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11-19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달라 해서 이방지역에 가서 다 써버리고 굶어죽게 되자 아버지의 집에 가서 품꾼을 써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한 가난한 여인이 가진 전재산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었다가 찾을 비유로 죽은 죄인 하나가 살아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비유는 잃었던 한 아들을 찾은 비유인데 그 중 한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다 허비하고 아버지의 품꾼으로 라도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장면까지만 보겠다.
11절은 "또 그가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말씀하신 비유들에 이어 계속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라는 말은 4절과 마찬가지로 어떤 남자라는 뜻이고 8절의 어떤 여자와도 병행을 이룬다.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을 찾은 비유의 주인공은 잃은 양을 찾은 어떤 남자이다. 잃어버렸던 한 드라크마를 찾은 비유의 주인공은 어떤 여자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잃어버렸던 한 아들을 찾은 비유의 주인공은 역시 아들을 잃은 어떤 남자이다. 따라서 이 비유를 탕자의 비유라 해서 탕자를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두 아들의 비유라 해서 큰 아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앞의 두 비유와 마찬가지로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고 감격해 하는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12절에서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자기 몫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큰 아들은 두 배로 받도록 되어있기에 자기 몫이란 아버지가 죽을 때 아버지 재산의 1/3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받는 경우는 큰 아들은 1/2만 받을 수 있고 작은 아들은 2/9를 받게 되어있다(Derrett. 107). 따라서 여기서 작은 아들이 받은 것은 2/9일 것이고 그렇게 받은 아들은 더 이상 재산 상속권이 없다.
아버지의 재산을 아버지가 죽기 전에 미리 달라고 요청할 경우는 결혼할 때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전망을 보고 이민을 갈 때인데 이 비유에서는 이 둘 중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이 안된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나누어 달라고 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아버지가 힘이 없을 경우 가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재산을 그 아들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데 이 경우 아들들이 아버지를 책임져야 한다. 이는 마치 건강이 나빠진 왕이 그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 경우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비유의 내용을 보면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진 것도 아니기에 역시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을 달라고 할 수 없다. 작은 아들은 건강한 아버지에게 조기에 퇴임하고 자기들에게 그 권한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건강한 아버지에게 빨리 아프다가 빨리 죽으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고 왕가의 경우로 말한다면 반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러한 못된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그 살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31절을 보면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받는 아들 몫에 해당하는 2/9만 작은 아들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건강했기에 미리 두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다 양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큰 아들도 달라고 했다면 법에 따라 절반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아들은 절반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아버지가 죽을 때 2/3를 다 받겠다고 했을 것이다. 31절에서 아버지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못된 작은 아들처럼 하지 않았기에 의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몫 전체를 다 받겠다는 욕심으로 나중에 받겠다고 했을 것이다.
13절에서 새번역은 며칠 뒤에라고 했고 개역은 며칠이 못되어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많은 날이 못되어" 라는 뜻이다. 이어서 둘째 아들이 모든 것을 다 모아서 먼 지방으로 갔다. 모았다는 말은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거기서 그 재산을 방탕한 삶으로 다 낭비했다고 했는데 낭비했다는 말은 흩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로 군대나 사람들을 흩었다고 할 때 쓴 말이다. 누가도 누가복음 1:51절과 사도행전 5:37절에서도 사람을 흩었다고 할 때 썼다. 아버지께 받은 재산이 마치 패잔병들이 흩어지듯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도록 한 것이다.
14절을 보면 그가 그 모든 돈을 다 써버린 후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었고 그제서야 그가 궁핍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돈을 다 쓴 뒤에도 한동안은 궁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많은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셨기에 얻어 먹은 친구들이 먹을 것을 주었기에 어딜 가든지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흉년이 들자 그 때서야 비로소 궁핍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굶어죽는 판에 다른 사람을 먹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15절은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한 시민에게 붙게 되었다. 그런데 흉년에 공밥을 먹여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작은 아들을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 로여기기에 키우지 않았다. 따라서 작은 아들은 이방인들이 사는 나라로 간 것이다. 돼지를 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가장 천한 직업이었고 유대인들은 절대로 하지 않던 혐오하던 일이다. 그렇기에 작은 아들은 할 수 없이 그런 일이라도 한 것이다.
16절에서 작은 아들은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고했는데 아무도 그에게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쥐엄 열매는 콩과 식물에 속하는 나무로 꽁과 같이 생긴 열매들이 연다(ceratonia siliqua). 이 식물이 팔레스타인에서 나는 나무로 동물들이 먹었고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을 때만 먹었다. 이는 굶어죽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17절은 그가 자신에게 가서 말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내 아버지에게는 빵이 넘치는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가서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보다 한참 못한 존재가 된 것을 깨달은 것이다.
18절에서 작은 아들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서 "아버지! 내가 하늘을 향해서 또 당신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겠다고 한다. 하늘은 향하여 라는 말을 썼는데 하나님 앞에는 설 수 없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죄를 지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는 그 앞에 설 것이기에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아들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모두 죄가 되는 일을 한 것이다.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빨리 죽으라고 한 것이나 다름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19절에서 이들은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라 불리울 자격이 없으니 품꾼의 하나로 만들어 달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제 아들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 재산을 받을 아무런 권한도 없기에 품꾼으로 채용해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재산을 받아 온 이 아들은 굶어죽게 되어서야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도 모든 일이 잘될 때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살게 된다. 작은 아들처럼 어려움을 당해서야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는 것 만으로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겠다는 생각을 한 것 뿐이다. 회개란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