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9-10 바울 일행은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즉시 마케도니아로 건너갈 길을 찾았다. 바울 일행은 이전에 두번 막으신 것과 함께 심사숙고를 한 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은 합리적인 사고에 따라 에베소를 향해 가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두차례나 막으셔서 에게해에 접해있는 막다른 곳인 드로아에 이르렀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일행이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마케도니아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두 차례나 인간의 계획을 막으셔서 막다른 곳으로 가게 하신 성령님께서는 이번에는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셨다. 이번에는 바울에게 밤에 환상을 보여주셔서 인도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간섭하심은 세차례이고 그 인도하심은 확정적인 것이다. 그 환상은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간청하여 말하기를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이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설명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서양을 그리스 문화로 묶으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동서양을 하나로 묶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참 그럴듯하게 맞는 것 같지만 본문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이는 마케도니아 사람인 누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의 환상에 나타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계획은 막으시고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잠언 16:9절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환상에 나타난 사람이 누구냐를 밝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원래 에게해 연안의 가장 큰 도시였던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신 것은 그곳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나중으로 연기하고 먼저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바울의 전략을 좌절시킨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증대시키려고 막으신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복음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전해지게 하신 것이라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아시아와 유럽은 본래 하나의 대륙이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따로 떼어내기 시작하면서 구분한 것이다. 아시아란 본래 에베소 인근에 있던 로마제국의 지방 이름이지 오늘날 대륙구분의 아시아가 아니다. 당시에는 유럽이나 아시아의 구분이 없었다. 바울이 본래 가려했던 에베소나 나중에 방향을 바꾼 빌립보나 모두 로마제국의 지방에 있는 도시들일 뿐이다.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가서 고린도까지 갔다가 그 후에 에베소로 배를 타고 건너갔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선순위를 조절하도록 해 주신 것이지 길을 막으신 것이 아니다. 어째서 성령께서는 에베소 선교를 뒤로 미루고 마케도니아로 가라고 하셨을까? 그 이유를 알 길은 없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바울을 만나면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18장에 보면 바울은 마케도니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고린도까지 갔다. 거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클라우디우스의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평생 바울의 선교를 돕는 일에 목을 내놓은 사람이라고 로마서 16:4절에서 바울을 말한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만나 에베소로 함께 떠났다. 어쩌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려고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셨는지도 모른다. 이들 부부는 생업을 정리하고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떠났다. 그렇다면 바울은 다시 유럽을 버리고 아시아로 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동역자를 만나 아시아 지방의 에베소에서 사역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을 택하라는 신호가 아니다.
바울 당시 사람들에게는 유럽과 아시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택했고 아시아를 버린 것처럼 말한 것 뿐이다. 바울은 마케도니아나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를 아시아 지방의 에베소와 구분하지 않았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며 에베소 교회를 이들 부부에게 맡겼다. 바울도 이들 부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에베소 선교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막으셨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쪽으로 간 것이 잘된 일인 것은 분명하다.
성령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셨을 때 원어에서 10절에 보면 바울 일행은 즉시 마케도니아로 건너갈 길을 찾았다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우리가 즉시 마케도니아로 갈 길을 찾았다는 말이다. 마케도니아로 갈 길을 찾은 것은 바울 혼자가 아니라 바울 일행이 모두 그렇게 찾았다는 뜻이다. 우리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뜻하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확인한 모두가 합의하여 즉시 순종했다는 뜻이다. 오늘날처럼 아무 때나 배 뜨는 시각이 되면 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했다는 말은 건너가는 배편을 찾으려고 온 힘을 다해서 찾았다는 뜻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자 마자 즉시 온 힘을 다해 건너 가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온 힘 다해 건너갈 배편을 찾은 이유는 바로 뒤에 나오는 확신한다는 말에 있다. 확신한다는 말은 본래 다양한 자료들로 부터 분명한 증거를 찾아 결론을 낸다는 뜻이다. 바울 일행은 성령께서 두차례나 막으셔서 막다른 바닷가에 온 것과 환상을 통해 바다 건너편 마케도니아로 와서 도우라는 말을 들은 것을 모두 합하여 보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모두 함께 내린 것이다. 절대로 바울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에게만 감동을 주신 것은 아닌 것이다. 실라와 디모데 역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모두 함께 의논하여 결론을 내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