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5:1-6 벨사살은 자신들의 신들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들로 잔치 자리에서 마시게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으로 글씨가 쓰여지는 것을 보고 놀라 어쩔줄 모르게 된다.
이전 말씀에서 기한이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이해력을 회복시키셨을 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칭송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존귀를 내어드렸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과 모든 것을 돌려주시고 다시 그를 높여 주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세월이 흘러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이그렇게 경험한 교훈이 그 손자인 벨사살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1절은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명 앞에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기원전 562년에 죽었을 때 세 명의 왕들이 왕위를 물려 받았다. 바빌론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이다. House는 벨사살이 나보니두스의 아들이고 느부갓네살의 손자일 것이라고 말한다(House, 107). Fausset은 느보니두스가 실제 왕이고 벨사살은 아버지가 페르샤와 전쟁 때문에 나가있는 동안 대신 다스리던 왕으로 본다(Fausset, 407).
그렇다면 이렇게 전쟁 중에 어떻게 이런 큰 잔치를 벌일수 있는가? 이에 대해 Miller는 두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는 아버지 느보니두스가 페르샤와의 전쟁에서 패했을 대 벨사살이 신속하게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고 대관식의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잔치를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겠지만 왕이 된 벨사살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이 관례였기에 그렇게 했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것은 해마다 이루어지는 연례적인 잔치라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Xenophon에 따르면 수로가 완성되었을 때 잔치를 벌였는데 모든 바빌론 사람들은 밤새도록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Xenophon, Cyropaedai, 7.5.15).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Herodotus도 페르샤왕 고레스가 난공불락의 요새인 바벨론을 침공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수로를 통해 성으로 들어가도록 했다는 내용을 말하면서 바빌론 주민들은 연례적인 절기마다 춤을 추며 그 절기를 축하했다고 기록했다(Herodotus, Histories, 1.191).
2절은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고 했고 3절에서는 왕이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셨다고 했다. House는 일반적으로 바빌론의 왕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대적하는 행위를 하기를 꺼려했다고 말하며 벨사살의 명령이 아주 독특한 것이라고 했다(House,108). Miller 도 역시 다른 신들을 공격하는 행위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고 했다(Miller, 153). 할아버지인 느부갓네살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전해 들었을텐데도 이러한 정신나간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빌론이 점령한 수많은 나라들의 다른 신들이 있었을텐데 벨사살은 어째서 하필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적했을까? Miller는 그날 밤 벨사살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신들의 거룩한 물건들도 가져오라고 해서 더럽혔을 것이라 했다. 이는 바빌론의 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성벽 밖에 있는 메데 페르샤 연합군들이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Miller, 154).
당시 바빌론의 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들인 물까지 성 안에 흐르고 있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에 떠는 바빌론 성 안의 사람들에게 과거에 이스라엘의 신도 자신들의 신이 이겼다며 자신들의 신들이 지켜준다는 확신을 시민들에게 주고자 그렇게 했을 것이다. 4절에서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을 찬양했다고 했다. 이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찬양한 것이다. 자신들의 신들이 과거 이스라엘을 이기게 해 준 것처럼 이번에도 메대 페르샤 연합군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교만한 벨사살의 태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 5-6절에 나타난다. 5절에서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손가락을 보았다는 것이다. Miller 는 이 장면은 혼자 본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Lacocque의 견해를 반박하며 7절에서 벨사살이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상을 준다고 했기에 벨사살에게만 보인 환상일 수 없다고 했다(ibid., 155).
6절에서 왕은 얼굴 빛이 창백하게 변하고 그 생각이 공포에 빠지고 그의 고관절이 녹는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고 했다. 놀란 모습이 얼굴 빛과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엉덩이 관절과 무릎으로 차례로 내려오는 장면이다. 이는 극단적인 공포에 빠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벨사살은 눈에 보이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독했다. 오늘날의 벨사살도 역시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모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자기를 사랑하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하나님은 완전히 모독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세상 권력과 부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도 역시 벨사살이 되어 세상의 권력과 부를 숭배하며 따르고 하나님은 멸시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오늘날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도록 할까? 우리가 만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주면 될까? 오늘 말씀은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느부갓네살이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손자인 벨사살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경험이지 우리 자녀들의 경험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직접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가르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전해주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기적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도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할까? 예수를 믿는 부모들이 늘 기도하는 것이 자기 자녀들이 좋은 학교 가고 좋은 직장 얻고 만사형통하여 잘 사는 것이라면 그런 부모는 절대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그 능력을 경험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부모들 자신부터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아닌 느부갓네살이나 벨사살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예수 잘 믿으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기만 바란다면 신앙적으로 완전히 외식하는 자이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날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원수를 사랑하고 종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도 가운데 응답받아 형통한 기적이야기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