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29-30 바울이 양심에 대해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이라고 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전 말씀은 불신자에게 초대를 받은 경우 함께 초대 받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하여 묻지 말고 먹고 만약 함께 초대 받은 사람이 우상 제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하자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음식 때문에 비방을 받을 까닭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내용이다.
어제 나눈 말씀 끝부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짧게 끊어서 설명하고 있기에 연결을 위해 다시 설명해 본다. 동로마 교회인 비잔틴 교회 계열의 사본들과 Textus Receptus를 보면 28절과 29절 사이에 26절이 다시 반복되어 있다. 이것을 원문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하늘과 땅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때문이다" 라는 말을 넣어서 읽으면 29절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할 경우와 먹지 말아야 할 경우를 제시하자 고린도 교회의 지혜가 있는 강한 자들이 이 말을 가지고 "하늘과 땅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라며 왜 먹지 말라고 하는거야?" 라는 예상 가능한 반박을 넣은 것이다.
29절은 두개의 문장이다. 먼저 첫번째 문장은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다.”까지 끊어야 한다. 이는 바울이 한 말이다. 29절로 볼 때도 25-28절에 나온 양심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말한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양심이란 8:10절에서 말한 고린도 교회의 약한 자들의 양심이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약한 자들을 배려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어째서 너희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의 약한 자들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하는가?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은 우상에 대한 지식도 있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먹어도 양심에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들만 생각하지 말고 양심에 죄책감을 느끼며 먹는 약한 사람들을 배려해 주라는 뜻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나도 너희들이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너희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공감하고 동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 양심이 아니고 너희들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는 약한 사람들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29절의 두번째 문장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지혜있는 자들인 강한 자들의 예상되는 반대 질문이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라는 말은 “우리가 먹는 것까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나?”라는 뜻이고 한국 속담에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30절도 29절에 이어지는 고린도 교회 지혜자들의 반대 질문이다.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한다면 내가 감사하다는 것이 어째 신성모독이 되느냐?” 하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따라 그 그리스도인이 위선적이거나 비 윤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확신하게 되어 복음과 그 효과들을 낮게 평가한다면 복음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성공을 방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개인의 자유보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상관없다면 구태여 외부인들에게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여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고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줘서 그들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면 지식이 있는 당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 바울의 초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