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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7:1-4

Dawn Word

이사야 47:1-4

원수 갚아 주시는 하나님

2018. 11. 27.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7장 강해 설교

이사야 47:1-4 하나님은 고귀한 공주 같은 바빌론을 가장 낮은 노비로 만드시고 벌거 벗겨서 구경거리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남은 자들의 원수를 갚아 주신다.

하: 원수 갚아 주시는 하나님

나: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 대신 원수 갚아 주시는 우리 주님께 항상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포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늘 잊지 말고 그 말씀 위에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바빌론을 아름다우면서도 교만한 처녀에 비유하면서 바빌론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남은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1절은 높은 보좌에 앉아있던 처녀 딸 바빌론에게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고 말한다. 높은 자리에서 조금 내려오는 것도 수치인데 바닥까지 내려와 땅바닥에 앉으라는 것은 최고의 수치이다. 앉으라는 말은 거기서 터잡고 살라는 뜻이다. 보좌를 갖고 내려와 땅 바닥에 앉으라는 말로 오해할까봐 다시 보좌없이 땅바닥에 앉으라고 한다.

"너의 몸매가 유연하고 맵시가 있다는" 라는 말에서 유연하다는 말은 부드러운 고기를 가리킬 때도 쓰고 어린아이나 여인의 살결이 부드럽다고 할 때도 쓰는 말이다. 어에는 몸매라는 말은 없고 단지 부드럽다는 말만 있다. 신분이 높은 여인은 거친 일을 하지 않기에 살결이 부드럽다는 것이다. 또 맵시있다는 말은 섬세하다는 뜻이다. 이는 아주 섬세한 장신구와 옷차림을 뜻할 것이다.

유연하고 맵시있다는 말은 신명기 28:54절과 56절에서도 짝을 이루며 나온다. 개역개정은 신명기 28:54장을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 라고 번역했고 56절에서는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라고 번역했다. 새번역은 같은 구절을 "온순하고 고귀하다" 고 번역했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전혀 다른 느낌으로 번역했다. 이는 살결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는 값비싼 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지 성품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이제 보석으로 장식된 공주의 관도 벗고 섬세하게 짜인 베일로 얼굴을 가렸던 공주님은 이제 거친 피부에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누더기를 걸치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노예신분이라는 뜻이다.

2절을 보면 1절의 유연하고 맵시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단어 자체를 보지 말고 문맥을 통해 봐야 한다는 말이 여기서도 분명하게 증명이 된다. 이제 노예신분으로 전락한 공주님 바빌론은 부끄러운 부분만 겨우 가린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맷돌을 잡고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일은 가장 낮은 여자 노예가 하는 일이다. 얼굴을 가린 너울은 높은 신분의 여인이 가리던 천이다. 맵시있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고운 천을 가리키는 말이다. 치마를 걷어올리라는 말에서 치마란 신분이 높은 여인들이 입던 길게 늘어진 겉옷이다. 그것을 걷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벗으라는 뜻이다. 고운 너울과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치마가 바로 1절에서 맵시있다는 말의 뜻이다.

치마를 벗었다고 벌거벗은 것은 아니다. 막일하는 여자 노예는 일을 하기 편한 짧은 옷을 입었기에 다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여인은 절대로 다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오늘날 젊은 여인들은 모두 신분이 낮은 노예이다. 강을 건너라는 말은 다리를 드러내고 일을 하는 모습이다. 시냇물에 들어가서 허벅지를 드러내고 빨래를 발로 밟는 천한 여자 노예의 모습일 것이다. 공주였던 바빌론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한 것은 최고로 수치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3절은 이정도의 수치에서 멈추지 않는다. 알몸을 드러내고 네 부끄러운 곳까지도 드러내 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옷마저도 다

벗겨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알몸이 되었기에 이제 가장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난 신세가 되었다. 공주를 막일 하는 노예로 부리다가 이젠 완전히 다

벗겨 놓아서 최고의 수치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쟁에서 패했다면 공주와 왕비들 모두 벌거벗겨 줄로 묶어 구경거리로 끌고 다니는 모습이다. 바빌론을 왕비라고 하지 않고 처녀인 공주로 비유한 것은 가장 고귀한 바빌론의 수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3절 뒷부분은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고 했다. 바빌론은 하나님의 거룩한 남은 백성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대우했고 벌거벗겨서 수치를 당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복수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같은 종류와 같은 가치로 복수하는 것이 고대 근동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은 의역을 한 것이고 원어는 한 사람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다 그렇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4절은 우리의 속량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주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했다. 속량자 라는 말이 1-3절에서 연결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다. 속량자란 노예를 값을 지불하고 사서 석방시켜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3절에서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고 했기에 벌거 벗겨진 채 가장 부끄러운 부분까지 다

드러낸 채 사람들 앞에 전시된 바빌론의 모습이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모습이다. 벌거벗겨진 채 팔려나온 처녀 노예의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값을 지불하고 사셔서 다시 고운 옷을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역시 벌거 벗겨진채 노예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노예와도 같은 모습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대신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전시됨으로 우리는 풀려났고 거룩한 옷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내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 벌거 벗겨진 채 노예시장에 묶여있던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구해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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