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8:21-35

Dawn Word

마태복음 18:21-35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12. 6.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8:21-35 우리도 막대한 빚을 용서 받은 죄인이니 우리도 그 은혜에 감사하며 다른 형제 자매들을 한없이 용서해야 한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용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한없이 대답하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왜 그렇게 한없이 용서해야 하는지를 막대한 빚을 용서 받은 한 종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23절은 “이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나온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하므로” 라는 뜻이다. 왜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하늘 나라가 마치 자기 종들과 결산을 하려는 어떤 왕과도 같다는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왕과 첫번째 종 이야기는 24-27절이다. 24절에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고 했다. 1세기 로마제국 시절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다. 그렇다면 1 달란트는 노동차 6000명의 하루 품삯인 셈이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 정부가 이두매, 유다, 사마리아, 갈릴리 지방에서 11년간 거두어 들인 세금이 약 9,000 달란트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만약 이를 미국 노동자의 1년 품삯을 30000불이라고 가정하면 빌락시 전체에 있는 모든 집을 다 살만한 금액이다. 따라서 이는 한 개인의 빚이 아니라 한 국가의 빚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이런 빚의 채권자는 오직 로마 황제밖에 없다. 10000 달란트 빚진 종은 로마황제가 임명한 작은 나라의 왕이나 총독일 것이다.

25절에서 왕은 종에게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팔아서 갚으라고 했다. 그러자 그 종은 26절에서 엎드리어 절하며 애원했다. 새번역은 무릎을 꿇었다는 한 단어로 번역했는데 원어는 "쓰러지면서 절했다"라는 두 개의 동작이다.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팔아서라도 갚으라고 하자 너무 놀라서 졸도하듯 땅에 쓰러진 것이다. 하지만 황제 앞이기 때문에 예를 갖추기 위해 얼른 납작 업드려 경배하며 애원했을 것이다. 아마도 흉년이 들었거나 국가적으로 중대한 일이 있어서 처음 약속했던 세금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27절에 보면 불쌍히 여겨서 빚을 없애 주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고의로 내지 않았다면 갚으라 하지 않고 군대를 보내서 작은 나라의 왕인 종을 죽이고 다른 충성스런 종을 새로운 왕이나 총독으로 임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왕은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그를 보고 가엾게 여겨 석방했다. 그리고 모든 빚을 면제해 주었다.

여기서 왕은 35절에 보면 왕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첫번째 종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막대한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수제자라고 여기던 베드로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용서 받은 비결은 납작 엎드려 왕에게 자비를 구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죽을 수 밖에 없는 큰 죄를 지은 우리를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엄청난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탕감 받은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이어서 두번 째 종의 이야기가 28-31절에 나온다. 28절은 “그러나”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 사람이 받은 엄청난 은혜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아마도 백데나리온 빚진 종은 작은 지역의 세금 징수를 맡은 관원이었 것이다. 용서받은 종은 이 사람을 보자 붙잡아서 멱살을 잡고 빚 갚으라고 했다고 했다. 여기서 멱살을 잡았다는 말은 원어에서 목을 조른다는 뜻이다. 자신은 엄청난 빚을 용서 받았으면서 다른 종을 만나자 목을 졸라가며 빚을 갚으라고 한 것이다. 고대 로마 작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코에서 피가 날 때까지 빚진 사람의 목을 조르던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백데나리온이라면 노동자 100일의 품삯이다. 한 3-4개월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빚인데도 이렇게 가혹하게 대한 것이다.

26절에서는 쓰러져 경배했다고 했지만 29절에서는 쓰러진다는 말만 나온다. 로마황제는 신격화했기에 경배를 해야 했지만 이 사람은 상대가 로마 황제가 아니기에 경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목을 조르다가 죽기 직전에 내 던져 버리니 땅 바닥에 그만 쓰러진 것이다.

새번역은 동료 종이라는 말 때문에 반말로 번역했지만 사실 동료 종은 로마 황제 입장에서는 다 동료 종이지만 이 사람은 로마 황제의 종인 분봉왕의 신하이기에 그렇게 번역하면 안되는 것이다. “참아주게 내가 갚겠네”라고 번역된 말은 26절의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라는 말과 원어에서는 완벽하게 똑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29절도 26절과 똑같이 예를 갖추어 말을 했을 것이다. 한없는 자비로 용서 받은 종은 자신의 종에게 얼마나 무자비하게 대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30절에서 그러나 용서 받은 종은 감옥에 집어 넣고 갚을 때까지 갇혀있게 했다고 했다. 이는 인간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인 괴물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31절을 보면 이를 보고 있던 다른 동료들은 민망하게 여겼다고 했다. 민망하다 또는 딱하다는 말로 번역된 말은 슬펐다는 뜻이다. 작은 빚을 진 종에게 너무 가혹하게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왕에게 가서 다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다른 형제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 고해야 하고 직접 복수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왕은 분노하여 다시 그 종을 불러들인다. 32절은 왕이 그 종을 불러다가 문책하는 장면이다. 왕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잘못한 것을 33절에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왕이 이 종을 불쌍히 여긴 것처럼 이 종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겼어야 했다. 34절에서 형무소 관리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고문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냥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감옥 안에 두고 계속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고문을 당하도록 한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35절에 나와 있다. 예수께서는 엄청난 빚을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 형제 자매들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렇게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넘겨주신다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어서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감옥에 쳐 넣고 계속 고문을 당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죄를 용서함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형제의 사소한 잘못은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문하는 자들에게 붙여서 영원히 고문을 받게 하실 것이다.

자주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시절 용서받지 못한 상처가 거머리처럼 아직도 그 마음에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그 거머리들을 떼어낼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깨닫고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날마다 드리면 그 거머리는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큰 죄인인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 받은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 은혜를 진정 감사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분노를 일으키는 도덕적 괴물 본성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