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6-8 바울 일행은 합리적인 사고에 따라 에베소를 향해 가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두차례나 막으셔서 에게해에 접해있는 막다른 곳인 드로아에 이르렀다.
이전 말씀에서 이렇게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의 선교팀에 더해진 디모데와 함께 전에 선교했던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 준 규정들을 전달하고 가르치고 본보기를 보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성령께서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기에 비두니아로 들어가려 했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다는 내용이다.
바울 일행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되돌아가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전달했다. 그 뒤 바울 일행은 처음에는 Via Sebaste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소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다. 이는 바울의 선교전략에 따른 것이다. 각 지역의 중심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주변에 퍼지도록 하던 것이 바울의 선교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봐도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Via Segbaste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에베소로 가는 것을 막으셨다는 것이다.
6절에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이라고 했는데 원어에는 하나의 관사로 두 지방이 묶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행정구역상 갈라디아 지방에 속한 브루기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방식으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민족적 개념으로 분리해서 말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로마 행정구역상 갈라디아 지방에 속한 브루기아로 해석한다.
브루기아가 로마행정구역상 일부는 아시아에 있고 일부는 갈라디아에 있었다. 그렇다면 갈림길에 있었을 때 서쪽인 아시아쪽으로 가지 않고 북쪽인 갈라디아 지방에 속한 브루기아로 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기 때문에 서쪽으로 가려던 것을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아시아란 오늘날 아시아 대륙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에베소와 그 인근 지역을 뜻하는 로마 행정구역이다. 바울은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성령께서 막으셨기에 남은 길은 북쪽으로 난 길 밖에 없었다.
그래서 7절은 무시아 가까이에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 지방 북쪽 흑해 연안에 있던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이 정착한 곳 도시들이 있었기에 그 쪽으로 가려고 한 것이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항상 대도시이면서 유대인들이 많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을 이방인의 선교사라고 하지만 사실 바울은 항상 유대인들 회당에 찾아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 그들을 중심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에서는 성령이 막으셨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라고 바꾸어 썼다. 이는 단순히 같은 말을 두 번 쓰지 않기 위해 말을 바꾼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고 승천하신 예수께서 복음의 확산을 계속 인도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바꾸어 쓴 것이다.
어떻게 막으셨을까? 어떤 이들 베드로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에 그곳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제지당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질병이나 유대인들의 반대나 법적인 금지 등 때문에 그 쪽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성령께서 내적인 감동을 주셨다고 말한다. 본인은 성령께서 바울과 그 일행들에게 내적인 감동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9절에서도 성령께서 환상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남서쪽으로 가는 길이 막혔기에 북서쪽으로 가는 길만 남아있는 것이다.
비두니아로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8절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고 했다. 무시아를 지났다는 말은 멈추지 않고 통과해서 지나갔다는 뜻일 수 있다. 또 무시아를 정통으로 지나지 않고 그 지방의 가장자리를 지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드로아는 무시아 안에 있는 도시이다. 무시아에 접어 들어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중요한 길목에서 두 차례나 막으셨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드로아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드로아는 복음 전할만 한 큰 도시도 아니고 에게해에 접해 있기에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막다른 곳이다.
합리적인 사고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다 Via Sebaste를 따라 남서쪽으로 가서 에베소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 옳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중심도시이고 그 주변 지역의 여러 도시들로 퍼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길을 막으셔서 북쪽으로 갔고 거기서도 문명이 발달하고 유대인 인구가 많은 비두니아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령께서 막으셔서 복음을 전할 곳이 없는 막다른 길목인 드로아로 간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보여도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면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말도 안되는 길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대단히 어렵기에 대부분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합리적인 길을 선택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