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35-40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사오정 같은 소리를 하자 예수께서는 지금은 예수님 자신을 따라 죽을 수 없지만 장차 그렇게 할 수 있다며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모욕과 채찍질을 당하고 죽은 뒤 사흘 후에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시며 그 길을 제자들과 함께 가고 계신다며 제자들을 초청하셨다. 일반적인 드라마나 소설이라면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이 각오를 새롭게 하고 예수님을 따라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은 개그 콘서트이다. 세배대의 아들 둘이 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선생님!” 하고 부르며 말했다. 말한 내용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36절에서 예수님은 이 두 제자들에게 대답 대신 “무엇을 원하느냐?” 라고 다시 질문하셨다. 두 제자들이 요구한 내용은 37절에 나온대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라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완전히 사오정이다. 왜냐하면 이미 33-34절에서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먼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며 우리는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께 이 두 제자는 어디서 자다가 왔는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이 두 제자들이 사용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를 직역하면 “당신의 영광 안에서” 이다. 이 말은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런 뜻으로 썼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제자들이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친히 왕좌에 앉으시는 것을 생각하고 한 말이다. 예수께서는 바로앞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세번째로 말씀하셨는데도 이 두 사람은 하나도 듣지 않고 자신들이 배우고 생각해온대로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 앞부분에 나타나 있다. 5: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녀를 살리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또 9:2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실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베드로와는 수준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베드로보다 훨씬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대로라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아야 맞다.
이러한 사오정 같은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38절부터 나온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고 이방인에게 넘겨져 고난 받은 뒤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요구한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좌우편에 자신들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달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라고 하신 것이다.
더 구체적인 대답 대신 예수님은 38절 뒷부분에서 두 제자들에게 또다시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은 두가지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첫째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잔은 예수님의 받으실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받으실 그 고난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두번째 질문은 예수님이 받을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침례란 저주의 바다에 던져지는 것을 뜻하는 그림언어이다. 재앙이나 눈물이나 슬픔의 바다에 던져져서 죽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33-34절에서 말씀하신 고난과 죽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39절에서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아직도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오정 놀이를 계속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잔이란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신앙공동체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침례란 그러한 신앙공동체에 가담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같은 신앙을 가지고 함께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38절에서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실 때는 너희는 못한다는 뜻으로 질문하신 것이다. 그런데 39절 뒷부분에서는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못한다는 뜻으로 “할 수 있느냐?” 라고 질문하시고는 왜 금방 할 수 있다 하셨을까?
자세히 보면 이 말은 지금 제자들은 못한다는 뜻이다. “내가 마시는 잔” 이란 말은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은 지금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이 마실 잔은 미래형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지금 마시고 있는 잔을 너희는 미래에는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내가 받는 침례도 현재형이다. 하지만 제자들이 받을 침례는 미래형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받으시는 십자가의 죽음은 제자들은 지금은 못받지만 미래에는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야고보는 40년대 초반 12제자들 중 첫번째로 순교를 했다. 결국 예수님은 지금 이 두 제자들이 지금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고난 받고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40절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는 것과 왼편에 앉는 것은 예수님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는 이미 정해진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해진 이란 말은 이미 완전히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있을 십자가의 죽음 때를 뜻할 수 있다. 오른편은 서열 2위의 자리이고 왼편은 서열 3위의 자리이다. 으뜸가는 자의 자리는 한 가운데 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른 두 강도는 오른편과 왼편에 달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강도란 말은 무장항쟁으로 독립을 찾으려던 유대인 독립투사들이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으니 로마인들 관점에서는 반역자의 우두머리인 셈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 좌우편의 2인자와 3인자인 셈이다. 이는 또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의 보좌의 좌우편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런데 38절에서 할 수 있느냐고 했기 때문에 이는 십자가의 좌우편에 달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이다. 물론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사람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다는 뜻도 포함한다.
야고보와 요한만 사오정이 아니다. 이어지는 41절은 다른 제자들이 이를 듣고 분개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은 "저런 철없는 것들!" 이라며 혀를 끌끌 찼어야 옳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만 사오정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신들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이 되고 다시 과거 다윗시대처럼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늘 부모님들과 랍비들에게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이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잘 살게 되로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으며 가르치고 배운 것도 역시 제자들처럼 사오정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가 과거 미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한국에서도 전 인구의 사분의 일이 기독교인이 된 것도 모두 사오정 놀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도 누구나 자신들이 배우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바탕으로 받아들이도록 되어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과거에 이미 우리가 배워온 성경 지식이나 우리가 원하는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고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듣고 배워야 한다. 필자가 아무리 성경 본문이 말하는 내용을 깊이 연구해서 그대로 전해도 많은 사람들은 계속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단하여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부할 것이다.
내가 기뻐하고 원하는 말씀을 발견하면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성경을 읽다가 한 말씀이 마음에 확 들어오면 그 말씀만 붙잡고 기뻐하며 나머지 말씀들은 듣지 않고 지나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 후 문맥을 살펴가며 꼼꼼히 읽으며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발견했다면 그 말씀이 불편해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는 노력을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힘써 하지 않으면 우리도 오늘 말씀에 나온 세배대의 두 아들처럼 오늘날 한국과 미국에 있는 기복주의 신앙을 가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똑 같이 사오정 놀이를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