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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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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2:10-11

사탄이 부당이득을 취하게 하지 말라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9. 24.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2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2:10-11 여러분이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이미 완전히 용서했고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가운데 그 뜻을 따라 한 것이며 그것은 사탄이 우리를 통해 과도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그러니 반대로 회개한 사람은 용서와 위로를 통해 그 사람이 과도한 슬픔에 삼켜지지 않도록 사랑을 나타내야 하며 이 편지를 쓴 목적도 여러분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지를 검증하려는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내가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한 것이라며 그렇게 한 것은 사탄에게 속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10절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한다면 바울도 그렇게 용서한다고 말하고 있다. 용서한다는 말은 본래 은혜를 베푼다는 뜻인데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 무엇이든지 용서한다면 바울은 이미 완전히 용서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바울이 용서했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이미 완전히 용서가 끝났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라 특정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용서한다고 결정하면 바울은 이미 용서하는 것을 완전해 결정했기에 고린도 교인들만 용서하기로 결정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만 용서한다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용서를 결정한다면 바울은 이미 용서했기에 무조건 함께 찬성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그동안 용서한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10절 뒷부분은 이런 뜻이다. 내가 만약 그동안 이미 완전히 용서한 경우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완전히 용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완전히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가정법으로 만약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다수는 용서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나 목회적 배려라고 말한다.

여러분을 위하여 라는 말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먼저 용서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용서의 본을 보였다는 것은 이 사건이 바울 자신에 대한 모욕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바울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잘못하면 고린도교회 공동체 전체가 잘못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용서가 바울 자신을 위해 용서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공동체를 위해 용서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만 생각하면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생각해서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단순히 바울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을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믿음에 큰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명예를 위해서 그 사람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용서함으로 공동체가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앞에서 라는 말은 원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라는 뜻이다. 바울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감독과 승인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 자신이 정확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서 용서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용서 했지만 바울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고 계시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따라 용서한 것이라는 뜻이다.

11절은 바울이 먼저 그렇게 용서의 본을 보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울 일행이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한다는 말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이득을 빼았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득을 취한다는 말은 받아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아간다는 뜻이다. 100불을 꿔주고 며칠 뒤에 150불을 받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사탄은 이미 그 사람의 죄를 통해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 사이와 고린도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막대한 이득을 이미 얻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 고린도 교회가 용서를 거부하면 사탄은 두번째로 더 큰 이득을 취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그리스어로 디아볼로스인데 이간질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히브리어로 사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간질 대마왕인 사탄에게 좋게 해서는 안된다는 듯이다. 그래서 바울은 11절 끝부분에서 왜냐하면 우리가 그 속셈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알지 못한다는 말에 또 다시 부정어를 붙인 것은 사탄의 속셈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10대인 딸을 책망만 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슬픔에 압도될 것이다. 가족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밖에 나가보니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따라가고 보니 인신매매 되고 사창가로 팔려가는 경우가 있다. 우리도 용서하지 않으면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잘못을 저지른 딸을 용서하지 않고 정죄만 하는 것은 스스로 딸을 사창가에 파는 셈인 것과도 같다. 잘못을 뉘우친 성도를 용서하지 않는 것도 역시 사탄에게 팔아넘기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면 사탄의 속셈은 분명한다. 사탄의 속셈은 교회 공동체가 서로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이간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진리를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따라가는 것을 막는다. 사탄은 또 성도들 사이에서 이간질하여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연약한 성도들이 떠나가게 한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목회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고 성숙한 성도들을 통해 그 말씀을 실천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남의 말을 전하거나 이간질하여 다투게 하고 분열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속성이고 항상 변함없는 기본 전략이다.

사탄에게 속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 배우고 삶으로 실천하여 운동하듯 훈련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간질로 사탄의 하수인 노릇하는 사람들은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간질하여 사탄의 하수인 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 어느 교회나 그런 사탄의 하수인들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뉘우쳤는데도 용서하지 않고 분노를 품고 정죄만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도 두 아들의 비유에서도 문제는 용서할 줄 모르는 성실한 아들이라고 하셨다. 문제는 거룩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용서할 줄 모르는 것에 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적하여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인들이었다. 피해자였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용서를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원수들을 용서해야 한다. 교회는 그렇게 서로의 원수를 용서하고 용서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교회 안에는 용서해주는 피해자와 용서 받은 가해자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천사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돌아서는 것은 절반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용서한 다음에 위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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