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다니엘 › 1:1-7

Dawn Word

다니엘 1:1-7

지도자들과 성전 그릇들을 넘겨주신 하나님

2020. 4. 23. · 안정섭 목사 · 다니엘 1장 강해 설교

다니엘 1:1-7 하나님께서는 유대의 지도자들을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시고 성전의 그릇들도 넘겨주셨다. 바벨론 왕은 유대의 왕족과 귀족 소년들을 뽑아 바벨론의 언어와 학문을 가르침으로 바벨론화 시키려 했다.

느부갓네살은 우수한 유대 소년들을 뽑아 아람어와 바벨론의 언어와 문학에 정통한 유능하고 교양있는 정치인으로 키우려 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들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벨론 사람들에게 광신적이거나 무례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들은 바벨론 왕의 종으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종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니엘이 행동으로 보여주며 말로 전한 내용은 여호와만이 영원한 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왕국들은 아무리 강해도 결국 모두 망할 것이며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70년이 지나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을 돌보실 것이기에 박해와 인내를 견디며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라는 것이다.

1절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삼 년이 되는 해" 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 나온다. 이는 기원전 606년 년 Tishri월(9-10월)부터 기원전 605년 Tishri월이다. 바벨론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늦은 봄에서 여름 사이에 팔레스틴 지역을 공격했다(Miller, 56). 느부갓네살에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은 기원전 605년 5-6월경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그 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왔다.

2절은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기셨다는 것이다. Miller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졸은 것이 아니고 완전히 그 명령으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Miller, 57).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전 그릇 일부를 주신 것이지 느부갓네살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시날 땅 자기들의 신전으로 가져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다고 했다.

Matthews는 이러한 성전 그릇들이 매력적인 전리품들이라고 했다. 귀금속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성전 예배에서 사용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Matthews, Dan 1:2). Pentecost는 유다의 신이 바벨론의 신들에게 정복당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Petecost, 1330). 그러나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의도적으로 넘겨주신 것이지 정복당한 것이 아니다. Ferguson도 표면적으로는 성전 그릇들을 이방 신들의 신전에 둔 것으로 느부갓네살의 승리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수치를 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 밖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Ferguson, 749).

3절에는 왕의 환관장 아스부나스(Ashpenaz)가 나온다. Miller는 환관장이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거세된 내시를 뜻하는 말이지만 왕의 신하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다며 창세기 37:36절의 결혼한 보디발에게도 이 말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Miller, 59). 그렇다면 아스부나스는 환관이라기 보다는 바빌론 왕립대학교 총장인 셈이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성균관을 관장하던 대제학인 셈이다.

3-4절은 왕이 아스부나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다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유대의 왕족이나 최고 높은 가문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다. Pentecost는 그 과목들은 농업과 건축과 점성술과 천문학과 법과 수학과 어려운 언어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Pentecost, 1330). 느부갓네살은 유대의 소년들에게 바벨론의 학문들과 언어들을 가르쳐서 이들을 통해 자신이 정복한 각 민족들을 영구히 바벨론화 하려는 것일 것이다.

5절은 왕이 지정하여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삼 년을 기르게 했다고 했다. 이들은 왕이 먹는 최고의 음식들을 먹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이들에게 바벨론 최고의 지식을 가르쳐 키울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음식도 먹게 하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고의 인재들로 키우려는 것이다. Fausset은 3년 후에 왕 앞에 선다는 말은 환관이 아닌 왕의 신하로서 왕 앞에 서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Fausset, 384).

6절은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나온다. 이 이름들은 흔한 히브리 이름이었다. 다니엘이란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 라는 뜻이다.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이다. 미사엘은 "하나님 같은 분이 누구냐?" 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 같은 신은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라는 뜻이다(Miller, 64).

그런데 7절에서 환관장은 그들의 이름을 고쳐서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고 했다. 벨드사살은 "그의 생명을 지켜주소서" 라는 뜻이다. 사드락은 "아쿠의 명령" 이라는 뜻이다. 아쿠는 달의 신의 이름이다. 메삭은 "아쿠 같은 신이 어디에 있나?" 라는 뜻이다. 아벳느고는 "느보의 종" 이라는 뜻이다. 느보는 바벨론의 두번째 위대한 신 나부를 고쳐 쓴 것이라고 본다(Ibid.)

이러한 이름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름을 바꾸게 한 의도가 드러난다.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바벨론 사람들의 이름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위대함을 담고 있다. Matthews는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젊은이들에게 바벨론의 신들을 은연중에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Matthews, Dan. 1:7). Pentecost도 역시 환관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어떤 신앙고백도 바벨론의 궁정에서는 다 삭제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환관장이 네 소년에게 준 이름은 그들이 바벨론의 신들에게 굴복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했다(Pentecost, 1330).

표면적으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긴 것이다. 유대의 지도층들을 잡아가고 성전의 보물들도 가져갔다. 유대의 왕족과 귀족 소년들 중에서 최고를 뽑아내어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고 음식도 바벨론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이며 이름도 바벨론 신들을 찬양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 2절에서는 주께서 넘기셨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신 것이지 하나님께서 바벨론 신들에게 패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압력을 받고 산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귀한 것을 내밀며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라고 강요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잊게 하고 세상에 빠져 살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의 가장 귀한 것들을 갖고 누리며 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러한 상황에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킬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우주로 날아갈 수 없다. 세상이 더러우니 아무도 없는 산속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고 살 수도 없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섬기는 것을 양보하면 안된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니엘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