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21-22 예수께서는 먼저 부모를 공경한 뒤 따라가겠다는 제자의 의도를 간파하시고 경제적인 안정을 포기하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건너편 이방인 지역으로 가자고 하실 때 한 율법학자가 제자가 되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했다. 이런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각오를 하고 따라 오라고 했었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 중 한 사람이 부모 공경을 먼저 한 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을 포기하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이번에는 제자 중 한 사람이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 제자는 12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라는 말은 12제자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배우던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기도 하다. 이 사람은 이미 제자였던 사람이 분명하다. 앞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실제 부모님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늙으신 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잘 모시겠다는 뜻이다. 늙은 부모의 장례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포함되는 내용인 것이다. 이는 합당한 요구인 것처럼 보인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모 공경을 스승 공경보다 더 우선 순위에 두었기에 이 사람은 예수께서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명령을 하셨다. 이는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명령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부모 공경보다 자신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스승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교 랍비들 중에 이런 명령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부모보다 더 우선적으로 공경해야 할 대상이 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이고 자신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만약 예수님이 단순히 훌륭한 스승이었다면 당시 문화에서 이러한 명령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원어에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죽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은 사람을 묻게 놔두고” 이다. 죽은 사람들이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이란 뜻이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거짓된 의를 포장하는 포장지로 사용하면서 진짜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를 막고 듣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살면서 말로만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고 거짓된 의로 자신들을 포장한다.
이 제자의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중동사람들도 아버지를 묻고 따라가겠다는 말은 이 제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 터키 선교사가 한 터키 청년에게 유럽으로 선교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다. 그 청년을 훈련시키려고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그 때 그 터키 청년 역시 아버지를 묻고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선교사는 그 아버지가 죽은 것에 동정심과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 때 그 청년은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고 건강하시다고 했다고 한다. 이 터키 청년이 아버지를 묻고 따라가겠다는 말도 단순히 집에 머물면서 그의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본문에 나온 제자도 마찬가지이다.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 아버지를 모시고 집안 일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율법이 가르치는 최고의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이 제자의 가장 큰 목적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의도는 경제적 안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산다는 것은 경제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으니 그 때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제자의 경계선은 경제적 안정이다.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신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나 부를 축적하게 놔두고 넌 그걸 다 포기하고 그러한 죽은 자들의 경계선 건너편으로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율법학자에게는 그가 누리던 세상의 명예라는 경계선을 넘어 오라고 하셨다. 이 제자에게는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오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우리가 쌓아 놓은 경계선을 넘어 따라 오라고 하신다. 우리의 경계선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가 쌓아 놓은 경계선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무리들 속에 묻혀 있으면서 우리의 생각과 욕심대로 살면 안된다.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경계선 너머로 예수님을 따라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