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31-33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말라. 나도 모든 일을 할 때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게 하여 그들이 구원 받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이 양심에 대해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이라고 한 것인데 이에 대해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주장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라며 절대로 아무에게도 걸림돌을 놓지 말라는 내용이다.
31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 한 내용이기에 그에 대한 결론이다. 그 결론은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서 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지혜자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의 판단 기준은 성경 말씀에 따라 합법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아니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영광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박수 갈채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25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함은 사람들 보기에 어리석고 약하게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께는 지혜이고 강함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13절에 보면 바울도 하나님의 지혜와 강함이라 말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위해 이 세상의 음식쓰레기 같고 배설물같이 되었다고 했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영광에 취해 있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 십자가의 형상을 지닌 그리스도 중심적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 기준도 역시 합법적인가 아닌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합법적인지 아닌지 따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아닌가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 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분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잔디 깎기는 잔디를 깎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잔디깎기에 선풍기 날개를 달아서 보는 사람마다 기발하다 신기하다는 말을 들으며 그런 잔디깎기는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창조된 본래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보내는 박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 존재의 본래 의미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인가? 마태복음 22:37절에 보면 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고 로마서 4:20절에 보면 주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했고 시편 50:23절에 보면 주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바로 깨닫고 그 분의 뜻에 따르며 그분에게 사랑과 신뢰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집에 초대 받아서 근사한 음식을 대접 받을 때와 같다. 어떻게 대접한 사람에게 영광돌릴 수 있나? 그것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가서 더 나은 요리를 만들어 내놓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앉아서 음미하면서 먹고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표현하면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신뢰와 감사를 드리면 되는 것이다.
32절은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내용이다. 유대인들이란 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하고 그리스 사람들이란 이방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크리스천들을 말한다. 따라서 교회 밖에 있는 유대교 신자들이나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바울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해서 그들을 전도하라는 것이다.
33절은 원어에서 "내가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 것처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란 32절에서 말한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이나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 모두를 말한다. 모든 일이란 바울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라는 뜻이다. 바울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사람에게 맞춰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처럼 율법에 따라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먹고 마시며 율법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먹고 마시는 대로 무슨 음식이든 다 먹는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기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그들이 바울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유대인과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형제들이다. 우리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길을 막는다는 뜻이기에 반대로 우리는 걸림돌을 치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불신자들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뭐 저래?” 라고 한다면 걸림돌을 놓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저 사람은 진짜 예수 믿는 사람 답다” 라고 한다면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33절 뒷부분에서 바울은 나의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그 결과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혹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되고 싶어하는 것이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나오도록 길을 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