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1-2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도 따라오는 무리들을 치료해 주셨다.
이전 말씀은 우리도 막대한 빚을 용서 받은 죄인이니 우리도 그 은혜에 감사하며 다른 형제 자매들을 한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가신다는 내용이다.
1절은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마치셨을 때가 되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뒤에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가르치셨다. 어어서 또 다시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신 뒤 18:1-35절에서는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낮추고 목자의 마음으로 잃은 양을 찾으며 형제 자매를 용서하는 자가 하늘 나라에서 큰 자라고 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을 다 마치셨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서 요단강 건너편 유대 지경으로 가셨다는 것이다. 요단강 건너편은 본래 이방지역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방지역을 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신 것이다. 요단강 건너편에도 일부 유대인들이 살았었다. 당시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좋은 길이지만 사마리아 지역을 피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여리고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이제 예고하신대로 예루살렘에 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려는 것이다.
2절은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다. 이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고 자신들도 치료 받으려는 사람들과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제 예수님은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기에 마음이 좋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 온 무리들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번 여행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인데도 아직도 아무 것도 모르고 병을 고쳐 달라며 따라 다니던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죽음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우리를 정말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아무런 말도 귀에 안들어 오는 법이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모르고 병을 고쳐 달라고 따라 다니는 무리들을 보고 짜증을 내며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그들을 치료해 주셨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고 짜증나게 하며 계속 도와 달라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참으며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예수께서는 죽을 병에 걸린 우리를 고쳐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참으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라고 한 것이다. 자기들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우리 주님처럼 끝까지 참으며 온유한 태도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