기와 함께 내면까지도 완전히 변화된 것을 말한다. 마가복음 9:2에 보면 예수께서 변화되신 모습이 나옵니다. 이는 앞으로 입으실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 변화를 받는 것이다. 또 고후 3:18에 보면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의 죄된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완전히 변화되라는 것이다. 절대로 껍데기만 신자인 것 같은 자들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절에 보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라고 되어 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으라는 말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자기의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겸손한 태도로 죽기까지 순종한 마음이다. 또 빌립보서 1:8에서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고 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라고 번역된 말을 개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고 했는데 원어에서 내장이란 말에서 온 말이다. 내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으로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내장이 끊어질 듯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교만했던 사람이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긴다면 그는 내면까지 완전히 변한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냉정했던 사람이 변화되어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형제 자매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다면 그는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된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한 사람은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다.

껍데기만 거룩한 신자처럼 위장하면 안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거룩하게 바뀌어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게 할까? 이미 성령침례를 받고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한다면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내가 원하는대로 받지 말로 본래의 참 뜻을 깨달아서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날마다 그 말씀에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면까지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변화받는 목적이 무엇일까? 12:2절 끝부분에 나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변화받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어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할까? 세가지가 논리적인 순서대로 되어 있다. 첫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바울은 선하심이란 단어를 영적 도덕적 감수성을 나타낼 때 썼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민감하게 반응해서 느낀 후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종이 주인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차려서 행하는 것을 말할 때 썼다. 미련한 종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맞고 나서야 그 일을 한다. 하지만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차려서 행하기 때문에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민감하지 않으면 매맞고 나서야 깨닫고 순종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분별하고 미리 알아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완전한 이란 말은 순전히 하나님께 속한 능력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완전할 수 없다. 이는 판단력이나 지식이 완전히 성숙한 상태를 말한다. 이는 두번째 단계처럼 계속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점점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새로운 몸을 입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이루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 가길 원하신다.

껍데기 신자들과 진짜 하나님 기뻐하시는 신자들의 근본 차이는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가는가 아닌가에 있다. 우리의 마음은 단번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날마다 조금씩 바꾸어나가야 한다. 교회를 10년 다녀도 항상 똑같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분명히 겉모습만 거룩한 신자이다. 가장 큰 차이는 도덕적인 거룩함에 있지 않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들은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다르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심각하고 고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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