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12-11 나는 드로아에 갔을 때 거기서 사역할 기회가 완전히 열려있었지만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에 내 영에 안식이 전혀 없어서 마케도니아로 갔다.
여러분이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이미 완전히 용서했고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가운데 그 뜻을 따라 한 것이며 그것은 사탄이 우리를 통해 과도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드로아로 갔을 때 사역의 길이 열렸는데도 디도를 만나지 못해 마케도니아로 갔다는 내용이다.
AD 56 봄 바울은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떠났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 두 달쯤 전 디도를 통해 고린도로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디도가 기쁜 소식을 갖고 오길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도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드로아에서 디도와 만나기로 했는데 드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략적 항구도시였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로마제국의 수도를 드로아로 옮겨야 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여건으로 보면 드로아는 선교 거점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 드로아에서 사역의 기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못해 마케도니아로 떠난 것이다. 그만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이 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 안절부절을 못하며 고린도 성도들의 소식을 기다렸던 이유는 거룩하기만 하고 용서할 줄 모르던 고린도 교인들이 변화되어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만약 거룩하기만 하고 서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이미 용서했다는 것이다. 용서의 본을 보인 자신들을 보라고 했던 것이다.
12절에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에 갔을 때 주 안에서 문이 열렸다고 했다. 드로아 라는 말에 정관사가 붙어있기에 도시가 아니라 드로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정관사 때문에 지역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문맥상 도시로 본다. 바울은 배를 타고 가도 항구는 드로아라는 도시에 있었고 당시 로마로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해도 반드시 드로아 라는 도시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역 이름이라기 보다는 도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공식 명칭은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이다. 디도와 만나기로 한 장소라는 것을 볼 때도 드로아는 도시 이름이다.
바울이 드로아에 간 것은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다. 원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로아에 갔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이 열렸다는 것은 복음 전파할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열렸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문이 완전히 계속 열려있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주님 안에서 복음전파의 길이 완전히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당연히 드로아에서 계속 머물며 복음 전하는 것이 옳다. 드로아에 간 목적도 복음 전파이고 주님 안에서 문도 완전히 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13절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했다. “편하다” 라는 말은 마치 기타나 바이올린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을 풀어주는 것과도 같은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1:7에는 안식이라 번역했고 사도행전 24:23에서는 자유라는 말로 번역했다. 그런데 안식을 갖지 못했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안식을 전혀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마음이란 원어대로 직역하면 “내 영이라는 뜻이다. 바울의 영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처럼 긴장감이 있어 편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있고 편안함이 전혀 없었던 이유는 바울이 내 형제라고 부르는 디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은 디도의 안전 문제에도 있었겠지만 고린도 교회의 반응 때문일 것이다. 디도가 제 때에 오지 못했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기 대문이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계속 적대적이라면 바울의 사도적 권위 뿐만 아니라 이방 선교와 예루살렘 성도들 돕는 문제등에도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서 작별을 하고 마케도니아로 갔다는 것이다. 이는 디도를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디도가 육로로 올 가능성이 높았기에 디도와 엇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디도가 오는 길인 마케도니아로 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로 연결되는 하이웨이를 통해 여행을 했기에 만약 디도가 오는 중이라면 마케도니아로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다.
드로아는 지금의 터키 서북쪽 끝부분에 있던 항구 도시였다. 드로아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성도들도 바울을 존경하고 환대를 해주었고 바울의 가르침을 경청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드로아로 갔을 때 주님 안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은 드로아의 성도들이 바울을 따뜻하게 환대해주고 바울이 복음 전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다 마련해 주었다는 뜻이다. 그곳에도 복음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곳에서 편안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서 작별을 하고 마케도니아로 갔다고 했는데 이는 현재 그리스 북동쪽 끝부분에 있는 빌립보로 갔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라면 우리에게 이처럼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 듣기를 원하고 환영해 준다면 그곳에 머물면서 좋은 대우받고 편안히 복음을 전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곳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 것은 바로 바울의 영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영 안에는 성령이 거했기 때문에 결국 성령께서 불편한 마음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좋은 조건으로 길이 활짝 열렸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니다. 우리도 모든 일을 결정할 때 바울처럼 우리의 영이 편안한지 생각해봐야한다.
따라서 좋은 조건으로 일 할 수 있도록 길이 활짝 열렸고 그것을 자신이 좋아 한다고 해서 이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하면서 그냥 따라가면 부적격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적격자가 되려면 성령께서 편안한 마음을 주실 때 불편한 길이라도 그 길을 가야하고 성령께서 불편한 마음을 주신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고 사람들이 환영해도 가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시기에 적합한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