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4:34-37 기한이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이해력을 회복시키셨을 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칭송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존귀를 내어드렸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과 모든 것을 돌려주시고 다시 그를 높여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고도 계속 교만한 태도로 살아서 하나님의 경고대로 짐승처럼 되어 쫓겨나 일곱 때를 들에서 있었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느부갓네살이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온다.
34절은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뀐다. 이제 느부갓네살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시작된다. 칠년이라는 기간이 끝이 났을 때 느부갓네살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고 했다. Miller는 이러한 행동이 복종과 항복이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그의 필요를 인식한 행동이며 여호와께서는 진정한 통치자이시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도 겸손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Miller, 143). 느부갓네살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해 경배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렇게 했더니 내 총명이 돌아왔다고 했다. 총명이 돌아왔다는 말은 앞에서 머리털이 독수리 같고 발톱은 새 같다는 말이 괴물로 변했다는 뜻이 아님을 말해준다. 정신나간 미친 사람이 되어 머리도 감지 않고 발톱도 깎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다시 총명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기에 총명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Fausset은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 그의 이해력이 돌아온 첫번째 증상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짐승처럼 그의 눈이 땅을 향해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이제 물고기 뱃속의 요나처럼 하늘을 향해 기도하게 되고 자신을 치신 분에게로 돌아왔다는 뜻이라고 했다(Fausset, 405). 총명이란 지식 또는 이해력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에게 만약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나 이해력이 있으면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짐승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실 때 느부갓네살이 한 행동은 가장 높으신 이를 감사하고 영원히 사시는 분을 찬양하고 그를 높였다. 감사한다는 말은 본래 축복한다는 뜻인데 새번역은 찬송한다고 했고 개역개정은 감사한다고 했다. 하지만 본래 이 말의 어원은 무릎을 꿇는다는 뜻이다. 원어에 담긴 동작을 놓치면 연결되는 그림도 놓쳐버린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찬양한다는 말은 말로 칭찬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말로 하나님을 칭송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배하였다 또는 영광을 돌렸다는 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는 뜻이다. 이는 마음으로도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Fausset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는 말이 과거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영화(honor)를 도둑질했기에 징계를 받은 것을 암시한다고 했다(Ibid.). 그렇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칭찬하는 말을 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화(honor)를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이다. 이는 자신을 높이던 그 마음이 하나님 것임을 알고 그것을 하나님께 반납하는 모습이다.
이 세 동작을 연결하면 먼저 무릎을 꿇는 행동에서 시작해서 말로 하나님을 높이고 마지막으로 자신 안에 있던 자신을 높이는 마음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번역상의 문제 때문에 이러한 연결되는 그림이 사라져 버리고 비슷한 말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왕국은 세대에 세대를 거쳐 영원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이 완전히 넘겨드린 후 그분의 통치권은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35절은 계속 이어지는 찬양이다. 땅의 모든 거주민들은 다 없는 것 같이 여기신다고 했다. 그는 하늘에 있는 군대나 이 땅의 거주민들에게나 상관없이 그분의 뜻대로 행하신다고 했다. 그렇게 하실 때 아무도 그 손을 금지하든지 혹은 말하기를 무슨 짓을 했느냐고 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손을 금지한다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손을 친다는 뜻이다(BDB, 1099; Fausset, 405). 이는 하던 일을 그 자리에서 못하게 막는 행위이다. 또 말로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말하는 것은 이미 한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하신 일의 책임을 묻거나 중지시킬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36절은 바로 그 때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이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것은 단순히 지적인 능력만이 아니다.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아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때에 자신의 왕국의 영광도 자신에게 돌아왔고 자신의 명예와 광명도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는 34절에서 자신의 명예를 하나님께 돌려드린 탓이다. 또 모사들과 관원들도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왕국 안에서 왕으로 높이 세워지고 더 큰 위대함이 자신에게 더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말로 칭송하며 높이는 마음까지 다 내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회복시키신 것이다.
37은 그 결과 하늘의 왕을 말로 찬양하고 높여드리며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그의 모든 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다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손으로 행하시는 일이 다 진실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의 길들은 올바르다고 했다. 이는 그가 발로 걸어가시는 길은 다 똑바르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진실하고 가시는 그 길은 다 똑바른 길로만 가신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교만의 길을 따라 걷는 자를 낮추시는 분이라고 했다. 이 세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5:13-17절에 나오는 베스도 총독은 자기를 높이기 위해 남을 깎아 내렸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남을 낮추고 비방하면서 자신을 높이려 한다. 느부갓네살은 바로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만 높이는 세상 사람들의 전형이다. 믿는 자들 역시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만 높이기 쉽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낮추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4:11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만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말로만 높이면 안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높이는 것이 나를 낮추고 하나님만 높이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회복시키신 것처럼 우리도 역시 회복시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