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27-28 불신자에게 초대를 받은 경우 함께 초대 받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하여 묻지 말고 먹고 만약 함께 초대 받은 사람이 우상 제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
이전 말씀에서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묻지 말고 그냥 사먹으라. 왜냐하면 땅과 땅에 충만한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불신자에게 초대 받았을 경우 따지지 말고 다 먹어도 되지만 우상 제물이라고 알려주면 알려준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는 내용이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따지지 말고 다 먹으라고 한 것과 병행이 되는 또 다른 상황은 27절에 나오는 불신자에게 초대 받았을 경우이다. 불신자에게 초대 받았을 때 가길 원하면 차려놓은 모든 음식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 너희라는 말은 영어로는 혼동이 될 수 있지만 원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복수이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 여럿이 함께 초대를 받은 경우이다.
여기서 너희가 가기를 원한다면 이라는 표현에 대해 논란이 있다. 어떤 이는 "가기를 원한다면" 이라는 표현이 바울은 가는 것을 권장하지도 않지만 금하지도 않는다는 암시라며 칼빈이 "거절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라고 한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다수는 "가기를 원한다면" 이라는 말이 거절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석한다.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플라톤과 동창인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인 크세노폰의 Memorabilia 1.3.6에도 "초대를 받고 오기를 원한다면"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다. 바울은 초대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가 당연히 그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양심은 다른 사람의 양심이고 특별히 고린도 교회의 대다수인 가난한 성도들의 양심이다. 만약 여러분이 1세기 고린도에 살던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 만한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자. 교회 성도들 중에 가난한 성도들 몇 사람과 함께 불신자인 어느 부자에게 초대를 받았다면 가난한 성도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기회이다.
초대한 사람은 당연히 값이 싸고 질도 좋은 우상에게 드렸던 고기를 사다가 대접을 했을 것이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 대부분이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우상에게 드렸던 고기인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성도가 “이게 얼마만이냐?”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갈비를 뜯고 있는데 먹고 살만한 사람이 우상제물이라 안먹겠다고 한다면 그 고기를 열심히 뜯고 있던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도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해서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
28절은 그러나 만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의 경우와 반대가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누가 너희에게 우상 제물이라고 말해준다면 그렇게 알려준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고기를 먹으려 할 때 그 고기가 우상제물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아마도 우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고 성경 지식이 없는 하층민 성도였을 것이다. 그는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신앙인이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려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먹는 것도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해서 먹으라는 것이고 먹지 말라는 것도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어느 불신자의 잔치에 여러 성도들과 함께 초대를 받아 갔는데 가난하고 성경도 잘 모르는 초신자가 여러분에게 귓속말로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이래요” 라고 했다고 하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식도 있고 신앙도 깊은 사람이 “야 이 바보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야! 먹어도 아무 상관 없어!” 라면서 먹는다면 그 사람 마음이 어떻겠는가? 당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우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상에게 잘못하면 벌 받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새신자들도 우상의 음식을 먹으면 자신이 우상에게 예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나님께 벌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 많고 신앙도 좋으신 분이 먹어도 괜찮다고 하니 가난하고 배움도 없는 초신다는 먹기는 먹었겠지만 그 마음 속에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 잡힌 채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담대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우상의 신전에 초대 받아 가서도 고기를 먹게 될 것이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모든 경우는 모두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생각해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물론 우상들에게 드렸던 제물을 먹는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 기준은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족하게 한다면 그 행동이 옳다 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한국에서는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 까지도 좋지 않게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목사들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이러한 것을 성경에 어디 술 마시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느냐고 따질 필요가 없다. 이제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새신자가 술 담배를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끊기로 결심했는데 신앙생활 오래 한 집사나 장로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을 본다면 그 사람도 다시 술 담배를 하게될 것이고 예수 믿기 이전의 방탕한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마가복음 9장 42절에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성경에 죄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성도들의 신앙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는 행동이 처음 교회에 나온 성도들이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실족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9-10세기 사본들과 대다수의 동로마 교회 계통의 사본들에 보면 28절과 29절 사이에 26절이 다시 한번 반복된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26절이 28절 뒤에 한번 더 반복된 사본들이 원래 원본에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후대에 삽입된 구절은 29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25절부터 28절 까지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할 경우와 먹지 말아야 할 경우 세가지를 제시한 것에 대해 고린도 교회 지혜있는 자들의 예상 가능한 반박을 넣은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의 지식이 있는 자들이 “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라면서왜 먹지 말라고 하는거야?”라고 반박하는 말을 넣은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29절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