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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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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태복음 19:3-12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붙여 주셨다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12. 8.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9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9:3-12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혼이 모세의 율법에서 허락한 권리가 아니냐고 질문을 했지만 예수께서는 간음 이외에 이혼하는 것은 간음행위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놀란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키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독신으로 살든지는 각자에게 달린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도 따라오는 무리들을 치료해 주셨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 치료 받기를 원하여 따라 다니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고 싶도록 반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가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는 트집을 잡아 죽이려는 것이다.

3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서 그를 시험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지 아내를 내버리는 것이 합법적인지 물었다. 당시 바리새파들 중에 샴마이 학파는 오직 음행 이외에는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고 가르쳤고 힐렐 학파는 뭐든지 이유만 있으면 버려도 된다고 가르쳤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힐렐 학파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는 신명기 24:1절의 "수치가 되는 일"의 해석을 서로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수치가 되는 일이란 본래 히브리어에서 벌거벗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샴마이 학파는 음행이외에는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힐렐학파는 뭐든지 잘못하면 수치가 된다고 해석했다. 힐렐 학파의 해석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따르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다.

문맥에 따르면 3절에 나온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은 힐렐 학파의 해석을 따르고 있으면서 트집 잡을 근거를 찾기 위해 질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산상수훈에서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이라고 하셨기에 이들은 이미 예수님의 답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여자를 버리면 안된다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자로 정죄하려는 것이다.

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신 것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 라는 말씀이다. 처음부터라는 말은 창세 때 부터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창세기에 근거를 두고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5절에서는 또 말씀하시길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도 못했느냐고 하셨다.

"아내에게 합하여" 라는 말에서 합한다는 말은 단순히 연합하여 함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접착제로 붙여 완전히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다. 7절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고 하셨다. 이는 평범한 접착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접착제로 붙였기에 이제는 완전히 한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로 붙여 주신 것을 나누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을 세로로 자르는 것과도 같아서 둘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했습니까?" 라고 했다. 이는 역시 신명기 24:1절에서 나온 말씀이다. 본래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하여 아내를 함부로 버리는 것이 만연해 있었기에 한 말이다. 이는 "이 나쁜 놈들아! 아내를 버리려면 최소한 이혼 증서라도 써 줘서 재혼하여 살 수 있도록 해 줘라"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8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다. 완악하다는 말은 심장이 딱딱해졌다는 뜻이다. 심장은 감정이 자리잡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자리잡는 곳이기에 생각이 굳어져서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전혀 듣지 않고 자기들 고집대로만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으로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고 해도 전혀 듣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마구 버렸기 때문에 그러려면 최소한 이혼증서라도 써 줘서 내버리라고 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9절은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뜻을 되찾아 주시는 내용이다. 역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시며 하나님 말씀의 본래 뜻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라고 하셨다.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은 음행이라는 뜻이 분명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과는 달리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여자가 음행할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기에 이는 이혼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제 10절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떠난 뒤제자들과 있는 사적인 자리에서 제자들이 말한 것이다. 제자들은 만약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그렇다면 차라리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와 이혼도 못하고 평생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결혼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이는 제자들도 역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11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시지 않으셨다. 대신 제자들이 "결혼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그 말을 받지 못하고 타고난 자라야 받는다고 하셨다. 제자들 중에도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그러한 소명을 받은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어서 12절에서는 세종류의 고자를 말씀하신다. 첫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성기능이 없는 채로 태어난 고자이다. 두번째는 사람이 만든 고자이다. 이 경우는 왕실의 환관으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기 이전에 거세를 한 경우이다. 이 두 종류는 실제로 고자를 말하는 것이고 구약에서 이런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세번째 예는 실제 고자가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고자이다. 하나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이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스스로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누구나 쉽게 여행할 수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여행한다는 것이 정말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기에 함께 다니기가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선교사들은 모두 독신으로 다니며 선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으라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절대로 이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아내와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느 쪽을 택하든지 다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성관계가 사람을 순결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을 해서 독신주의를 주장했다. 중세의 수도원 운동 같은 것도 역시 독신으로 사는 것이 순결한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순결이 아니고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만약 절대로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한 아내와 살겠다면 그것도 옳고 만약 자신이 없어 아예 결혼을 포기하겠다면 그것도 옳다는 것이다. 독신주의가 순결한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부부는 이미 한 몸으로 붙여 놓으셨기에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나눈다면 살이 찢기고 몸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단순히 이혼에 관한 말씀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바리새파 사람들의 진짜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이 이미 행하고 있는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역시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대적하는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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