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27-28 예수께서는 솔로몬이 자기 영광 안에 있던 것이 들에 있는 백합화보다 훨씬 못했다며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생명 유지를 위한 먹을 것에 대해 까마귀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아무리 염려한다 해도 그 생명을 조금도 연장할 수 없으니 세상적인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것에 대해 백합화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27절은 원어에서 생각해 보아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원어에서 생각해 보아라는 말은 아래로 라는 말과 눈으로 보고 생각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아래에 사물을 두고 자세히 바라보면서 곰곰 생각하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생각할 대상은 백합화이다. Nolland는 하얀색 백합(candidum lilium)이나 그 밖에 백합화 비슷한 야생화들을 뜻할 것이라고 했다(Nolland, 692). 대부분 영어 번역들도 lily로 번역했다. 이는 현대인의 사고로 이 단어를 이해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얀색 백합이라기 보다는 색깔이 있는 백합과 식물로 이 단어를 이해했을 것이다. 솔로몬의 옷과 비교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자주색 도포와 같은 보라색 아네모네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람의 입술색과 비교될 수 있는 진홍색 나리(Lilium Chalcedonicum)나 진홍색 아네모네(anemone coronaria)일 것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진홍색이나 자주색의 꽃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아기서 5:13절은 입술은 백합화 같다고 했기에 입술색과도 같은 진홍색일 것이다. 고대의 왕들이 입던 옷들이 진홍색이나 자주색 옷들이기에 왕의 옷의 색과 비교했을 것이다.
수고한다는 말과 길쌈을 한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지치도록 노동하지도 않고 돌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개역은 둘 다 옷감을 만드는 것으로 보고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순전히 상상에 의한 의역을 한 것이다. 새번역의 번역이 원어 그대로 직역한 올바른 번역이다.
수고란 지치도록 노동을 하는 것이기에 옷감을 짤 수 있는 농작물들을 재배하느라 지치도록 일하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돌린다는 뜻이다. 이는 실을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모습일 수 있다. 원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지치도록 노동하는 것은 남자의 일을 뜻하고 돌린다는 말은 여자의 일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짝을 이루는 두 단어의 본래 의미를 비교해 보면 남자가 밭에서 힘들게 일해서 재배하고 여자는 집 안에서 실을 만드는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진리를 말씀하신다. 솔로몬이 그의 모든 영광 안에 있던 것이 이것들 중 하나와 근처에 놓을 수도 없다고 하셨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다. 아버지 다윗의 공으로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잘사는 나라의 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든 영광 안에 있던 솔로몬은 이런 꽃들 중 하나의 근처에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이 만들어낸 화려함과는 비교도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있다가 내일은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판의 잡초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신다는 것이다. 잡초들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말라 죽으면 베어다가 땔감으로 밖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잡초들은 나무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땔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잡초들까지도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예수님 말씀의 초점은 인간이 아무리 근심 걱정을 하며 힘들게 노동을 하며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입을 것을 준비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입을 것에 대한 근심을 마음 중심에 두지 말고 그 자리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두라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세상 근심걱정이 자리잡고 있다면 이는 우상숭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